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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Apr 14. 2021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은 있다


아빠, 이만 끊을게요.



끊는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여전히 화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아빠. 종료 버튼을 누를 때까지 아빠는 핸드폰 저 편에서 여전히 손 흔들고  계신다.


한 번은 아빠가 끊으실 때까지 나도 기다려보았다. 이만 들어가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두어 번은 했는데도 통화는 좀처럼 끝나질 않았다. 결국 그때도 먼저 끊은 건 나였다.


한 달에 한 번이 쉽지 않다. 가장 큰 효도는 매일 전화하는 거라던데.  막상 통화 버튼 누르기까지 뭐 이리도 많은 과정이 필요한지. 분기 행사인 양 통화하는 아빠와 나. 아니 요즘엔 분기도 아니고 거의 반기인 듯하다.


엄마와 달리 아빠와 전화하면 할 말이 별로 없다.


"진지 드셨어요?"

"요즘 일하기는 힘들지 않으세요?"

"지난번 검사 결과는 어때요?"


매번 루틴처럼 반복되는 아빠와의 대화. 가끔은 아들에게 핸드폰을 토스해 보기도 한다. 무뚝뚝한 딸 대신 손주라도 아빠를 웃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러나 그 엄마에 그 아들.

할아버지와 통화만 하면 '예' 아니면 '아니오' 로만 답하는, 세상 시크한 차도남이 되어버리는 녀석.


 내가 지금 아들 녀석 정도의 나이였던 삼십 년 전의 어느 봄날, 인생 최대위기찾아왔다.  학기를 맞아 새로운 친구들과 한창 알아가느라 정신없던 그때, 반에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손가락 봤어? 이상해...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는 조금 달랐던 오른손 엄지 손가락. 누군가 볼까 두려워  엄지를 다른 손가락 안으로 말아 주먹 쥐고 다니곤 했다. 손가락을 사용해야  일이 있으면 왼손을 연습시켰다. 공기도, 종이를 세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왼손으로 대신하곤 했다.


부끄러운 엄지를 애써 숨기려던 그간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그렇게 열두 살, 새 학기 봄에 결국 난 들켜 버렸다.


여자애들은 쉬쉬했고 남자애들은 대놓고 놀렸다. 쉬는 시간 갑자기 자리로 와서 손가락 보여달라던 짓궂은 녀석들도 있었다. 학교에서 꾹꾹 참아내던 눈물을 집에 돌아오면  바가지씩 쏟아내곤 했다.


@Arno Smit / unsplash.com


그날도 거실에서 울음이 터졌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엄마, 아빠에게 이야기하다 서러워 목이 메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한바탕 대성통곡  한쪽 구석 소파에  처져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빠. 베란다 창문  어딘가에 시선을   내게 말을 건넸다.


“OO,  그거 아니?

미스코리아도 신체적 비밀이 있대.


어디 미스코리아뿐일까. 

사람은 누구나  못 할 본인만의 특이한 신체적 비밀을  하나씩은 갖고 있다더라.


아빠 발가락 봐봐. 여기 이상하지?

 손가락,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아빠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만 이런 거 아니라고?

심지어 누구나  이런 비밀쯤은 하나씩 갖고 있다고?


혼자 몰래 꽁꽁 싸서 숨겨야 했던 엄청난 우주의 비밀이었다. 제일 아픈 약점이기도 했다. 무겁고 감당하기 힘든 손가락이었다. 누가 알까, 볼까 두려워 늘 전전긍긍했다. 나만 다르다는 게 무서웠다.


그런데 아빠 말이 맞았다. 곱씹어보면 볼수록 맞았다. 나만 다른  아니었다! 누구는 특이한 귓바퀴를 갖고 있었고  다른 누구는 희한하게 생간 배꼽을 숨기고 있었다.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모든  변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려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이들도 아직 들키지 못한 어떤 비밀이 있을 거라 생각하니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누구나 저마다의 비밀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니 마음이 편해졌다. 안심이 되었다. 나만 그런  아니었구나! 그렇게 창피했던 손가락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손가락을 흘깃 엿보는 친구의 시선에도 가슴 펴고 당당히  내밀  있었다.


그때 아빠의 말이 없었다면 학교 다니는 내내 지옥이었을 거다. 여전히 오른손을  쓰고 싶어 했겠지. 뿌리 깊은 징글징글한 콤플렉스,   전체를 갉아먹었을지도 모른다.


@Sharon McCutcheon / unsplash.com


아빠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 적은 없다. 뭔가 쑥스럽다. 진지하게 고맙다고 말한다는 게.


그래도 언젠가  한 번쯤은 말씀드리고 다.

그때 아빠의 말이  살렸다고.


살면서 가끔 나만  이러지 싶은 순간에도 남들도  비슷할 거란  말이 용기를 주었다고. 끔찍한  비밀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되어버려  이후 무서운  별로 없어졌다고.


다음 주에 돌아오는 윤달 2 29일의 아빠 생신. 이번에도 고맙다는 낯간지러운 말은    같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다.


"아빠,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야 캐나다 로키산맥 트레킹 하러 같이 떠나지."


아빠가 이 말 뒤에 숨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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