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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봄 Oct 20. 2020

ADHD, 우울증 약도 안 통하는 너란 존재, PMS

생리 전 증후군, 네가 제일 나쁘다


 PMS는 생리 전 증후군으로 생리 시작하기 이주에서 일주일 전에 오는 증상들이다. 사람마다 다른 증상들을 가지고 있고, 겪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나이가 들면서 사라질 수도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심해진 경우다. 어렸을 때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이십 대 중반에 나타나 사라지지 않고 나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





 PMS 종류는 다양하다. 우울하고 피로함, 부종, 식욕 증가 등, 내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저 증상들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거 같다.


 나도 식욕 증가를 빼면, 저것들을 다 겪어보았다. 제일 흔하게 겪는 건 이주 전부터 몸이 붓는다. 먹은 것도 없는데 팔, 다리, 복부가 부어서 아픈 느낌이 나고, 몸이 무겁다. 그런 날 생리 어플을 확인해보면 무조건 생리 시작 이주 전이다.


 그다음에는 잠이 몰려온다. 나는 평소 밤 11시쯤 잠이 드는데, PMS가 찾아올 때면 밤 11시에 자면 안 된다. 밤 9시쯤 잠에 들어야 그나마 피로가 풀리고, 그것도 안 되면 정말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어야 한다. 나는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잠을 못 자면 바로 몸에서 나타나는 사람이다. PMS로 피곤함이 몰려올 때면 무조건 입술 포진을 달고 살고, 그래서 그 기간에는 약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또한 몸살이 찾아온다. 몸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아무런 힘이 없어 골골거린다. 마치 좀비처럼 퀭한 얼굴로 ‘나 죽소-’하며 직장과 집을 왔다 갔다 한다.


 우울감도 자주 찾아온다. 우울함은 내가 흔히 겪는 것 중 하나인 데다가 올 때마다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든다. 우울한 일도 없는데, 밑도 끝도 없이 나를 땅끝까지 끌어당긴다. 마음이 무겁고, 눈물이 나며, 우울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생활이 힘들다.


 하지만 이주만 참으면 사라지는 증상들이니까 견디면서 지냈다. 그러나 이십 대 후반이 되면서, 몸이 더욱 약해져 별걸 다 겪었다.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목과 얼굴까지 뒤덮여 응급실을 다녀오기도 했고, 갑자기 잇몸이 부어올라 아무것도 씹지 못했던 날도 있었다.


 그중 우울함은 더 커져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PMS만 되면 이 세상에 사라지고 싶었고, 멍한 사람처럼 가만히 우울함에 뒤덮여 있었다.





 

 나는 우울증과 ADHD 약을 먹는데, PMS 때는 약효가 하나도 들지 않는다. 정말로.


 다시 혼란스럽고 집중이 안 되며, 다른 생각을 하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 사고를 치고, PMS 기간에는 약 먹기 전처럼 일할 때마다 혼이 났다. 하지만 이주 정도만 버티면 되니까, 그동안 내가 200퍼센트 집중을 발휘해 어떻게든 그 기간만 지나면 되니까, 하며 참았다.


 그런데 일이 터져버렸다.


 PMS로 우울함이 찾아왔다. 그 우울과 불안은 나를 금방 집어삼켰고, 늘 찾아왔을 때처럼 내 머리채를 잡고 바닥 끝까지 끌어당겼다. ADHD약과 우울증 약을 먹었는데도 내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몸을 무겁게 누르고, 머릿속에 온통 안개가 있는 듯 흐릿했고, 시야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말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마치 어딘가 홀린 사람처럼 멍한 채였다.


 이주만 참으면 지나가니까, 다른 때처럼 그렇게 견디어 낼 줄 알았다.


 하지만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새벽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준비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몸이 무겁게 내려앉아 두통이 찾아왔다. 도저히 걸을 힘이 나지 않아 택시를 잡았고,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가면서 문득 ‘아, 나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로 질주해서 교통사고가 났으면 싶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뭐하러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건데?

 내가 얻는 게 뭐야?

 죽자, 그냥 죽어버리자.


 택시 타는 내내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문을 열 자신감은 없었고, 충동은 계속해서 들었다. 창문을 바라보며 택시 밖으로 나와 사고 나는 상상을 하며, 이 세상에 사라지고 싶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회사에는 잘 도착했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라지고 싶다’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런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그날은 뭐가 끼었던 인지, 이상하게 풀리는 일이 전혀 없었다. 우울한 채로 회의하는데, 고집스러운 상사가 제 고집만 강요하고 다른 사람 말은 듣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거에 아는 척을 하며 말하고, 괜한 나를 보며 트집을 잡고 욕을 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갔을 말이지만, 그 날은 내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냥 사라지자. 내가 이딴 대우를 받으면서 여기에 다녀야 할 이유는 없잖아? 그냥 관두고, 이 세상에도 사라지자. 내가 이곳에 살아서 뭘 남기겠다고. 어차피 한 평생을 아등바등 살 거, 그냥 젊을 때 죽어버리자. 아, 돈을 좀 빌려서 펑펑 쓰고 죽을까. 그러면 빚은 어떻게 되는 거지….


