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입국 하루 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시와 사막에 가려는 자신의 친구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미리 버스를 예약해준다고 했다. 러시아, 발트 3국, 폴란드까지 유럽의 마지막 여행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친구의 배려가 고맙기도 하고 동행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승낙했다. 그리고 이집트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출발했다. 친구 집에서 대강의 계획에 살을 좀 붙이려 했는데 도착한 당일에는 친구가 초대된 선상 파티에 함께 가서 또 시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힘을 내기로 했다. 인샬라(ان شاء الله)
‘인샬라’는 내가 이집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이다. ‘신의 뜻대로’라는 뜻인데 그 뜻 그대로 사용하거나 주로 작별인사로 썼다. 특히 한국인 여행객들끼리는 ‘우리의 여행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행운을 빈다.’는 의미로 자주 썼다. 이집트 여행을 하다 보면 정말 한 치 앞을 모르겠는데 딱 적당한 말 같다. 현지에서 잘 쓰지 않은 말이 있는데 ‘미안해’다. 현지에 체류하는 친구에게 ‘미안해’가 아랍어로 뭐냐고 물어보니 “미안해? 모르겠는데.” 한 번도 안 썼다고 하더라. 해외 나가면 어깨만 부딪혀도 ‘Sorry.’를 내뱉었는데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한다는 게 참 신기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미안해(아시프(أنا آسف))라는 말은 듣지도, 해보지도 못했다. 이게 마쓰리(이집트 사람)의 성향인가 싶다.
밤 버스는 너무 추웠다. 자리가 여유 있어서 두 자리를 차지했지만 잠들 수 없었다. 버스 아래쪽에서 계속 찬바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태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 어디에서든 버스가 따뜻하면 따뜻했지 이렇게 추운 적은 없었다. 버스에 구멍이 뚫렸나…. 이집트의 밤 버스를 타면 꼭 이렇게 어디선가 찬기운이 느껴졌다.
유럽과 반대로 이집트 여행의 성수기는 겨울이다. 여름은 심각하게 덥고 ‘라마단’이라는 금식 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물도 못 마시며 담배, 성관계까지 금지된다. 이슬람에선 이 기간을 신성한 기간으로 여겨 하루에 5번 기도를 올린다. 물론 여행객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만 문을 닫는 식당이 많고 관광지들이 단축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아 여행에 애로사항이 생긴다. (물론 이 축제 기간을 체험하기 위해 일부러 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태양의 나라, 이집트는 겨울에도 물론 뜨겁다. 시와에서 조리를 사다가 여행 내내 피부처럼 신고 다녔는데 그 모양 그대로 발이 새까맣게 탔다. 햇빛이 따가워서 긴팔, 긴바지로 피부를 보호했다. 뜨겁지만 습하지 않아 기분 나쁘게 덥진 않다. 그래서인지 햇빛 아래에서 한 발짝만 움직여 그늘로 들어가면 매우 시원하다. 마치 한 장소에 전혀 다른 두 공간이 공존하는 것 같다. 낮에 뜨거운 대신 밤에는 확 식는다. 식다 못해 스산하다. 겨울은 겨울이다. 더운 나라의 특성상 난방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이 많다. 내 생각에는 겨울밤엔 보일러를 최고로 틀어야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보일러도 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춘 곳이 없어 자다가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집트라는 더운 나라에서 추워서 잠을 못 잘 줄이야. 참 반전이 있는 나라다.
시와에서 산 싸구려 조리. 여행 중반쯤 되니 조리 자국과 상처들이 보인다.
추위를 이기며 도착하고 보니 일행 중 한 명이 우리 버스에 바퀴가 하나 빠져있었다고 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었지만 이집트는 역시 인샬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