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영상화, 단편영화 시리즈 1. 인터뷰
무더운 8월의 여름날, 우리는 첫 번째 영상의 원작시 <그 여름>을 쓰신 송희숙 어르신을 만났다. 올해로 82세가 된 시인 분은 당신을 그저 평범한 할머니라 소개하시며 덤덤히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여름, 뜨겁게 빛나던 태양만큼이나 열정적이시던 송희숙 어르신을 떠올리며 See Near Project의 첫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른 건 없어요. 그냥 할머니예요
Q. 안녕하세요, See Near Project의 첫 번째 작품으로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올해로 82세가 된 송희숙입니다.
Q. 시는 언제 처음으로 쓰셨나요? 시를 계속 써오셨는지 궁금했어요.
A. 시를 처음 쓴 건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국어 선생님께서 숙제로 써 간 ‘어머니'에 대한 시를 보고 잘 썼다면서 교실 뒤 게시판에 제 시를 붙여 놓으셨어요. 이후, 고등학교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도 가보면서 ‘글을 쓰면 너무 좋겠다.’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성인이 되곤 사는 게 너무 급급해 문학과는 동떨어져 살았어요.
나이가 들고서 동네 주민센터에서 컴퓨터 수업을 들었는데 어느 날 수업에서 쓴 즉흥시를 선생님이 잘 쓴 것 같다며 칭찬해주셨어요. 그때부터 다시 시를 쓰고 싶단 마음이 들어 복지관 문예창작반에서 글 쓰는 법을 배웠죠.
어떤 때 문득 세상사 허무하고 슬플 때가 있어요. 제 나이에서 오는 서러움, 아들이 했던 서운한 말, 손주가 했던 서운한 행동... 모든 것이 밀려올 때가 있죠. 그런데 결국 그런 것들이 다 인생의 희로애락이고 시는 그런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노래라고 생각해요. 요즘도 매일 1-2편의 시를 써요. 글을 쓰는 건 나 자신을 배려하고 격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Q. 매일 시를 쓰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보통 시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A. 일상생활에서 시상을 떠올리는 편이에요. 문예창작반을 수강하고부터 일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어요. 무언가를 볼 때면 시제가 되겠다, 시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는 손녀딸에게 복숭아 하나를 다 깎아주고 저는 남은 뼈대를 먹으려다가 ‘그냥 하나 깎아 먹지. 왜 이렇게 궁상떨고 앉아 있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삶은 보장된 것이 아니잖아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죠. 이런 생각들을 시에 담아요. 저는 박목월 시인, 정호승 시인을 좋아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시 말고 그분들의 시처럼 읽으면 바로 와 닿는 시, 그런 시를 쓰고 싶어요.
Q. 저희도 <그 여름>이란 시를 읽자마자 어머니가 감자보리밥을 해주시던 어느 여름날이 그려졌는데요,
<그 여름>이란 시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A. <그 여름>은 창작시가 아닌 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시예요. 지금이야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이지만 저는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전쟁 후 세 끼 내내 밥을 굶는 일이 허다했는데 어쩌다 감자보리밥 같은 게 생기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정말 행복했죠. 형제가 여럿이라 밥 먹고 기운이 나면 서로 투닥거리던 모습을 어머니께서 안쓰럽게 보시다 ‘어서들 자거라. 삼경에 헛것 보이면 어떡하냐.’ 하곤 하셨죠. <그 여름> 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에요. 보리밥은 배가 금방 꺼지니 자식들 배고플까 걱정하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돌아요. 제가 자식을 길러보니 내 배 고픈 건 서럽지 않지만 자식이 배고파하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것 같아요. <그 여름>은 그때 그 여름의 광경, 어머니의 목소리와 마음, 앞으로도 제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그 여름을 담은 사실 시이자 저를 죽을 때까지 울리는 시예요.
Q. 그 시절 어머니는 어떠셨나요?
딸로서 바라본 어머니와 어머니가 직접 되신 후 다시 어머니를 떠올리셨을 땐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A. 당시의 어머니 세대는 누군가를 만나고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으셨어요. 외출은 큰 행사가 있을 때 꼭 가야 하는 곳만 가고 바깥세상은 전혀 모르고 사셨죠. 어머니는 막내를 둘러업고 밥하고 우물가에서 방망이질하며 빨래하고 그렇게 온종일 집안일만 하셨어요. 저는 동생 다섯을 거의 키우다시피 가장 노릇을 하며 살았는데 당시에는 부모님 원망을 많이 했어요. 나는 왜 이런 부모에게서 태어나 이렇게 배고프게 살아야 하나, 어린 마음에 어머니를 미워했어요. 어머니랑 말도 잘하지 않았죠.
