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생각한 것보다 길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타격을 받은 산업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그중에서도 실내에서만 영업을 하는 영화관은 거의 죽으러 들어가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며 사람들의 기피대상이 되었다.
자가격리를 하면서도 갑갑한 사람들은 종종 밖을 나가서 취미들을 즐기곤 했으나 거기에 영화가 포함되지는 않았다. 요즘은 OTT 한 달 구독 값이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 1편 값과 동일하여 사람들은 더더욱 영화관을 찾지 않았고 그래서 영화산업도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닌 특정 OTT 단독으로 진행하는 콘텐츠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악재 속에서도 개봉했던 영화가 있다. 오늘 리뷰할 <내가 죽던 날>.
사실 영화관을 가기 찝찝했던 상황이었음에도 배우 라인업을 보고 안 갈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김혜수 배우님을 큰 극장판에서 볼 수 있다는 자체로 메리트가 컸고 그 외의 인물들도 여성들이 자리를 차지했기에 꼭 약소하지만 관객 수를 늘려주고 싶은 마음에 보러 갔었다.
역시나 이 영화 또한 액정으로 보는 것보다 영화관에서 봐야 할 영화였다. 사운드와 화면을 꽉 채우는 긴장감이 예술인 영화기에.
원래 영화를 고를 때 내용과 줄거리 혹은 관객의 평점을 보기보다는 배우의 라인업을 중요시 보는 사람이다.
먼저 보고 온 언니한테 물어봤는데 "말해 뭐해. 김혜수인데."라고 했기에 망설임 없이 예매했다.
내용은 적당히 자극적이었고 그만큼 남은 부분들은 잔잔했다. 사실 초반부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장면들이 있었다. 나는 후반부에서만 3번을 울었는데 언니는 어디서 울음이 나오는지 이해조차 못 했다. 사람마다 감상평이 다른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제대로 된 영화 후기로 말하면,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만든 영화다.
김혜수, 이정은 배우님은 이미 연기력이 증명되었지만 처음 보는 노정의라는 배우님 연기에 놀랬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며 CCTV를 바라보는 눈빛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영화 내 순천댁과 세진이 대화하는 장면이 영화의 감초라고 생각한다. 순천댁은 세진에게 서울로 가거나 다른 곳으로 가길 권했는데 세진은 울부짖으며 나에겐 부모도, 아무것도 안 남았다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순천댁의 한 마디. "니가 남았다." 소름이 돋았다.
사실 순천댁은 말을 못 하는 역할로 나와서 노트에 한 글자씩 적을 때마다 나도 같이 펜을 쥐고 써 내려가는 느낌으로 숨죽여 보았다. 말로 했으면 이렇게까지 와닿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런 설정과 연출들이 있기에 영화가 좋은 평을 듣게 한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배신이 잇따르고 고통이 함께하면 자주 그런 말을 하곤 한다.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나에겐 희망도, 돈도 없어.'라고 하지만 그렇다. 사실은 내가 남았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까먹고 살 뻔했는데 이 영화가 그 사실을 일깨워줬다.
나는 앞으로 쓰러질 때마다 되새길 것 같다. 세상의 모두가 나를 버려도, 나에겐 내가 남았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영화의 아쉬운 부분들 또한 존재했다.
스토리 부분에서 중간까지는 사실 뻔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자살 일지 타살 일지, 결말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결말은 놀랍게도 세진이 살아있고, 타지로 가서 누구보다 행복한 미소를 가진 채 살고 있었지만 연출 부분에서 너무 아쉬웠다. 세진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은 알겠으나 애매하게 타지에서 세진과 현수의 재회 부분은 완성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마치 유튜브를 720p의 해상도로 보는 느낌? 약간의 억지스러움이 보여서 사실 바로 그 전 장면으로 나온
현수가 순천댁과 만난 후 징계 위원회에 안 나오는 장면으로 끝냈어도 좋은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꼭 굳이 닫힌 엔딩을 원한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영화를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호불호가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꼭 봤으면 좋겠다. 여성 경찰이 주연인 영화는 정말 희소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여성 경찰은 대우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현실은 남성보다 더한 경쟁률과 상황들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데 일반인들에게 인식은 연약해서 시민을 지킬 힘도 없는 여성 경찰로 그려낸다. 경찰로 보지 않고 "여경"으로 부르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능력 있는 여성 경찰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본인이 되고 싶은 롤모델이 구체적으로 있을 때 빠른 성장력을 보인다고들 하고, 미디어에서 그러내는 모습들은 곧 시대적 배경으로 변한다.
나를 포함한 내 또래들에게 과거에 결혼 언제 할거냐고 물어봤을 때, 대부분의 아이들은 결혼을 당연히 한다는 전제로 말을 해왔다. 미디어에서는 비혼을 그려내지 않았다. 결혼하지 못하고 능력있는 여자는 노처녀 히스테리 라는 말로 묶어버렸다. '결혼을 못 해서 까칠하고, 능력이 있음에도 저래서 시집을 못 갔지' 라는 말들로 후려친다. 하지만 요즘은 비혼에 대한 유튜브도 증가하였고 다양한 연예인들이 자연스럽게 비혼을 지향하는 모습들이 비춰지면서 '꼭 결혼을 해야만 행복한가?'라는 생각에 대해서 선택권을 쥘 수 있는 세상이 왔다.
우리는 아직도 경찰하면 자연스레 남자가 떠오르고, 사장이나 부장 등 높은 직급을 말하면 남성의 모습을 그린다. 최근에도 과장님 성함을 말씀드렸는데 "여자분이세요?" 하는 말이 돌아왔다.
자연스레 이렇게 떠오르는 이유는 첫번째로 실제 임원직급엔 여성이 거의 없다. 두번째로는 미디어에서 임원급 혹은 특정 직업의 배우들을 남성으로만 썼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TV를 보며 자랐고 무의식적으로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자랐기에 당연스레 남성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여성 임원직이, 사장이, 경찰이, 군인이 더 증가했으면 좋겠다. 비교적 최신 드라마나 영화에는 여성이 사장인 경우가 많이 나온다.
최근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사장 2명이 다 여성으로 나왔다. 과거에는 사장이 여성인 경우에는 '사장이 여성이야?' 라는 질문들도 있었는데 요즘엔 자연스럽게 녹았다. 이게 미디어가 변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남성들의 느와르,스릴러 등의 작품은 정말 널리고 널렸다. 얼마나 널렸냐면 아마 눈을 감고 떠올려보라고 했을 때 남성들이 쭉 나오는 영화들이 눈에 선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추격자 라던가 아니면 범죄와의 전쟁이라던가? 아, 물론 여성이 주연인 영화들도 스릴러에서는 꽤 보인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대부분의 여성 주인공들은 "엄마"다. 모성애를 자극하여 내 자식을 찾는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이제 모성애를 제외한 여성들의 스릴러나 느와르,액션 등을 보고싶다. 얼마나 재밌는지는 걸캅스, 오션스8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여성 3명이서 해결하는 이 사건이 주는 시사점의 의미가 크다.
이상 영화 <내가 죽던 날>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