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연인의 마지막 장을 쓰고 싶어. "
분명 어젯 밤까지만 해도 나는 이 영화의 존재조차 몰랐다. 요즘 가장 유행하는 헌트나 한산 등의
영화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았었다. 비가 내리는 어젯 밤, 갑자기 혼자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갑자기 영화가 보고싶어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 밤. 다음 날이 심지어 공휴일인 그런 날 밤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는 것은 시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영화 어플을 켰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다양한 극장들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으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건 메이저 영화관인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가 있다. 각 그룹사마다 다양한 장단점이 공존하지만 개인적으로 CGV 강변점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이 영화관 안에는 전도연관이 존재한다.
전도연관은 흥행하는 작품들을 다루는 것이 아닌 예술, 독립영화 등을 다루는 관이다.
메이저 영화들 보다는 사람들에게 마이너라고 불리는 영화들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도시에 단비같은 영화관이다. 그래서 어제도 요즘 흥행작품을 볼까 하다가 우선 전도연관을 확인하고 싶어서 먼저 봤는데 그 관에서 하던게 베르히만 아일랜드였다.
다른 영화와 고민을 하다 관람객 후기를 찾아봤는데 다른 영화에 비해 평점이 단단했다.
대부분 기본 8점은 깔고 가길래 기대를 했었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평과 또 다른 나인 것을 모르고. 후기만 본다면 약간의 절절한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했고 보고 나온 나의 평은 예술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만 읊자면 그렇다. (어떻게 보면 반 스포일 수도 있지만
이걸 본다고 해서 결말을 보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나는 아직도 그 결말이 의마하는 것에 대한 정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커플이 본인들에게 영감을 강하게 주었던 베르히만이라는 감독이 살았던 집으로
새로운 집필을 위해 떠났다. 인생을 비교적 짧게 살았던 베르히만은 영화 50편이라는 흥행이자 많은 작품을 찍어낸 감독으로도 유명한데 그렇기에 그가 살았던 집들이 영감이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그들 또한 그것을 원해서 잠시 임대한 것이므로.
영감을 일으켜주는 집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창문을 열면 드넓은 공터가 보이고 건너편에는 풍차집이 보인다. 풍차집에 가서 창문을 열면 드넓은 공터 옆에 집이 보여 서로 창문을 통해 인사도 가능한 집이기에 이 커플은 서로 나눠서 썼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스토리나 연출적인 면 보다는 풍경적인 매력때문에 이 영화를 가끔씩 다시 찾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예뻤다.
매우 순탄하게 써내려가는 토니와는 다르게 크리스는 좀처럼 써내지 못했다. 자꾸 결말이 막힌다는 이유였다. "오랜 연인의 마지막 장을 쓰고 싶어. 실패와 배신, 흥분의 연속이면서 가끔 찬란히 행복했던 이야기의 마지막 장을" 하지만 영화가 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본인의 동반자에게 시나리오 조언을 꺼내면서 이 영화의 스토리적 진전이 시작된다.
줄거리를 쭉 쓸까 하다가 어차피 이걸 보고 영화를 볼 사람이라면 줄거리를 굳이 알아야 하나 싶어서 그냥 내 감상평 위주로 써보려고 한다. 따라서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연출이다. 중반부까지 지나가면서 특별한 모습은 없었다. 그저 일반 영화들처럼 스토리를 진행하는 형식. 그런데 크리스가 상상하는 작품 속 배우과 좌절을 겪고 무력함에 침대에 눕는다. 그 자리에서 깨어나는 것은 배우가 아닌 크리스다. 크리스는 주인공이 입은 그대로의 착장과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주인공이 썼던 쪽지를 주머니에서 꺼내며 목적지를 찾아가고,그 곳에서 잠들었다 깨어났을 때는 실제로 영화 속 감독이 되어 있어 남자 주인공이 감독을 깨우면서 다시 스토리가 진행된다. 크리스의 상상 속 여자 주인공은 남자에게 집착했는데 감독으로 있는 상상 속에서는 미련없이 밝은 표정으로 촬영장을 떠난다. 끈적한 기류를 가지고 있는 건 오히려 크리스와 남자 주인공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깨어나고 토니는 그들의 자식인 준을 데려오고 준과 크리스의 재회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크리스가 생각했을 때는 이 영화의 끝을 정했던 것인걸까? 시나리오 속 주인공 또한 첫사랑과의 불륜을 잠시 즐겼지만 결국에는 현실로 돌아와서 본인의 딸과 안는 현실적인 결말이 그가 생각했던 이 영화의 결말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서 특별하게 느꼈던 장면들은 또 있었다. 실제로 크리스에게 베르히만 투어를 자진해서 도와줬던 단발의 안경 쓴 남성이 크리스의 시나리오 속에서도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에게 단발의 남성은 무슨 의미가 있기에 현실과 시나리오 속 둘 다 등장하는 것일까?
그저 베르히만을 잘 아는 남성이 아닌 그 너머에 존재하는 의미가 궁금했다.
또한 이런 예술적인 영화로 칭해지는 영화들의 공통점인 모습은
항상 성과 섹스를 놓지 못 한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 또한 찬양받는 감독인 토니 조차 본인의 노트에는 섹스와 관련한 그림과 글들이 삶과 섞여서 적혀 있었다.
첫사랑의 재회 또한 잠자리의 유무로 그들의 사랑을 확인했다. 왜 항상 성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성과 불륜, 예술과 사랑은 도대체 무슨 관계이며 예술적이라고 불리우는 감독들은 혹은 예술인들은 왜 불행과 비극에 집착하는가 가 아직까지 내가 결론을 짓지 못한 질문이다.
