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ctober Nov 15. 2020

세부에서 당신에게




낯선 곳도 익숙한 이와 함께라면 낯설지만은 않은 게 여행이고,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경험한 세부는 익숙하지만 낯설고, 낯설지만 익숙하면서, 마주하게 된 순간마다 느낌이 다른 그런 곳이었어요.

무지막지한 코를 찌르는 냄새, 돈을 달라는 행인, 온 가족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모습. 그리고 그곳을 여행하겠다고 온 나. 이런 모습을 보고 나니 여행 오겠다고 한 내가 최악으로 느껴지면서 먹먹하고 막막했어요.


세부, 일몰




처음에는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 줄까 생각했지만, 이런 행동은 그들의 이런 생활을 지속시키는  같아 무책임한 짓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어떤 아름다움을 보고, 황홀한 경험을 해도 여행 내내 떠오르는  사실이었어요.
어떻게 좋고, 아름답고, 행복한 것만이 여행이겠어요. 어쩌면 이리 불편할 이유도 없는데 쉽게 떨쳐내지 못하고 어깨에  짐처럼 함께 했네요. 한국에 간다면 아마 쉽게 잊히겠죠.  현실이  힘들고 괴로울 테니까요.
세부에 떠나오기 전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떠나기 싫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온데간데 없어져버렸어요.
이번 여행은 생각보다 여유로웠어요. 여유를 사랑하는 내게  맞는 여행이었어요. 행복하다 라는 감정이 오랜만이라 이게 행복한 건가 싶기도 하고, 행복한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세부, 마리바고리조트에서 맥주




함께 하는 이도 있지만, 순간순간 오롯이 나 혼자인 순간이 있어 좋았어요. 가끔 업무가, 스친 그 사람이 떠올랐지만, 가슴을 짓누르지는 않았어요. 어쩌면 늘 그랬듯 그런 순간을 뒤로 미루고 있는 건인지도 모르죠.
전 여행이 좋아요. 당장 오늘을 위해, 오늘에만 집중하는 게 좋아요. 전 이번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고, 사랑하는 일몰을 즐기며 편지를 씁니다. 나와 당신의 오랜 행복을 바라고 바라며.


- 2018년 무더운 여름날 세부에서

작가의 이전글 여행, 그리고 당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