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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Apr 23. 2021

지금 그곳의 봄은 어떤 색인 가요?


집으로 돌아오던 , 공항에는 아무도 나와있지 않았다.


 개월간 늘어난 짐을 꾹꾹 눌러 담은 캐리어는 금방이라도 바퀴가 떨어져 나갈  같았고 열몇 시간 동안 세수도 못한  밤새운 꼬질한 얼굴엔 개기름이 흘렀다.


기사님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짐 내리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23킬로씩 나가는 두 개의 캐리어와 그보단 작은 기내용 캐리어 세 개를 혼자 끌고 집까지 가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언제나 엄마는 약속시간보다 늦게 온다. 장시간 비행에 지쳐 어디 앉을 곳을 찾을 힘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우두커니 한참을  있었다.


4 초였다. 여전히 쌀쌀했다. 아마  더운 곳에서  도착해서 그랬나 보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쨍하게  쏘는 지중해의 선명한 봄볕과 달리 흐리멍덩하고 나른한 봄의 빛깔이었다.


지중해의 봄


그때가 처음이었다.

같은 봄인데도 저마다 다른 태양의 색이 있다고 느낀 .


 그토록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서 대부분 작품을 남겼는지 단번에 이해할  있었던  나라의 봄볕 채도와 명도의 차이.


그곳에선 사계절 내내 선글라스 없이는 외출이 힘들었다. 겨울에도 햇빛이 강했다.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릴 정도였다.


강렬한 태양 빛에 땅 위의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직선으로 내리꽂는, 따갑기까지 했던 봄볕이었다. 주변 빛이 지나치게 환한 나머지 카메라 렌즈로는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면 한국의 봄볕은 포근하면서도 졸렸다.


온통 희뿌연 했다. 빛이 내려오면서 굴절을 여러  거듭하다 모든 사물에 흡수된 것만 같았다. 어디선가 비추긴 하는데 대체 어디서 비추는지   없었다. 흰색과 회색으로  번이나 덧칠한 풍경화 같았다.


샛노랗거나 새파랗지 못한  봄의 빛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 왔는데 도로 가고 싶었다. 푸른 쪽빛 해안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햇살이 가득 담긴 르누아르 그림  배경으로 남고 싶었다.


그만큼 그날 공항버스 정거장에서의 봄은 시시했다.


벚꽃은 지겨웠고 철쭉은 촌스러웠다. 낭만은커녕 뭐가 그렇게 급한지 남의 어깨를 치고서도 사과 한 마디 없이 모두가 앞만 보고 바쁘게 걸었다.


다시 떠나고 싶었다. 처음엔 스물 초반 선명한 봄의 빛깔을 알게 해 준 그곳을 꿈꿨지만 나중엔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지금 있는 이곳을 그저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떠났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도  떠나고 싶었다는 데에 있었다. 떠나왔는데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어야 했나. 그렇게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절반을 바다 건너 다른 곳에서 보냈다.


어제 홍콩의 봄


어쩌다 보니 오늘 아침   곳은 홍콩이다. 홍콩의 봄은  답지 않다.   내내 레인코트만 입고 다니던  홍콩 영화 여주 모습에 그럴  있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뚜렷한 계절의 변화가 없는 홍콩에 살다 보니 내 마음도 함께 무뎌지나. 아무 때나 피는 꽃과 사시사철 푸른 잎사귀에 가끔은 봄인지 겨울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어느덧 홍콩에서 맞는 마흔 살의 .


시끄러운 란콰이펑보다는 새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트레일을 걷고 싶다. 하이힐보다는 편한 운동화에 자꾸만 손이 간다.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는데 언제부턴가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오기도 한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벚꽃과 어디선가 나는 향긋한  내음, 촌스러운 진분홍도 좋을 철쭉 가득한 봄의 뒷동산. 그곳에서 찍은 가족 사진에 이제는 나도 함께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미나리 삼겹살에 봄동 겉절이와 냉이 된장국   차려낸 봄이라면 미세먼지로 뿌연 봄의 빛깔이  그렇게 대수일까.


그렇게나 시시했던  봄의 빛깔이 그리워진다. 더 이상 돌아오지 않는  봄은 희끄무레한 봄빛으로도 반짝이고 있다. 지금  마음에 부는 봄은 모든   뿌연 했던  날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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