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집트를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해외 봉사 활동에서 만난 친구가 마침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이집트 카이로에 체류 중이라 친구 얼굴도 볼 겸 떠나게 되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중국 칭다오였다. 지금은 ‘양꼬치는 칭다오!’를 외치는 티브이 광고 덕분인지 양꼬치 가게가 많이 생겨서인지, ‘칭다오’하면 맥주가 떠오르는데, 당시 20살이던 내게 칭다오는 맥주보다는 그저 어느 한 유유자적한 도시였다. 아니 그냥 국내가 아닌 해외라는 것에 자체에 의미가 있는 도시였다. 예쁜 별장들이 많다, 바다가 있다, 등의 여행지 설명이 많이 있었지만 그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치고 가까운 거리인 것과 비용이 저렴해서였다. 지금이라면 비행기를 탔겠지만 시간이 많고 돈은 없는 대학생이었던 나는 배 안에서 1박을 하면 중국에 도착하는 페리를 이용했다. 시간을 생각하면 저렴한 것도 아닌데 당시엔 시간이 남는 여름방학에,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충당하던 대학생이었으므로 페리를 타는 것으로 쉽게 선택했다.
해외여행은 학창 시절부터의 버킷리스트였다. 미지의 세계와 해외 경험에 관심이 많던 나는 대학생이 되고 첫 방학을 맞자마자 해외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것이어서 계획을 짜며 날밤까지 샜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좀 과했던 걸까. 언젠가부터 마치 과제를 하듯이 계획을 만들고 있었다. 가야 할 코스를 짜고 봐야 할 것들을 적고, 관광지의 사진, 지도까지 모두 부쳤다. A4용지 몇 장 분량을 컬러로 뽑았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만의 여행 가이드북을 만든 느낌? 그렇게 한껏 들떠서 여행을 시작했다.
나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가이드북만 있으면 완벽한 여행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미리 정해놓은 가이드북에는 전혀 없었던 일정이었다. 중국은 위험하다더라, 밤에 다니면 안 된다더라, 이런 말들 속에 저녁 일정은 밥만 먹고 숙소로 들어가게 짰는데 마지막 날 저녁, 친구와 나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일정표를 지키는 대신 바닷가로 나갔다(우리 둘 다 말은 안 해도 일정표에 답답함을 느꼈나). 그곳에는 내가 만든 가이드북이나 인터넷에는 없었던 현지 노점상들이 있었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의외’, 그리고 ‘우연’이라는 재미를 느꼈다. 물론 밤길은 세계 어딜 가나 위험하다. 특히 타지에선 더욱 그럴 터. 당연히 조심해야 할 것들은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날 재미를 느꼈던 것은 ‘밤길’이어서가 아니라 ‘우연’이라는 요소 때문이었을 것이다. 꾸역꾸역 정해놓은 일정을 소화하다가 ‘의외’의 요소가 하나의 ‘일탈’로 작용했고 진정한 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시·분·초까지 여행 계획을 짜고 그 모든 일정을 소화하면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가이드가 안전하게 이끌어주는 패키지여행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다(우리 부모님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게 틀린 것은 전혀 아니다. 미리 정해져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더 편하게 관광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패키지여행은 결제만 하면 크게 준비할 것이 없기 때문에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은 듯하다. 모든 것을 정해놓으니 마치 누가 시킨 일을 억지로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내게 여행은 ‘자유’의 의미가 크다. 일상에서는 보통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을 하고, 쉬고 싶을 때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새벽에 머리가 잘 돌아가도 근무 시간에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일상은 자유가 부족하다.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은 사실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내게 여행이란 그런 빡빡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는 정해진 일정보다는 자유의 영역을 크게 그려 넣는다. 큰 줄기만 짜고 대강의 그림만 그린 뒤 그냥 떠난다. 직장인인 나는 이제 그럴 순 없겠지만, 시간이 많았던 학생 백수 시절에는 편도 티켓만 사서 떠난 적도 많았다.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떠나고 싶을 땐 미련 없이 떠나는 자유가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첫 해외여행에서의 배움으로 여행을 할 때 세세한 계획을 짜지 않는다. 필수로 준비하는 것은 최소한 편도 티켓과(당연하다) 첫날의 숙소 정도. 너무 준비를 하면 인터넷으로 다 보고 가니 감동이 없더라. 그것보다는 소소해도, 유명하지 않아도 좋으니 작은 일탈이 있는 여행이 더 좋았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현지에 뚝 떨어져 계획을 짜기도 한다. 물리적 위치가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현지에 도착하기만 해도 계획이 잘 짜진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느낌은 아닌데, 설레서인지 조금 흥분한 상태로, 계획을 짜는 능률이 팍 오른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낯섦, 그곳 공기의 냄새, 살살 스치는 바람,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그곳에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여행은 시작됐고 전체적인 여행의 그림이 그려진다. 마치 머릿속에 자동으로 무엇을 할지, 뭘 하고 싶은지 입력되는 느낌이다.
