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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십 May 14. 2021

홍콩판 김치녀와 한남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나


시작은 홍콩 남자의 키는  그렇게 작은지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이었다. 아이가 한참  때인데도   커서 홍콩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었다. 객관적 자료가 있을까 해서 구글링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조상들의 DNA가 다르다는 식의 글과 ‘왜 아시아에서 한국 남자들만 유독 그렇게 키가 큰가요?’와 같은 연관 질문만 뜰뿐, 어디에서도 속 시원한 답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유전자가 달라 그렇다는 말이 정답일 수 있는데 식습관, 환경, 사회 문화와 관련 있다는 글을 기대했으니 찾을 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구글링 하던 와중,

계속 검색에 걸리는 기사  토막, 제목부터 강렬했다.


“Some Hong Kong Women would rather die

alone than date Hong Kong men.” 

(qz.com/Apr 15 2016/Vivienne Chow)

홍콩 남자들과 데이트하느니 혼자 죽는 편을 택하겠다는 홍콩 여자들! 대체  말인가 싶어 원래 찾으려던 내용은 제쳐두고  기사부터 읽기 시작했다.

홍콩 여성 1,000  홍콩 남성의 수는 1981 1,087명에서 2014년에는 858명으로 이백 명이나 넘게 줄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15 이상의 여성은  백만 명인데에 비해 동일 조건의 남성은 962,700 명이니 자연적으로 37,300명의 여성들은 평생 솔로로 남게 된다는 .

그러니 홍콩 여성들이여! 이제 그만 현실을 직시하고 백마  꿈속의 왕자님 기다리는  집어치우라 어느 남자가  칼럼에 분노한 홍콩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한 글이었다.

 남자분이  원문 글은 항의가 빗발쳐 바로 삭제되었다고 하는데  내용은 이렇다고 한다. 까다롭게 굴지 말고 좋은 스펙 가진 남자나 잡아라, 남자 등골 빼낼 생각하지 말고 “Kong Nui”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거라는 망상에서 속히 빠져나와라...

기사  “Kong Nui”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홍콩 여자들을 악의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보다 자세히 나와 있었다.


Gong nui(港女) 홍콩 여성들을 뜻하는 말로 언론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인다.

돈을 좋아하고 물질적이며 지나친 자기애로  공주 대접받고 싶어 하고 외국 문화에 목매는 홍콩 여성들에 관한 부정적 선입견을 나타낸다.

-출처 : 위키피디아 


여기에 대응하는 “Gong Nam” 돈에 쪼잔하고 미숙한 어린애 같은, 관계에 서투른 홍콩 남자들을 뜻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치녀나 된장녀, 한남 정도 되나 보다.


2013년 10월 한 홍콩 여성이 길거리에서 남친을 때렸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남친은 무릎 꿇고 여친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이를 찍은 영상이 인터넷에 널리 유포되면서 전형적인 “Gong nui”와 “Gong nam”을 보여 준다면서 수많은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기사들이다. 최근엔 이런 단어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 건지 검색 결과 자체가 많지 않았다. 갈등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만무하고 대체  어디로 숨은 걸까 했는데...


2019년의 “Gong nui”는
더 이상 예전의 “Gong nui”가 아니었다!


2019년은 홍콩 민주화 시위가 한참 피크에 오르던 시기였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에 맞서 최전선에 섰던 사람들이 바로 20 초반의 “Gong nui",  홍콩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돈만 밝히고 정치 따위 관심 없으며 쇼핑만 좋아하고 온종일 오늘은 어느 맛집에 가서 인스타 사진 예쁘게 찍어 올릴까만 검색하는 줄 알았던 홍콩의 어린 여성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매캐한 수류탄 연기 속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모습은 더 이상 사람들이 생각하던 “Gong nui”가 아니었다.


응석받이 프린세스의 재발견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용감한 파이터였다고도 한다.


이렇게 “Gong nui”들은 실체 없는 선입견 이미지를 깨부수고 소수의 부분적인 모습을 전체 일반화하는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보여주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사회가 그렇듯 홍콩에서도 젠더 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2019년을 계기로, 그래도 조금은  갈등의 대상이 얼마나 허무하게 쌓아 올린 편견이었는지 사회 전체가 깨달았지 않았나 싶다. @이백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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