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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오늘은 Jun 26. 2021

나는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_1

'오늘이 며칠이더라.'


  웬일로 일찍 눈이 떠져서 느긋하게 출근 준비를 하며 폰으로 달력을 열어보니 어느새 6월도 끝자락이다. 하루하루 되는대로 지내다 보니 날짜 개념을 잊곤 한다. 휴학을 한지가 어느덧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소분해놓은 냉동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으며 어김없이 복학하기까지 남은 기간 동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먹던 반찬을 대충 꺼내 밥을 먹고 시간을 보니 출근시간이 40분 정도 남아있었다. 요즘 매번 아슬아슬하게 준비를 하고 콜택시를 타고 출근을 해서 늘 내일은 꼭 걸어가리라 말만 했었는데 오늘이 딱 걸어갈 날인가 보다. 30분 전에는 출발을 해야 해서 바삐 옷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선다. 30분이나 걸을 생각을 하니 벌써 정신이 아찔했다. 안 그래도 요즘  비가 많이 와서 날이 계속 습하다 보니 짜증이 슬슬 올라온다. 사실 일하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진짜 딴 데로 세서 지각을 면치 못할 것 같아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른 생각을 하기로 .




  8개월 뒤면 복학인가... 내가 휴학을 이렇게 길게 할 줄은 몰랐는데. 이게 다 3학년 때 인간관계와 바쁜 생활에 질려서다. 막 휴학을 했을 때는 참 힘들었다. 이리저리 많이 재보고 몇 명만 내 바운더리에 들어오게 하는 주제에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내고 싶어 하는 나는 대학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단체의 이들에게 배제된다는 느낌을 받으며 서서히 무너졌다. 인관관계에서 척을 지는 편이 아닌지라 노골적인 적대감을 너무나 오랜만에 느껴 당혹스럽다 못해 억울했다. 관계의 어긋남에 나의 탓이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잠에 드는가 하면 겪은 일들과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다 지나간 일이다. 그렇게나 힘들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시간이 지나며 상처가 됐던 일들은 자연스레 잊히고 애증의 감정 역시 사그라들어 이제는 형체조차 남지 않았다. 인간관계라는 게 대게 그랬다. 어쩔 수 없이 묶여있는 것만 아니라면 몸과 마음이 멀어지면서 차차 괜찮아졌다. 이번 달은 무사히 지나갔구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데도 잠 못 드는 일 없이, 큰 고민 없이 지냈구나. 하는 생각들을 하다 보니 학원에 도착해있었다.




  애들 오기 전에 간단히 수업 준비를 하는데 대뜸 카톡 소리가 빈 교실을 울린다. 급히 소리를 진동으로 바꾸며 상단바를 내려 누군지를 확인하자 바로 속이 한 것 마냥 슥거린다. 엄마였다. 대충 온 길이를 보니 한 통으로 안 끝나겠다 싶어 진동모드를 다시 무음으로 바꿨다. 때마침 도착한 아이가 영어로 인사를 건네서 급히 폰을 뒤집어 놓고 수업을 시작했다.


"일단 어학기 먼저 키고~ 어제 진도 나간 부분 기억나니?"

"맞지. 오늘은 그 부분 복습이네~ 듣기하고 오세요~"


 우리 학원은 오자마자 듣기를 20분 정도 하고 그 내용을 같이 짚어가며 복습하는 식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가 듣기를 시작하면 시간이 남는다. 원래는 그 시간에 이 타임에 같이 수업을 듣던 다른 학년 친구를 봐주는데 저번 주에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학원을 그만둬서 20분간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가만히 듣기 하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자꾸 아까 언 듯 본 카톡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읽고 나면 이 번 달의 안정감이 일순간 깨질 것 같아 한참을 머뭇거린다. 그녀와의 관계야 말로 몸과 마음이 멀어져도 괜찮아지지 않는 유일한 것이었다. 볼펜으로 빈 공책을 툭툭 치다가 이내 폰을 집어 들었다. 그새 긴 카톡이 10통이나 와있다. 대충 옛날 잘 지내던 때가 그립다는 것과 본인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 나와 다시 잘 지내보고 싶으니 연락 달라는 내용이었다.

 남이 보면 연락 안 하는 딸과 어떻게든 잘 지내보고자 하는 엄마의 애틋한 마음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가슴속에서 욱하는 감정이 올라올 뿐이다. 뻔뻔하기도 하지.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 내가 다시 그녀에게 연락을 해본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그저 불편하게 삐걱대며 엇갈리다가 몇 번이고 기워내서 너덜거리는 상처를 한 번 더 헤집을 뿐이다. 달라졌다는 말도, 내게 미안하다는 말도 그 어느 것 하나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당신은 이미 두 달 전에 죽은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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