저는 가난이 싫어 기를 쓰고 열심히 일해 자식들을 키웠는데 막상 자식을 낳고 엄마가 되어 보니 당시 어머니가 훌륭한 분이셨다는 걸 깨달았어요. 만일 제가 그 시대의 엄마였다면 저는 어머니처럼 잘 해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사랑으로 저와 제 형제들을 지켜주셨음을 제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네요. 고생만 하시다 간 어머니의 세월이 가엾어요. 당신 배고픈 건 생각 못 하는 세월을 사신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어머니를 지금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소갈비도 마음껏 대접해드리고요. 지금도 어머니의 모습과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하루도 어머니를 잊어본 적이 없어요.
Q. 이 세상의 어머니들, 그리고 자식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요?
A. 어머니들에겐 자식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고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결하고 도저히 내 힘으로 불가항력일 때 의논 상대로 자식들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자식들은 그저 편안하게 자신들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특별한 말을 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물론 부모님께 효녀 노릇을 못 해서 못 해 드린 생각만 나고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 잘해드릴 것 같지만 내 자식들에게 그걸 바라고 싶진 않아요. 아침마다 늘 ‘오늘도 어제와 같이 건재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시고, 내 영혼을 거두어 가실 때 꽃 피고 새 오는 계절에, 하늘을 향해서 기분 좋다 참 맑다고 생각할 순간에 멈추게 해 달라’고 기도해요. 저는 죽고 나면 이 세상에 없지만, 제가 만일 춥고 더울 때 떠난다면 남아있는 자식들이 고생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죠. 죽음에 대해서도 자식을 생각하고 걱정하게 되는 게 어머니의 마음인 것 같아요.
Q. <그 여름>이란 시가 선생님의 삶이 담겨 있는 의미 있는 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글을 쓰는 건 본인을 자신을 배려하고 격려하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선생님께 ‘시’란 어떤 의미일까요?
A. 제게 시란 친구예요. 베스트 프렌드. 자식 손주들 다 키우고 남은 시간이 무료할 뻔했는데 기쁨을 갖고 찾아온 것이 바로 시죠. 세상을 떠난 후에 제 생각을 자식들에게 남길 수 있는 유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복지관에서 수채화 반도 듣곤 했는데 언젠가는 직접 그린 그림 위에 제 글을 써 글그림을 만드는 것이 제 꿈이에요.
Q. 멋진 꿈이네요! 지금 어딘가에서도 선생님처럼 꿈을 가지고 있을 시니어분들과 청년들이 많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청춘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우선 정말 한 끼를 먹어도 행복감을 느끼는 식사를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삶은 그래요.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남 피해 안 주고, 기거할 수 있는 집이 있고 그 속에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면 그 이상의 천국이 어디 있겠어요. 현실이 고통스러운 거 알아요. 그래도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차곡차곡 올라가면 좋은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고생이라 생각하지 말고 한 끼 먹었을 때의 그 행복감을 느끼며 살았으면 해요.
저처럼 나이 먹은 사람들이 뭘 하면 ‘이 나이에 이까짓 것 해서 뭘 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와요. 제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도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그 그림 그려서 뭐 해?’라고. 저는 뭘 하자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제가 그린 그림의 꽃이 되고 싶은 것뿐이죠. 내 손으로 쓴 글과 그린 그림을 바라볼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저는 지금껏 바쁘게 살아오느라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하지만 늦게나마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었고 이렇게 상을 받고 여러분들을 만난 건 꿈꾸던 것들이 실현된 것이라 생각해요. 지금 뭔가 당장 되지 않아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이 뭘 가지고 있는지 발견해 밀고 나간다면 반드시 이뤄질 거예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그 세 시간의 인터뷰 동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꼈다. 문득 문득 붉어지는 시인 분의 눈시울에 함께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은 순간들이 일렁였다. 진솔한 이야기와 덤덤히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겹겹의 시간이 녹아 있어 말의 무게와 힘이란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터뷰가 끝나고 맛있는 밥까지 살뜰히 챙겨주시던 모습이 우리에겐 또 다른 <그 여름>으로 영원히 기억 속에 남을 시간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음에, 당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내내 품고 있던 불확실성과 걱정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이 이야기에 대한 확실성과 책임감이 되어 있었다. ‘우리 잘할 수 있을까?’ 아닌 ‘우리 정말 잘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첫 영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값진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 주신
송희숙 어르신께 다시 한번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