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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ineaufgabe Sep 09. 2021

기억의 행성

근사하지 않나요. 하늘로 곧게 뻗은 중생대의 나무와  커다란 초록 잎을 뜯는 브론토사우르스. 푸르른 풀물을 흘리며 입가에 비어져 나온 이파리를 오물거리는  부드러운 입술을 보세요. 소처럼 순한 눈망울과 주변의 골이 깊은 여러 갈래의 주름과 그로부터 둥근 몸체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 수천만 년의 시간을 건너오며 천천히 주위의 이웃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느린 속도로 길어져 왔을 영원을 닮은 . 나는 간혹  거대한 초식공룡의  목을 바라보면서 가슴 깊은 바닥으로부터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곤 해요. 어떤 막막함이라고나 할까요. 툭하고 잘못 건드리면 울음이라도 터져 나올  같지요.  단순하고 선명한 아름다움을 보세요. 지금 눈앞에 없는 사람에게 저렇듯 유려하고 우아한 신을 닮은 아우라를 어떻게 하면 고스란히 전할  있을까요. 꿈을 꾸는  같지 않나요. 한번 사라지고  것을 다시 보고 있자니 꿈을 꾸는 기분인 것도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은 시간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도 몰라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시간. 한번 사라진 시간. 이제 이곳에 없고 앞으로도 더는 없으리라는 생각을 화석처럼 단단한 확신으로 굳히는 시간. , 로 인해 돌이킬  없는 것들 어떤 들은 기어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이키잖아요. 죽을 죄를 지어서라도 운명의 강 거슬러서라도 가까스로 과거로부터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것들 결국은 복원해내잖아요. 어쩔  없이 근사하겠지요. 형언할  없겠지요. 지금  브론토사우르스의 기나긴 목처럼 이루 말로    없는 지난날, 아름다움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감정은 어렵고 복잡하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므로 이따금씩 인간의 울음을 불러일으킬  하지 않나요. 오랫동안 나는 말들의 힘을 믿어왔지만,  검은 초원처럼 너른 우주에 말로써  닿을  없는 것은 없으리라 믿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    없는 순간, 도대체 말로써는  어떤 것에도 다다르지 못할  같은 무기력의 순간, 나는 그런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단지 목을 놓아 울고 싶어져요. 나는 그런 울음을 달리 부를 말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딛고   깊은 곳에서 발굴해낸 뼈와 , 영혼이란 온데간데 없이 빠져나가서 이제는 영영 돌처럼 굳어버린 오래된 동물의 몸을 쓰다듬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죠. 돌이킬  없는 것들, 돌이킬  없는 것들 중얼거리면서 나는  구름이 몰려드는  하늘을 보았어요. 허연 구름 아래에는 몹시 키가  중생대의 나무와  커다란 초록 잎을 뜯는 브론토사우르스가 어른거렸어요. 푸르른 풀물을 흘리며 입가에 비어져 나온 이파리를 오물거리는 부드러운 입술. 그때 나는  목이  초식의 짐승이 간직해온 일억 오천만 년의 기억을 비로소 조금은 이해할  있을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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