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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오늘은 Dec 24. 2020

연말에는 개같은 선물을 받는다.

 연말이 다가오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밖을 나가면 어디든 캐롤들이 들려오고, 친구들은 하나같이 시간이 왜 이리 빠르냐며 볼멘소리를 낸다. 그 소리 속에서 정작 나는 내가 한 해를 보람차게 보냈는지 평가하려들기 시작하는데 그게 인생을 인생극장화 시킨다. 인생극장은 이번 한 해는 뭘 얼마나 이루어냈는가를 정량평가하려 드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거리를 수놓을 조명은 흑백이 되고, 신나는 캐롤은 따다다단ㅡ하고 구슬픈 소리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따지고 보면 정량평가가 아니라 정성평가다. 얼마나 이루어냈느냐 개수를 세어가며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보다는 이 한 해동안 뭘 얼마나 느꼈고 그것이 나의 생각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를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은 분명 인생 전반에 도움이 되겠지만 자신을 짜여진 틀에 꽉 맞추려 들 필요는 없다.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 노력해도 향상심은 강하고 미래는 불안한 우리 20대들은 어차피 스스로를 채찍질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불안이 자신을 좀 먹어 되려 독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토닥여야 한다.


 '와 이러다 죽겠다.' 생각에 도피성 휴학을 한 나는 1년을 아주 보람차게 쉬었다. 대학 입학 후 3년간 눈 앞에 무엇이든 가져다 놓고는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식으로 학교생활을 했는데 학과와 학교 소속 단체에서 임원을 도맡아 하며 바쁘게 산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에 희열을 느끼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3학년 때 학교 단체에서 회장을 맡으면서 버닝 아웃이 씨게 와서 '쉬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휴학을 결심했지만, 졸업 전에 뭔가를 더 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과 압박도 그 결정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나는 보통 휴학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새해에 적어서 벽에 붙여놓았는데 그중에는

타투하기, 카메라 사기, 해외 휴양지로 여행 가기, 영어회화 배우기, 큰 대외활동 시작하기, 꾸준히 책 읽기, 워킹홀리데이 가기 등이 있었다.

이 1월의 나는 2월 이후부터 전 세계를 강타할 전염병으로 그 대부분의 계획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할 말은 많지만 코로나가 나에게만 닥친 재앙이 아니기에 그에 대한 아쉬움은 뒤로 하기로 한다.


 나는 싸~가지 없는 코로나가 판치는 와중에도 대외활동을 2개 마무리했고 공모전에 2번 도전했다. 그중 하나는 본선에 올랐다는데 은근히 수상을 기대하는 중이다. 또 학업부진 학생을 가르치는 멘토링을 두 학기 동안 진행했으며, 간중간 코로나 때문에 강제 실직자가 되긴 했으나 알바를 열심히 뛰었다. 그 돈으로 월세도 내고 휴대폰비도 내고 술도 먹고 옷도 사고 예쁜 타투도 하나 겼다. 책이랑 담을 쌓은 나라서 솔직히 많이 읽었다고 말은 못 하지만 나름 책과 친해졌고 아무도 모르게 유튜브에 영상을 하나 만들어 올렸으며, 잠 안 올 때 몇 자 끄적이다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친구들 얼굴 보기 힘든 와중에도 좋은 새 친구들을 사귀었고 지금은 지나갔지만 두 번째 연애도 했다. 알바하는 곳에 손님이 너무 없어서 짬짬이 하고 싶었던 일본어 공부도 조금 찌끄렸다. 꽉꽉 채워 보내지는 못했지만 지친 마음을 충분히 쉬게 했다.

 주기적으로 우울해지는 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썩 큰 이유가 있는 우울이 아니라 대뜸 찾아오는 거라서 눈치 없는 친구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웃긴 건 나름 친한 친구라서 꼭 경조사가 아니더라도 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날 만나러 오는 거지. 그게 내가 원치 않는 방문이라는 게 킬링 포인트. 현대인에게 우울증이란 감기가 아니던가. 집이 막 어려웠던 중학교 1학년 때는 남에게 치부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집에 한 바탕 소동이 있는 날이면 오히려 더 밝게 학교에 갔다. 아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였겠지. 그때는 세상에 기댈 곳 하나 없어서 친한 친구를 별 이유 없이 미워하기도 했었다. 그 친구는 막둥이에 위에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오빠가 둘이나 있어서 사랑받은 티가 났기에 질투를 했던 것 같다. 자격지심으로 괜한 심술을 부렸다. 웃으며 학교에 다니긴 했으나 그 속이 문드러져 어지간한 일로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았어서 시험에서 한 문제 틀린 것이나 넘어져 무릎이 까진 것만으로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친구를 보며 남몰래 불행의 크기를 비교하고 '저게 뭐라고' 따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불행의 크기를 무게 재듯 잴 수 있는 게 아닌데 그걸 그 당시에는 몰랐다. 지금은 다행히도 내가 특별히 '더'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막상 뚜껑 열어보면 안 끓는 냄비가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모두 한 번씩은 끓고 가끔 감기에 걸려 콜록이는데 그 시기가 다를 뿐이다.


 생각해보 휴학을 하고도 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 자신을 내내 닦달했던 것 같다. 코로나로 생각처럼 되는 게 없고 알바는 툭하면 쉬게 돼서 생활도 만족스럽지 못하니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자기애와 자존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유명한 내가 작년 말부터 이번 해 초중반까지는 자신에 대한 불만으로 끊임없이 불안을 만들어냈다. 올해에 인생극장을 세 편정도 찍으며 반짝이듯이 행복하고 지긋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한 해를 되돌아보니 드문드문 얼굴을 들이밀던 그 행복들이 어두운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들 같아 바라보는 것만으로 작은 만족감이 피어오르게 하는 것이다.

 연말이 되니 새삼스럽게도 다음 인생이라는 개같은 선물을 받았다. 가만히 보니 삶 자체가 선물상자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누군가 멋대로 열어보면 기분이 나쁘고, 뭐가 나올지 몰라 기대되고. 안에  게 보잘것없더라도 막상 내가 풀어 보여주면 의미가 있으니까. 나는 우울할 때 슬픈 노래를 듣는 부류의 인간인데 이게 의외로 도움이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묘한 동질감이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넓은 세상에 혼자 버둥대고 있다 생각하면 서럽지만 다같이 버둥대고 있다 생각하면 조금은 우스워지듯이 내 글을 읽는 사람도 그러기를 바란다. 내가 풀어 보여준 선물상자를 보고 누군가는 위안을 얻기를.

그리고 모두가 2020년에게 예쁜 작별을 고하며 자신이 가진 개같은 선물상자를 웃으면서
풀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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