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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neaufgabe Aug 24. 2021

배가 고프면 하늘을 본다

문득 이런 문장이 떠오른다. 배가 고프면 하늘을 본다.

 

어떠한 연유로 떠오르는지는 모른다. 일단 조금 있으면 배가 고플 것 같기는 하지만 당장 고픈 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있는 곳은 하늘을 볼 수 없는 곳.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고 너른 천장이 드리워진 곳. 내가 지난 삼십 년 간 배가 고프면 하늘을 올려다 보는 종류의 인간이었는가 자문하면 그렇다고 답하기도 어렵다. 그런 적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기억이 없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배가 고프면 대체로 배가 고픈 채로 있거나 그 순간 먹을 수 있는 것을 먹는다.

 

이 문장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나에게서 온 문장이기는 하지만 나에게서만 온 문장은 아니다. 이 문장은 H로부터 왔다. 오래전 어느날 H의 마음으로부터 그의 의식으로부터 왔다. 나는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 배가 고프면 하늘을 본다. 나는 이 문장에서 단어만 바뀌었을 뿐 구조는 그대로인 그의 한시절을 읽는다.

 

사실 이런 순간은 한두 번 찾아오는 게 아니다. 아니 나는 거의 언제나 이런 순간 속에 있다. 단어만 조금씩 바뀔 뿐 나는 그의 문장으로부터 그날그날을 시작한다. 그때마다 나는 이제 세상에 없는 그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 자신 통째로 그의 문장 속에 들어와 있는 듯이. 그의 마음이나 의식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이.

 

배가 고프면 하늘을 본다……

 

어쩌면 나는 그의 문장을 훔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렇게 방어적으로 말해선 안 될 만큼 혐의는 짙다. 나는 그의 문장을 훔치고 싶었다. 그의 삶을 갖고 싶었다. 나는 그가 되고 싶었다. 그의 문장으로 하여금 나의 생을 그의 생으로 갈음하고 싶었다. 나는 그를 뼈째 먹어치우고 싶었다……

 

배가 고프면 하늘을 본다.

 

어쩌면 이제 나는 정말 H를 먹어치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죽은 이의 몸을 나누어 먹는 어느 소수민족의 사람들처럼 지금도 주일마다 성체를 혀로 녹여 먹는 어느 종교인들처럼 나는 매일같이 제사를 지내고 음복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여전히 빛나는 시절을. 그 영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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