그들은 성적 쾌락의 이상으로 성의 무언가를 칭송하는 것인가?
불행과 비극은 그들을 일깨워주는 각성제인가?
사실 이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수 있냐고 한다면 나는 '글쎄...?' 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이 흔하게 좋아할만한 요소적인 영화가 아니고 결말이 한 눈에 보이거나 웃긴 장면들은 전혀 포함이 되어 있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영화를 찾을 때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볍게 보기를 원한다. 그런 의미에서는 추천하기 어렵다.
예쁜 풍경을 보고싶다고 한다면 앞부분까지는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여기까지 글을 읽으면 비판적인 의미가 많아서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싫어하는가 싶을 수 있다. 물론 완벽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다.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는 이 영화가 좋았다.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여성의 복장 자율화였다.
그저 복장의 자율화라고 한다면 흔힌들 치마의 탈피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또한 다른 말은 아니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오는 수많은 복장과 상황들에 약간의 놀라움을 느꼈다. 일단은 노브라가 디폴트로 깔려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노브라는 금기로 불린다. 물론 자유를 외치는 여성들에게서는 반발적인 의미로 노브라를 외치지만 사실은 자연의 섭리대로 생겨먹은 것을 오히려 꽁꽁 감추고 있는 것이 이상한데, 대한민국 남성들은 여성들의 노브라를 내보이면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며 극대노를 외친다. 하지만 가슴 밑부분을 다 내놓는 언더붑은 좋아한다. 딱 달라붙어서 엉덩이 모양이 그대로 들어나는 홀복과 짧은 치마는 좋아한다. 짧으면 짧을수록 붙으면 붙을수록 좋아한다. 하지만 노브라만큼은 범죄자 취급을 하고 비난하고 금지시킨다. 도대체 왜?
자기들이 직접 입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은 오히려 모양을 그대로 들어내고 다니는데 왜 여성들의속옷 자율화를 그들의 규탄하는 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가지고 있다. 예쁜 가슴을 위해선 브레지어의 착용이 당연하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가스라이팅을 한다. 가슴이 쳐진 여성에게는 성적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프레임에 여지껏 가두고 벗어나지 못하게 했었다.
그들에게 물어봤다. 왜 노브라 착용을 꺼려하는지에 대하여. 그들은 너무 야하다고 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야한 동영상에 노출되어서 여성의 꼭지만 봐도 불뚝 서는 몸이 되었고 망상으로 가득한 뇌가 되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봐라. 그게 멀쩡한 사람의 뇌가 맞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꼭지 모양은 별반 다르지 않는데 남자의 꼭지를 보고도 당신은 그런 생각이 나는가?
우리나라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짧은 치마를 입는다면 미친 여자 혹은 창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냥 입었고 그냥 타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자유가 좋았다. 치마가 짧았다고 성적 눈요깃거리에 동의한다는 소리를 내뱉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입었다는 것임을. 자꾸 가해자적인 시선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공존하는 것임을.
여기서 베르히만으로 나오는 감독은 생에 5명의 부인을 두었고 9명의 자식을 가졌으며
영화를 50편을 찍어낸 감독으로 유명하다. 어떻게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며 자식을 낳는데 작품을 50개나 찍을 수 있었을까? 그들의 주변인들에게 물어봤다. '남자'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가정일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그가 낳은 자식들 중 몇 명은 아빠의 존재를 모르는 자식 또한 있었다. 그정도로 본인이 저지른 결과들에 책임을 지지 않았고 가정에 전혀 충실하지 않았다.
사랑하고 싶을 때는 했고 결혼하고 싶고 이혼하고 싶을 때 또한 자유롭게 하였다.
어차피 누군가는 본인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치워줬을 거니까.
크리스는 그 누구보다 베르히만의 작품들을 동경했다. 항상 불행과 공포에 초점을 두고 만드는 영화라는 사실이 불만족스럽긴 했으나 그것 또한 베르히만의 작품이기에 좋아는 하였다.
그래서 본인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했으나 주위에서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도 여성은 가정을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가 시나리오가 제대로 풀리지 않아 힘들다는 것을 토니에게 말했으나 토니는 그럼 다른 일을 해보라고 한다. 가령 본인의 가정적 뒷바라지가 언급된다.
여성에게는 디폴트로 주어지는 당연스러운 일 중 하나가 가정일이라는 사실은 어느 나라에 가도 공존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게 한다.
이 영화는 궁금한 점을 이끌어 낸다는 점이 재밌다고 했었다. 하나 또 추가로 생각난 점이 있다.
이 영화 속에서는 수영하는 장면이 비교적 자주 나온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다 수영을 사랑한다.
크리스도 포뢰로 이사오고 수영을 했다. 단발 남성과 베르히만 개인 투어를 나가서도 수영을 했다.
시나리오 속 여자 주인공도 사람들과 해변 사우나를 즐기고 다같이 수영을 했다.
여기서 주는 수영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바는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포뢰로 이사 온 후의 수영은 기존에서 살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해방이었고
베르히만 투어를 나간 것은 흔한 투어버스도, 본인의 애인인 토니 곁에서의 해방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사우나를 즐기고 차가운 바다로 들어가는 것으로 파티에서의 마지막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주인공은 본인만의 영화를 찾았을까?
나는 찾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중간까지 잘 따라왔고, 본인의 딸을 품에 안은 순간
크리스는 본인의 영화 속 결말을 지었을꺼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을
투영해낸 무언가였으니까. 아마도 그 영화의 주인공도 본인의 딸을 품에 안은 채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이 영화는 그랬으니까.
이상, 베르히만 아일랜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