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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Nov 06. 2020

심장병


아마도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어떤 이유에서,
개의 수명을 그 주인인 사람의 수명보다
다섯 배나 짧게 분배해 놓은 것이 틀림없다.


삶이란 것이 얼마나 무상하게 빨리 지나가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슬픈 경고와도 같은 사실을 우리는 경험하니까 말이다.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가' 중에서/ 콘라드 로렌츠



새로 만난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삐삐가 동네 병원에서 피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를 한 게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또 검사를 받는 것이 필요할까? 물었다.

동물병원은 원체 검사비가 비싼 데다 과잉진료가 많기 때문에 의심스러워 한 소리였다.  


그런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개에게 3개월은 사람의 일 년 과 같은 시간이라고 하였다.

(나는 언젠가 책에서 저 글귀를 읽었는데

 느낌상으로는 더 짧은 것 같다. 함께 보낸 나의 개들의 한 세월이..)


그리고 검사 결과,

다리 수술을 한 지 거의 일 년이 지난 2018년 1월 11일.

삐삐는 심장병 판정을 받았다.


단지 코가 마른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건데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청진기로 심장 소리를 들으니 잡음이 들린다고 하여

X 레이 사진을 찍었는데 증상이 명확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니 자세히 설명해주어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람과 마찬가지로 삐삐는 심장에 있는 밸브가 잘 닫히지 않아 혈액이 역류하는 심장판막증이라고 하였다.


보통 심장병이 한참 진행된 뒤에 뭔가 이상을 느껴서 병원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삐삐는 초기에 발견한 것으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데 심장 약은 중간에 끊을 수 없을뿐더러

약을 먹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병은 아니라고 했다.

약 값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그걸 감당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의사가 알려주었다.


일단 처음에는 최소한으로 약을 쓰기로 하고 약을 받아왔다.

사실 동물 병원에 다니는 것이 큰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

사람처럼 의료 보험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보통 사람 병원비의 10 배가 넘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르던 개를 버리는 경우를 방송에서 보거나 들으면

그런 사람을 욕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면도 있었다.

우리 집이 병원비를 감당할 경제적 여력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고

적어도 개 한 마리를 입양하려면

15년 정도를 함께할 책임과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매달 병원에 가서 4주 치의 약을 받았고

3개월마다 심장 x-ray 사진과 6개월에 한 번씩 초음파 검사를 했다.

심장병이 생기면 심장이 점점 커지고 두꺼워져 피가 원활하게 흐르지 않고

피가 역류하는 등 많은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잠을 잘 때 호흡수를 체크하며 1분에 20- 30회가 넘지 않도록 살피고

기침을 할 경우는 당장 병원에 와야 한다고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진행이 되면 폐에 물이 차는 폐수종도 생길 수 있다고 말하며

숨이 차면 산소방도 필요하다고 했다.

일단 초기이므로 혈압과 콩팥, 간을 보호하는 약을 준다고 했고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약을 먹이는 생활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집에 돌아와 미장원 원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삐삐 가족에 대해 물었다.

사실 그때까지 정확한 삐삐의 출생 연도와 날짜도 모른 채 데리고 왔는데

다행스럽게 삐삐의 모 견과 형제 한 마리를 데리고 사는 원래 주인과 전화 통화를 하게 되었다.

삐삐는 그 집에서 태어나 부산 미장원으로 오게 된 것이고, 결국은 내 품으로 오게 된 것인데  

그의 말에 의하면 삐삐 엄마도 심장병으로 죽었고 형제 한 마리도 얼마 전에 죽었다고 했다.


혹시 가족력으로 인한 심장병인가? 의심도 했지만 소형견들은 심장병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등 경험자로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병원에서도 호흡이 힘들어지면 산소방 설치도 필요하다고 했던 터인데

렌트를 하면 되니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나의 막연한 걱정은 약을 먹이면서 차츰 가라앉고 줄었다.


당장 사료부터 처방받은 것으로 바꿨는데

삐삐는 사료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잘 먹어주었다.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나는 하루에 두 번 사료만 주는 것이 어쩐지 미안하고 불쌍하여

(제이피도 그러했고) 사료에 강아지 통조림을 섞어주거나

닭을 삶아서 기름을 제거하고 고기만 뜯어서 조금씩 넣어 주었다.


삐삐는 닭뿐 아니라 야채를 참 잘 먹었다.

우리가 입양하기로 결정할 때 미장원 누나가 삐삐가 당근을 잘 먹는다고 하며

시범을 보여주었는데 생 당근을 먹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마치 토끼처럼 개가 당근을 먹다니...? 신기했다.

삐삐는 야채를 잘 좋아해서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 등을 다 먹는데

특히 양배추를 아주 좋아해서 우리 집에는 양배추가 떨어진 적이 거의 없다.

간식으로 사과를 즐겨 먹었는데 삐삐 때문에 우리도 사과를 늘 같이 먹었다.


