나는 ADHD와 우울증을 판정받았다. 우울증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지도 않았고, 평소에는 느끼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과 상담 끝에 ADHD 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몇 개월 동안 나는 콘서타를 먹으며 ADHD 치료에 집중했고, 전혀 우울감을 느끼지 않았고, 뚜렷하게 바뀌는 내 행동에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우울함은 무심코 내 곁으로 찾아와 누워버렸다.
콘서타를 먹어도 내 원래 성격이 게으른 사람이라면, 그냥 게으른 보통 인간이 될 뿐이다. 다행히도 나는 게으른 사람은 아닌지 무언가를 찾아 하려고 했다. 그걸 시작하기 위해서 컴퓨터 키는 소소한 일들이 어려울 뿐이었지, 마음만 먹고 ‘시작하자’라고 하면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고 일을 했다.
그런데 우울증이 찾아왔을 땐 아무것도 안 됐다. 콘서타를 먹으면 분명히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힘들었다. 머리가 멍해졌고, 나는 몇 개월 만에 침대에 누워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인간으로 지냈다.
하필이면 그 기간에 병원이 휴가 중이라 상담을 받으러 가지도 못했고, 나는 2주 동안이나 숨 쉬고 화장실 가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내 우울함과 무기력이 집어삼켰고,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특히 나는 우울증 증상이 올 때마다 무기력이 심하게 왔는데, 저때는 화장실 가는 것도 귀찮아서 배가 아플 때까지 참다가 기어가다시피 화장실로 갔다.
드디어 병원에 간 날, 선생님은 늘 그렇듯 “어떠셨나요?”라고 물었다.
“그게, 오늘은 말씀 드릴 게 없어요. 하필 병원 휴가 기간 때 무기력이 찾아와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온몸이 무겁고 움직이기도 버거웠어요. 약효를 확인할만한 것들을 하지 않았어서, 말해드릴 게 없네요.”
그런 내 말에 선생님은 우울증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하셨다. 한번 먹어보고 다음 주에 와서 다시 말을 나눠보자고. 콘서타를 처방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우울증 약도 가장 적은 용량으로 시작했다.
콘서타보다 훨씬 작은 알약 반 개.
솔직히 새끼손톱 반도 안 되어 보이는 약을 먹는다고 내 무기력이 나아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신반의하며 집 가서 약을 먹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무기력이 사라졌다. 플라시보 효과인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 우울증 약은 한 달 정도를 먹어야 효과를 낸다는데, 나는 반 개를 먹고 바로 효과가 나오다니. 그럴 수가 있나?
그런데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무기력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울한 감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무섭다고 느꼈다. 어떻게 한 순간에 그렇게 될 수가 있지? 사람이 자고 일어나니 무기력에 휩싸여 아무것도 못할 수가 있지? ADHD 약을 먹기 전에는 무기력하게 지내는 일이 많아서 잘 몰랐다. 하지만 이번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콘서타 약을 먹으면서 약효를 확인하기 위해 부지런한 습관을 들이고, 계속해서 고치려 했기 때문이었다.
전 글에도 썼지만, 우울증과 ADHD는 증상이 비슷한 게 꽤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구분하기 위해서 “어릴 때도 그런 증상들이 계속되었었나요? 아니면 성인 때 갑자기 생긴 건가요?” 물어보는 것 같다. ADHD 테스트를 하기 위해 외부에서 온 상담 선생님을 만났을 때도 그런 말을 하셨고, 지금 병원에 있는 선생님도 처음에 내게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둘 증상이 비슷한 게 많다고 해도, 이렇게 똑같을 줄이야. 그리고 그 우울증이 ADHD 콘서타를 이겨버릴 줄이야. 물론 둘이 다른 약을 처방하는 것이고, ADHD는 우울함보다는 집중력과 충동성 자제가 안 되는 게 더 크지만, 그래도 그렇지. 한 번에 찾아온 우울함과 무기력 때문에 ADHD 콘서타 약효도 확인 못할 정도로 변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지금은 우울증 알약 한 개 (반 개에서 용량을 올렸다)와 콘서타 36mg를 먹는다. 반 개만으로 무기력이 사라지고 만족하고 살았지만, 우울증보다 더 무서운 것이 찾아왔기 때문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