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고른다. 둥근 소반에 쏟아붓고 부스러진 돌과 껍데기를 추려낸다. 콩들은 생김이 제각각이다. 동글한 것, 납작한 것, 쪼글쪼글한 것. 모양이야 어쨌든 정스럽다. 들여다볼수록 고개가 수그러져 목이 아프다. 어쩌자고 밤새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올봄 계획에 없던 밭을 샀다. 땅주인은 욕심내는 사람이 있지만 골목과 맞닿아 있는 우리에게 넘기는 게 맞다 했다. 울타리 안 꽃밭 가꾸기만도 버거운 나는 큰일이다 싶었다. 동네 한가운데라 모양 사납게 묵혀서는 안 될 땅이다. 먹고 안 먹고는 다음 문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심었다.
씨 뿌린 자리마다 풀이 먼저 올라왔다. 손바닥만 한 밭에서 종일 헤어나질 못하고 버둥댔다. 보다 못한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다 말고 우리 밭고랑을 타고 앉았다. 삽시간에 염소가 뜯고 지나간 자리처럼 깨끗해졌다. 몇 배나 넓은 이웃 밭들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곡식들이 절로 자라고 익어가는 그곳에 우렁이 색시가 사는가 보다.
가을이 되자 일일이 손을 거쳐야만 수확할 수 있는 콩만 밭을 지키고 있다. 누렇게 말라가는 콩잎이 바람에 서걱댈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차일피일 미루다 시기를 놓치고서야 거둬들였다. 뽑아온 콩대를 잔돌이 깔린 마당에 포장지를 깔고 나란히 눕혔다. 몸을 부린 곡물은 햇빛을 받으며 곤한 잠에 빠졌다. 아침이면 펼쳐놓았다 해가지면 밤이슬에 젖지 않도록 꽁꽁 싸매 주었다. 폈다 덮기를 며칠 째,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신간이 편하겠다. 마을 사람들은 소리 소문 없이 그새 수확을 마친 눈치다.
햇볕 좋은 날 마당 한가운데 엉덩이방석을 깔고 앉았다. 바람이 꼬투리가 달린 가지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꼬투리들이 입을 달싹거렸다. 떨어지는 볕에 취해있던 나는 빨랫줄에 감긴 간짓대를 뽑아 들고 바닥을 내리쳤다. 화들짝 놀란 콩들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더기로 달아난 콩을 찾아 쥐구멍 들이쑤시듯 자갈을 헤집었다. 얼굴을 내민 콩은 팔수록 깊이 박혔다. 손톱 끝 누런 흙이 훈장처럼 끼었다.
내친김에 콩대를 걷어내고 입을 벌리지 않은 꼬투리를 장화 신은 발로 꾹꾹 밟았다. 콩깍지 추려내기를 서 너 번, 낫으로 베어야 할 것을 뿌리 채 뽑은 탓에 검불을 드날릴 때마다 흙바람이 분다. 까지지 않은 꼬투리는 일일이 비틀었다. 썩거나 여물지 않은 것은 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도태된 때문이다.
글쓰기라고 다를까. 머리만 가지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란 까지지 않은 꼬투리를 비트는 일과 같다. 땅을 일궈 먹고사는 이곳에선 생각보다 몸으로 익히는 것이 우선이다. 이미지가 쌓여 떠오르는 글 역시도 몸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콩알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마음이 토씨 하나를 놓고 고심하는 마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몇 해 지은 글 농사는 얼마 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뿌렸다. 내손을 떠나 누군가에게 뿌리내린 것도 있을 것이고 어딘가에 묻혀 사라기기도 할 것이다. 나는 지금 타작마당에 질펀하게 앉아 다시 새로운 이미지를 주워 담는 중이다. 부스러기를 걷어내니 까만 눈동자 같은 콩들이 나를 올려다본다. 뒤란에서 마주한 쥐의 눈과 꼭 닮았다. 어디든 굴러갈 채비를 하고 있는 호기심 많은 저 눈과 곧 친해질 것만 같다.
소반다듬이한 콩이 수북이 쌓였다. 카메라에 담아 도시에 사는 지인들 단톡방에 올렸다. “무농약 콩 먹을 사람요.”하니, 주문이 빗발친다. 사서라도 먹겠다는 반응에 내년에는 말아야지 했던 마음이 콩 껍질 벗겨지듯 돌아선다. 콩은 완판이다. 자판을 두드려야 수확할 수 있는 내 글은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