이집트도 그렇게 시작했다. 사실 이미 5개월 정도 유럽을 여행해왔기 때문에 지치기도 했다. 카이로의 친구 집에서 머물 수 있었기 때문에 계획은 천천히 짜 보려 했다. 필요한 것은 현지에서 충당하기로 하고, 그냥 이집트 지도를 펴놓고 ‘카이로-시와-룩소르-아스완-다합, 이렇게 삥 돌면 되겠네.’라며 아주 뭉뚝한 계획만 짰다. ‘재미없으면 그냥 한국 좀 일찍 가고, 재미있으면 더 놀다 가야지.’라는 마음으로 유럽에서 이집트로 가는 티켓만 사고 한국행 티켓은 사지 않았다. 이집트란 나라에 대해서는 피라미드? 사막? 아랍문화권? 정도의 누구나 가지는 간단한 상식만 가지고 현지에 뚝 떨어졌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됐었나?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든 생각이다. 그나마 친구가 살고 있어서 다행이었지, 이집트는 나처럼 준비를 안 하고 오면 낭패다. 내가 여태 여행해온 유럽, 아시아 국가들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당연한 기본 상식도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여행 중 들은 이야긴데 험난한 여행지로 인도와 이집트를 자주 비교한다고 하더라. 이집트가 인도만큼이나 여행하기 힘든 나라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집트 문화와 자연에 대한 환상만 가지고 왔다가 바로 out-티켓을 끊어 나가시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나처럼 아예 티켓이 없는 게 아닌데도). 이집트에서 1달을 무사히 잘 버틴 내가 갑자기 대견(?)하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약간 놀랄 정도로 다름이 느껴졌다. 그곳은 공기의 색깔부터 달랐다. 유럽과 아시아를 여행했을 때는 아무리 달라 보여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로 귀결됐다. 사람들 사이에 나름의 질서와 법이 있고 그것을 지켜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랍문화라는 것은 혼돈의 카오스, 무법지대 그 자체였다.
황토 빛 나라, 나의 첫인상이다.
일단 택시를 잡고 친구가 알려준 장소를 말하고 도로를 달렸다. 차 안에서는 난생처음 듣는 아랍음악이 꿈틀거리며 흘러나왔다. 아랍에 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맙소사, 도로에 차선이 없다. 그래서 차들이 뒤엉켜 있었다. 다른 차들도 한번 봤다. 봉고차들은 차 문을 열고 달리고 있었고 바퀴 하나 없는 것은 예삿일이며 심지어 이런 차들에 사람이 2~3명씩 매달려서 가고 있다. 이렇게 무질서 한 도로는 처음 봤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야자수 나무 그림자에 걸려 서서히 지는 커다랗고 붉은 해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듣는 아랍음악과 어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도로 위의 문화 충격과 자연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함께 느낀 참 오묘한 첫인상이었다. 사실 이때까지는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자유를 더 느꼈던 것 같다.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일은 나는 못 하지만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습을 보며 약간의 대리만족을 느꼈나 보다(직접 그럴 생각은 없다). 차선도 없고 질서도 없는 도로를 보며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차올랐다.
실제로 이집트에는 횡단보도가 거의 없다. 1달을 여행하면서 카이로에서 아이스크림 사러 가는 길에 한번 봤다. 횡단보도가 없다는 것은 무단횡단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사람이 지나가면 차들이 알아서 비켜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했다면 금물이다. 사람이 지나가면 오토바이와 차들이 우 윙-하며 더 빨리 온다. 하하거리며 웃으며 지나가는 데 아주 얄밉다.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내 동행 중 한 명은 나를 만나러 오는 길에 사람이 오토바이에 치이는 모습을 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으니, 일어나서 따질 때 쓰는 손가락 모양을 하며(손가락을 모두 모아 하늘을 향하게 하면 ‘조금’이라는 뜻이다. 싸울 때는 이를 살짝 폈다 모았다를 반복하는데 그럼 ‘좀!’이라는 뜻 같다) 싸웠다고 한다. 빈부격차가 심하게 나는 국가라 보험도 없을 것이고 병원도 못 가니 이렇게 치여도 길바닥에서 싸우다 마는 것이다. 거리에 은근 다리 저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차 문은 왜 열고 달리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리니 친구네 동네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친구가 마중 나와 있었다. 너무 반가워서 포옹이라도 하려 했는데, 나와의 인사도 뒤로 한 채 택시기사와 싸우기 시작한다. 중국말처럼 그냥 발음이 세서 싸우는 것처럼 들리길 바랐는데 진짜 좀 싸웠단다. 요금이 생각보다 비싸게 나와서 언성을 높였고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를 봐주었다. 나름 귀엽고 순하던 내 친구가 그렇게 인상을 팍 쓰며 대뜸 택시기사와 싸울 줄은 몰랐다. 성격이 세진 친구를 보고 ‘타지 생활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 모습은 며칠 지나지 않아 내게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것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