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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Near Project Nov 19. 2020

05. INTERVIEW <황혼>, 박은순

詩의 영상화, 단편영화 시리즈 3. 인터뷰




                    *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짐에 따라, 비대면 전화 인터뷰로 대체하여 진행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저녁 노을처럼
예쁘게 활활 타오르고 갔으면 좋겠어요.



<황혼> 시






Q. 안녕하세요, See Near Project의 마지막 작품으로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올해로 70세가 된 박은순입니다.




Q. 시는 언제 처음으로 쓰셨나요? 시(詩)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시는 옹알이하듯 아주 오래 전부터 써왔어요. 2~30대 때부터 삶의 애환을 문학으로 어설프게나마 풀어가며 살아왔죠.  잠이 안 오면 책 속으로 파묻히기도 하고 일기처럼 시를 썼어요. 지역적으로 수상한 적도 있고, 40대 때는 문학 아카데미에 다니기도 했어요. 요즘은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휴대폰 메모장에 종종 메모를 하곤 해요. 그 후엔 고치고 또 고치면서 한 편의 시가 나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죠. 숨 쉬는 것과 시 쓰는 게 동시에 끝날 정도로,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시를 쓸 것 같아요.




Q.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한다고 하셨는데, 보통 시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A. 제 시의 근원은 '슬픔'이에요. 어릴 적 반쪽인 쌍둥이 언니를 잃은 상실감에, 시의 형식을 빌려 제 슬픔을 표현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마주하는 슬픔들을 시로 해소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주로 자연에서 가장 많은 영감이 떠올라요. 문학상에서 수상한 이번 <황혼>이라는 시도, 평택호를 거닐며 메모한 것들에서 시작되었죠. 제가 가진 세포 속의 슬픔이 유독 자연을 볼 때 더 빛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석양을 봐도, 이글거리는 황혼의 화려함 속에 들어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보게 돼요. 햇볕이 평택호 속으로 죄 없이 따라서 빠지며, 마치 순장되는 듯한 슬픔을 봐버리는 게 저만의 특별한 시각인 것 같아요.




Q. <황혼> 시가 평택호에서 시작되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시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A. <황혼>은 느즈막한 저녁에 평택호 들길을 걷다 발견한 늙은 고양이 두 마리에 대한 시예요. 자전거를 타는 아들의 뒤를 졸졸 따라 걸으며, 나즈막한 논둑 고랑에서 늙은 고양이 두 마리가 엎치락 뒤치락 하며 사랑을 나누는 걸 봤어요. 겉모습은 허름하고 초췌했지만,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충분하다는 걸 느꼈죠. 고양이들을 사람에 비유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하는 것에 대한 제 생각을 담아냈어요. 저는 시의 마지막 연을 참 좋아해요. ‘달아나다 평택호에 발이 빠진 저녁 해는 낮 동안 붉게 타오를 때보다 더욱 뜨겁게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생의 마지막도, 붉게 타오르는 황혼처럼 뜨겁게 살고싶다는 마음으로 썼던 부분이에요.

    옛날에는 어린 마음에 70살이 되면 많은 게 끝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70살이 된 지금의 저는 여전히 17살 나이에 좋아하던 것들을 좋아해요.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보거나, 비 오는 창가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 저는 지금도 가슴에 충분히 뜨거운 열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모두들 마음 속에 달 하나 해 하나씩은 가지고 있죠. 그래서 저는 나이가 든다는 게 모든 것이 끝나는 절벽이 아닌, 새로운 용솟음이라고 생각해요.




Q. 붉게 타오르는 황혼 같은 삶을 살고 계신 모습이 참 보기 좋은 것 같습니다.
    <황혼>의 주제인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하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합니다!


A.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는 모두 사랑을 겪으며 늙어가요. 젊은 시절엔 온 힘을 다해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을 하죠. 사랑은 그렇게 있는 힘껏 써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 안 쓴 사랑이 넘쳐난다면 아깝잖아요? 지금은 불 같이 타오르는 사랑 보다는, 포근하고 익숙한 느낌의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배우자와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어느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나니 사실 서로가 안 이뻐 보일 때도 많아요. 하지만 항상 든든하게 내 옆을 지켜주는 모습이 좋아요. 가끔씩 노래를 잘 부르는 모습도 한 번씩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드는 과정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게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사랑을 하는 그 모든 순간순간이 더 좋고 뜨거운 게 아닐까 싶어요.




Q. 앞으로도 지금처럼 계속 시를 쓸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선생님께 ‘시’란 어떤 의미일까요?


A. 저에게 시란, 저를 곧추세우는 척추의 중앙 뼈라고 생각해요. 시는 제 삶을 똑바로 세워주는 지주 같은 역할을 해줘요. 뜨겁지 않게 살아도, 밤새 남몰래 울어도 그러고 나서 한 줄 남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시예요. 뜨겁든 슬프든 제게 시는 삶의 지주이고, 그렇기에 언제든 돌아가서 매달릴 수 있는 곳이에요. 개인적으로 나태주 선생님의 ‘풀꽃'이 참 좋은 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누군가가 내 시를 보고 '아 정말 좋다' 라고 할 만한, 그런 시를 쓰는 것이 제 꿈이에요.




Q. 멋진 꿈이네요! 지금 어딘가에서도 선생님처럼 꿈을 가지고 있을 시니어분들과 청년들이 많을 텐데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청춘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시니어들은 알고 있지만, 시니어에 도착하지 않은 분들은 아직 모르실거예요. 우리가 머무는 정거장에 와봐야 알 수 있는 거죠. 이 정거장에 오기 전에는 여기가 마지막이고 별 거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도 충분히 뜨겁게 살 수 있고, 활활 타오를 수도 있는 곳이더라구요. 요즘 세상에 뭔들 못하겠어요. 삶은 짧다고 하지만 사실 굉장히 길어요. 엊그제 같다는 말도 정말 많이 하는데 살다보면 그렇지 않죠. 그러니 인생에서 잘라내고 싶은 부분이 없도록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되돌아보면 내 인생의 필름 중 잘라내고 싶은 부분이 생길 수도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없게 사시길 빌어요. 두 번 살 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까지 저녁 노을처럼 예쁘게 활활 타오르고 갔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17살 소녀 같은 수줍음과 발랄함이 전해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시란 당신을 곧추세우는 척추의 중앙 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의 인생은 시(詩) 그 자체였다. 답변 하나하나가 마치 한 편의 시를 읊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그렇기에 직접 찾아뵙지 못한 아쉬움이 더 많이 남았다.



세상에는 이미 고민이 많으니, 너무 고민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진심을 다 한다면 분명 잘 될 거예요.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인 만큼 <황혼> 작품의 영상화에 대한 고민과 부담이 참 많았다. 하지만, 붉게 타오르는 평택호의 황혼 같이 뜨겁던 열정과 따뜻한 응원에 우리의 마음도 덩달아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당신 인생의 필름 중, 잊지 못할 하나의 기억을 남겨드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마지막 영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값진 이야기를 진솔하게 해 주신
                                     박은순 어르신께 다시 한 번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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