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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다발 Jun 22. 2024

필기면제자 검정을 치르며...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고3 수업을 맡고 있다 보니 해마다 6월이면 필기면제자 검정을 지도하게 된다.


 필기면제자 검정은 직업계고 학생들의 원활한 취업활동을 위해 필기,실기로 진행되는 일반 검정과는 별도로 운영한다. 말 그대로 필기시험은 면제되고 실기시험만으로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검정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일반 검정을 통해서도 자격증 취득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필기면제자 검정은 단체로 접수하고 함께 준비해서 치르는 시험이라 한 명의 낙오 없이 합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시험이다.

시험은 보통 6월 3주에서 4주 사이에 있는데 시험 2주전 부터 지도 선생님과 학생들은 주말까지 반납하며 총력을 다해 실기시험 준비를 한다.

나 역시 자동화설비기능사중 한 과목을 맡아 지도 하고 있다.

전원 합격시키겠다는 욕심으로 하기 싫어하는 학생들과 실갱이를 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6월초부터 밀착하여 지도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얼굴 붉히는 일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투닥거리는 과정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의 연속이었다.

시험을 준비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이런 저런 아이들의 모습들을 보며 나 자신이 많이 돌아봐졌다.


주말에 나와서 해야 한다고 하면 당연한 듯 나와서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빠져나가는 학생도 있다. 


 100퍼센트 합격할 실력이 되었어도 200프로를 준비해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 해두는 학생이 있고,

80퍼센트 정도 되면 나머지 20퍼센트는 운으로 채우겠다 생각하고 전선에서 물러나는 학생도 있다.

물론 그런 아이들이 꼭 시험때 문제가 된다.


MZ세대들은 체질적으로 잔소리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루할 정도로 잔소리를 하고 하나마나한 식상한 말들로 아이들을 격려한다.

 그런 격려와 잔소리들이 먼치처럼 아이들의 마음속에 쌓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드디어 시험날이다.


37명이 시험을 준비했고, 한 차수당 8명 정도씩 총 5차에 걸쳐 시험이 진행되었다.


열심히 준비했던 시간들을 알기에 준비가 미흡했던 부분이 출제되거나 긴장해서 실수를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켜봤다.


시험을 시행하는 본부위원과 감독위원들에게는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둥글게 좀 봐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전하고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하였다.


 시험장 앞에서 대기하는 아이들은 평소의 그 자신만만하게 큰 소리 치던 모습과는 다르게 긴장된 모습이 역력하다.


 하나라도 실수할쎄라 돌다리도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건너는 모습으로 진지하게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다.


 준비한 만큼 실력을 보여준 아이도 있지만, 긴장해서 평소에 안하던 실수를 하는 아이도 있고, 평소에는 잘 되던 것이 이상하게도 잘 안되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본인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준비를 했는데 긴장한 탓에 준비한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해 결과가 좋지 않은 학생이 있었다.


 그 날 밤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나도 잠을 설쳤다.


 평소에 조금 더 연습시킬걸... 이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채점할 때 한 번 더 호소해볼걸...


결과를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를 매 순간에 대한 후회로 마음이 내내 좋지 않았다.


남편 말로는 내가 자다가 새벽에 깨서 후회의 말들을 뱉으며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출근해서 그 친구를 만났는데 소처럼 크고 맑은 눈으로 여느 때와 다름없이 꾸벅 인사를 한다.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더니


 "아이 괜찮아요 선생님~ 다음에 보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며 오히려 어른스럽게 나를 다독인다.


' 그래! 그런 긍정적인 마음 하나면 됐다. 


이 시험 한 번이 너 인생에 작은 흠집 조차 내지 못 할 만큼 너는 단단하구나! 그럼 되었다.' 싶은 마음이 들어


나도 안도했다.




 무언가 하나의 목표에 몰두하게 하고, 그것을 이룬 사람과 못 이룬 사람으로 구분짓게 하는 시험이라 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시험을 치르지 않고, 중 고등학교에서도 시험의 비율을 줄이고 평소 배움이 과정중에 평가하는 수행평가의 비중을 늘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시험이라는 것이 주는 이익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아들러는 인간을 목표를 추구하는 목표지향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라 보았다.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 


결과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 


그 태도에 따라 인생이라는 키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인생의 법칙.



하나의 시험을 함께 준비하며,


아이들도 자라고, 나도 성장했다.


그들이 얻은건 자격증 하나 그 이상일 것이고,


나 역시 인생의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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