 혼나는 내내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제가 한 것처럼 구는 상사도 마음에 안 들어서 당장 회사 창문 밖으로 몸을 내던지고 싶었고, 주먹을 꽉 쥐었다. 다리가 떨렸고, 당장이라도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던질 수 있을 거 같았다.


 운이 좋았던 건지, 상사는 내가 일어나려고 할 때 말을 끝마쳤다. 계속해서 이어졌다면 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창문에 매달렸을 거다.




 자살 충동까지 온 PMS는 다음 날 사라졌다. 집에서 울고 불고 소리치고 일찍 잠에 드니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 그리고 전날의 내가, 내가 아닌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뭐에 홀린 듯이 충동성이 나를 감싸 안았고, 계속해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었다. 내가 생각해도 전날의 나는 미친 사람 그 자체였다.


 이처럼 PMS는 자신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나라고 저때 우울해하지 말자, 라는 생각을 안 해봤겠는가. 어떻게든 우울한 감정을 이겨내려고 했지만, 호르몬이 도대체 뭔지, 우울함이 그런 생각하는 나를 집어삼켰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고, 마치 누군가 내 몸을 조종이라도 하는 듯이 나는 거기에 끌려갈 뿐이었다.


 다행히 병원 상담이 그 주에 잡혀 있었다. 나는 병원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서 상담을 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PMS, 생리 전 증후군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어요. 원래 PMS가 있었고, 우울감이 있었는데, 이번 주는 정말 최악이었어요. 세상에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머릿속으로 죽는 생각을 여러 번 했고, 자칫하다간 내 자신을 잃고 충동적으로 창문으로 뛰어들 뻔하기도 했어요. 힘이 없어 택시를 타는데, 달리는 차 밖으로 나가서 차와 부딪혀 사고도 나고 싶었어요. 우울증 약도 효과가 없었고, 콘서타도 잡아주지 못해서 힘든 주였어요.”


 선생님은 잠시 입을 벙끗였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선생님은 잠시 동안 말이 없으시다가 원래부터 PMS가 심했는지 물어보셨고, 나는 이제까지 겪은 PMS에 대해서 설명했다.


 “PMS때 약효가 안 든다는 분들이 꽤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생리 전 증후군 중 우울감이 심하신 분들. 즉,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감정 기복이 심하고 우울하신 분들은 우울증 약을 처방하곤 하거든요. 제 생각에는 PMS 때는 우울증 약 용량을 더 늘리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지금은 괜찮으신 건가요?”


 상담 당시에는 괜찮았기에, 제일 적은 우울증 약 용량을 먹다가 PMS 기간에 용량을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PMS 때 나는 선생님께 말해서 용량을 늘렸고 먹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효과가 좀 든 모양이었다. 우울감은 찾아왔지만, 그 전보다 심하지 않았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옅게 남은 우울함은 견딜 수 있을 정도였다. 선생님이 힘들면 용량을 더 늘리자고 하셨지만, 어차피 이주 후면 사라질 거에다가 이제까지 온 PMS 중 가장 옅은 우울함이기에 그냥 이 정도로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PMS가 무섭다. 우울감은 어느 정도 잡아줬지만, 몸이 붓는 거나 아픈 것, 피곤함이 몰려와 밤 9시에 잠들지 않으면 입술 포진이 나는 그런 증상들을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다. PMS를 이겨내는 방법이나 영양제가 있는 거 같은데, 부작용이 있는 데다가 확실하지도 않아 보였다. 이주만 견디면 사라지는 거니 이렇게 사는 거지만, 따지고 보면 좀 억울하다. PMS 기간이 이주인 데다가 PMS가 끝나면 생리를 일주일 정도 한다. 그러면 한 달에 삼주 정도는 생리 때문에 내가 고생을 하는 거고, 그게 1년으로 치면 아프지 않은 날이 몇 없다.


 지금은 우울감이라도 잡아서 다행이지만, 사실 PMS때 약효가 뛰어나게 들지는 않는다. 도대체 생리가 뭐라고 평소 먹는 약효과도 안 드는지. 모든 게 엉망이다.


 아무튼, PMS가 이렇게 무서운 놈이다.

 우울증 약도 ADHD 약도 잘 통하지 않는, 아주 지독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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