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갑과 장갑의 의미
정공은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동네 뒷산 올레길에 운동을 나섰다.
올해 더위는 정말 대단했다. 여름철 내내 폭염이 계속되어 운동은 엄두도 못 냈었다.
"역시, 절기는 못 속이 네~ 제 아무리 덥다 하더라도 이제는 가을 앞에는 물러서야지."
"그래요, 공기가 다르네요."
아내도 맞장구를 쳤다.
두어 시간 정도 걸리는 올레길을 순식간에 다녀왔다.
마을로 내려오면서 중간 쉼터에 들러 요기도 하고 땀을 식혔다.
"요즘~ 체육관에 운동하는 사람이 없지, 아마도.........."
"아니에요, 늘 하는 사람은 꼭 와요."
"그래? 당신은 요즘 체력이 안되어 안 간다며......"
"그냥, 동호회 모임에 참석만 하지요."
정공은 동네 민턴 동호회 모임에 안 간 지 오래되어 자뭇 소식이 궁금했다.
"A 동생은 오는가? 안 본 지 오래되어 얼굴도 잊어버리겠네..........."
"당신과 같이, 정년 퇴직한 이후로 바쁜가 봐요."
"아니, 나처럼 남는 게 시간인데~ 뭐가 바빠서.........."
정공은 A 동생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지난날을 추상하였다.
A 동생은 20여 년 전, 동네 민턴 동호회에서 만났다.
그 당시에는 삼총사라 불리는 친구 2명과 함께 동네 민턴 구장에 등장하였고, 정식으로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친구 2명은 민턴보다 딴생각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딴생각이란 그들 마음을 모르기에,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운동보다 주색잡기를 더 집착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A 동생은 삼총사들 가운데 가장 멋쟁이라고 할 정도로 용모도 준수하고 몸동작도 빨랐다.
그러다 보니, 민턴 구장에서는 단연 인기 스타로 급부상했다.
게임에 열중하는 것은 기본이고 민턴 회원들과 자연스럽게 친분 관계를 쌓아 나갔다.
"형님! 민턴은 스텝이 중요하지요, 제가 방법을 가리켜 드릴게요."
동생은 민턴 코치보다 더 자세하게 가르쳐 주며 기술을 전수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기 게임도 열중하고 틈틈이 정공에게 가르침에 최선을 다했다.
게임이 끝나고 삼삼오오로 근처 먹거리집에서 음식과 대화를 즐기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동생은 재빨리 인사하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친구 2명만 일행들과 웃고 떠들며 동생이 가는 것에 대해선 그리 신경을 써지는 않는 듯했다.
지금까지 항상 동생은 20여 년 전이나, 최근에도 한결같이 똑같은 행동을 보였다.
뭐가 그리 빠쁜지는 몰라도 놀 때는 확실히 놀고, 자기 시간은 확실히 챙기는 것 같았다.
"형님! 뭐 하세요? 요즘 구장에도 잘 오지 않고........."
최근에 정년 퇴직해서 한창 게임을 즐기는 동생이 오랜만에 전화가 욌다.
"뭐 하긴, 그냥 그저~ 그렇게 하고 있지........."
"형님! 그럼 아직까지 백수로 계세요?"
"백수는 맞는데, 학생이지~ 불교대학생!"
"불교대학? 형님 대단하시네~ 스님 되겠어요."
"몰라, 아직은~ 그냥 열심히 배우는 중이야."
"공부도 좋지만~ 형님세대에는 건강이 최고예요, 운동 말이죠."
"공부도 운동이지, 머리 운동이지."
동생은 그냥 안부 삼아 물었는데, 자신은 조금은 의외란 생각이 들었는 것 같았다.
"형님! 백수의 철칙을 아세요?"
"그게 뭔데?"
"아내보다 일찍 출근한다!"
"어디로 출근한다 말이야?"
"도시철도로~ 가능한 오전 10시 이내로......."
"그리고?"
"식사는 무료급식소가 아니면, 컵라면, 김밥 등으로 해결한다!"
"그리고?"
"도시철도를 타고 왕복하며 시간을 최대 활용한다!"
"어떻게?"
"풍경을 감상하며 눈으로 담는다, 또는 글로써 기행문 형식으로 적는다!"
"아주 시적이군, 그건 나도 좋아하는 것이네."
"당신은 무척 그 동생을 좋아하네."
"민턴도 잘 치고 싹싹하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사고와 부지런하며, 장점이 많은 친구야."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지요."
"그야 그렇지, 허지만 장점이 많아서 단점이 잘 보이지 않지."
"당신과 같은 공무원 출신이라 그래?"
"물론 그런 것도 조금은 있지만, 그 동생은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점이 좋아."
"저만 그렇지, 남들에게도 그런가?"
"어쨌든 시간관리를 잘하다 보니, 남들에게는 악바리라고 불리기도 하지."
"당신은 그 동생이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해타산이 밝고 악착스럽기까지~ 남자가 쫀쫀하게........"
아내는 동생을 별로 시큰둥하게 말하지만, 정공은 왠지 그 동생이 좋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음을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마음대 마음으로 통할 때도 무척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거와 말로 표현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한때, 정공은 정년 퇴직하고 잠깐 초등학교 근무할 때였다.
동생이 두터운 가죽장갑을 선물했다. 추운 겨울, 학교 교문을 열 때 사용하라고 준 것이다.
차가운 금속 문을 열 때~ 따뜻한 장갑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아마도 불교대학 수업을 받을 때, 스님께서 S보살이 선물한 손지갑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한 느낌과 같았다.
스님께서 참 아름답다고 한 것은 그녀의 마음을 본 것이었다.
겉치레가 요란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수놓은 지갑이 청정한 아름다움으로 교감된 것 같다.
역시, 정공도 동생의 장갑 선물을 받고 교문을 열면서 정말 아름다운 동생의 마음을 읽었던 것이다.
물건이나 선물보다, 그것을 전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고 따뜻하게 전해오는 것을 느껴 보았다.
손지갑은 S 보살이 정성스럽게 수를 놓은 것으로 지극한 정성과 마음으로 완성하였다.
장갑은 동생이 형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전달한 것으로, 두 사람의 마음이 많이 닮았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은 지천에 널려있다. 그러나 눈이 있어도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참 아름다움이라는 마음의 아름다움이다.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마음이 통해서야 만이 가능한 일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게 되면 모든 것을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정공은 불교공부를 하면서, <금강경> [보현행원품]에 광수공양(廣修供養)이란 구절이 생각이 났다.
널리 공양을 닦으라는 뜻이다.
공양가운데 최고가 법공양이라 한다.
법공양이 부처님께서 원하고, 원하는 것을 올려야 복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인생에서 선물도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방도 흡족하고 내 마음도 편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