사과가 먹고 싶어 방에 따라들어 온 삐삐


그 덕분에 냉동실 칸에는 며칠 먹을 만큼의 닭고기와 찐 야채를

작은 컨테이너에 소분해 담아서 항상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그러나 체중에 늘 신경 써야 했으므로 대신 사료는 적게 먹이는 편이었다.


삐삐는 개 껌이나 간식을 좋아했는데 그 두 가지는 입맛이 까다로워

절대로 안 먹는 것도 많아 항상 같은 것을 골라야 했다.

나는 당뇨가 있어서 운동이 꼭 필요한 사람이라

20년 가까이 피트니스센터로 운동을 하러 매일 아침마다 나갔다.

그 시간에 나가는 건 제이피도 삐삐도 알고 이해하는 듯했다.

제이피는 껌을 좋아하지 않아서 쳐다보지도 않았고

 “엄마 갔다 올게” 하고 현관문 쪽으로 가면 슬며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다가 집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순순히 포기하되 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두 녀석 다 내가 나가는 일정한 출근 시간이 아닌 때에 나가면 난리가 나고 따라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삐삐는 개 껌이나 간식을 좋아해서 나갈 때 빈손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간식이나 껌을 던져 주고 나가면 그것을 뜯어먹느라 나가는 걸 보는 둥 마는 둥 하니  마음이 편했는데

그것도 그 순간뿐 껌을 해치우는데 불과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듯 집안 여기저기에 간식과 껌을 숨겨놓고 외출을 했다.

나는 껌을 해치운 순간부터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나를 기다릴 삐삐 생각에

언제나 급하게 집에 달려왔고 밖의 외출은 최소한 삼갔다.


껌을 맛있게 뜯어먹는 삐삐


사실 삐삐를 처음 데리고 올 때 미장원 원장과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우리가 언제든 여행을 갈 때에는 삐삐를 맡아주기로 한 것인데

특히 일 년에 한 번은 딸을 보러 하와이에 가야 하니 부탁했던 것이다.  


제이피가 떠난 후 여행의 재미를 알게 된 나는 딸이나 동생과 함께

스페인, 북유럽, 인도 등 나이가 더 들면 힘들어서 갈 수 없다는 먼 거리 여행을 다녔다.

남편은 젊은 시절 일로 많은 여러 나라를 다녔으니 나에게 양보를 한 셈인데

하와이가 아닌 나머지 다른 여행은 남편과 함께 다니지 못하고 항상 교대로 집을 지켰다.


그러나 이미 삐삐는 미장원 시절의 삐삐가 아닌 우리 집 아이가 되어서

아무렇게나 대할 수 없는 신경 쓰이는 존재로 인식한 것 같았다.

우리는 여행을 갈 때면 천덕꾸러기로 지내게 할 수 없어

삐삐 물건과 음식 등을 챙겨 가서 이것저것 주의 사항을 알려주고 부탁했다.

호텔비만큼은 아니어도 하루씩 계산을 따져 돈도 건네고 잃어버리지 않도록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애완견 호텔보다는 그곳이 나았다.

감옥처럼 가두어 두지 않고, 자기가 2년 넘게  살던 고향이고  전 주인이 아닌가?


하루는 내가 하와이를 가기 전 솔직히 이야기해달라고 원장에게 물었다.

삐삐는 우리가 맡기고 간 날부터 올 때까지 매일 기다리며 문 앞을 바라보며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짖는다고 했다.

손님이 드나드는 곳에 개가 짖어대니 돌아가는 손님도 있을 것이고

하필이면 그 상가에 독서실이 들어왔는데 삐삐가 자꾸 짖어대니 데리고 있기가 힘들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심장병 발병 이후 매일 약을 두 번씩 먹여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만약 아파서 무슨 일이 생기면 난감하니 삐삐를 맡아주기 난처한 눈치였다.

병원에 맡겨진 삐삐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다니는 병원에 맡기기 시작했다.

병원을 다닐 때 호텔을 유심히 보고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일단 24시간 운영하여 사람이 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걱정은 하루 종일 갇혀 지내야 하는 것이니 얼마나 죽을 노릇인가?

의사는 삐삐를 살뜰히 챙겨 줄 것을 약속했고 가끔씩 병원 옥상에 데리고 나가겠다고 했으며

사과를 먹는 동영상도 찍어 보내주었다.


하와이에서 지내는 2주가량의 시간은

나도 삐삐도 너무나 힘들었다.

밤에 도착해서 데리러 갔더니 얼마나 짖고 울었으면 목이 쉬어서 마치 성대 수술을 한 것 같았다.

나로서는 일 년에 한 번은 겪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딸을 만나는 기쁨도 크지만 두고 온 삐삐 생각에 하와이에서 지내는 시간이 마냥 편안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떠나올 때마다 딸은 울었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아이들은 이런 엄마를 이해해주었다.

우리 엄마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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