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도 익숙한 이와 함께라면 낯설지만은 않은 게 여행이고,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경험한 세부는 익숙하지만 낯설고, 낯설지만 익숙하면서, 마주하게 된 순간마다 느낌이 다른 그런 곳이었어요.
무지막지한 코를 찌르는 냄새, 돈을 달라는 행인, 온 가족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모습. 그리고 그곳을 여행하겠다고 온 나.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 여행 오겠다고 한 내가 최악으로 느껴지면서 먹먹하고 막막했어요.
처음에는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 줄까 생각했지만, 이런 행동은 그들의 이런 생활을 지속시키는 것 같아 무책임한 짓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떤 아름다움을 보고, 황홀한 경험을 해도 여행 내내 떠오르는 건 사실이었어요.
어떻게 좋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만이 여행이겠어요. 어쩌면 이리 불편할 이유도 없는데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어깨에 진 짐처럼 함께 했네요. 한국에 간다면 아마 쉽게 잊히겠죠. 내 현실이 더 힘들고 괴로울 테니까요.
세부에 떠나오기 전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떠나기 싫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온데간데 없어져버렸어요.
이번 여행은 생각보다 여유로웠어요. 여유를 사랑하는 내게 꼭 맞는 여행이었어요. 행복하다 라는 감정이 오랜만이라 이게 행복한 건가 싶기도 하고, 행복한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함께 하는 이도 있지만, 순간순간 오롯이 나 혼자인 순간이 있어 좋았어요. 가끔 업무가, 스친 그 사람이 떠올랐지만, 가슴을 짓누르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늘 그랬듯 그런 순간을 뒤로 미루고 있는 건인지도 모르죠.
전 여행이 좋아요. 당장 오늘을 위해, 오늘에만 집중하는 게 좋아요. 전 이번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고, 사랑하는 일몰을 즐기며 편지를 씁니다. 나와 당신의 오랜 행복을 바라고 바라며.
- 2018년 무더운 여름날 세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