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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Oct 18. 2020

대단한 공간은 아니지만 후련한 공간(1)

샤로수길의 어느 미용실


EP. 6 후련한 공간(1)

샤로수길의 어느 미용실


집착 [명사]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림.


인간은 각자 집착하는 것이 있다. 나의 경우 과거에는 긴 머리카락이었다. 숱도 많고 속 곱슬도 있어서 사실 긴 머리카락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6개월에 한 번 매직을 할 때도 기본 4~5시간씩 걸렸다. 그리고 걸레를 빨듯이 머리를 이리저리 비벼 감았고, 머리를 말릴 땐 30분 이상 말려도 속이 마르지 않아 그냥 축축함을 유지했다. 이렇게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긴 머리카락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렸다.


집착하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귀엽다. 여중을 나온 나는 엄격한 두발 규정을 따라야 했다. 지금이야 두발 규정이 있다고 하면 두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느니 반발이 많겠지만, 과거의 딱딱했던 교정을 생각하면 그런 규정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1, 2학년 때는 귀 밑 15 cm, 3학년 때는 18 cm. 센티미터라고 하면 감이 잘 오지 않겠지만 대충 어깨에 닿으면 20cm니까 과거의 규정은 어깨에도 닿지 않는 아주 짧은 단발이었다. 매일 아침 교문에서는 학교에서 가장 무섭다는 학생지도부 선생님들이 자를 들고 지옥문을 지키고 있는 염라대왕처럼 서있었다. 매서운 눈빛으로 어깨를 넘는 머리카락이 보이면 족집게처럼 쏙쏙 뽑아냈다. 잔소리를 싫어하는 중학생 Sophie는 검열당하지 않기 위해 대체로 짧은 머리를 유지했다. 사춘기 소녀로서는 3년 내내 머리카락 하나 어쩌지 못하는 억압된 시대를 지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지긋지긋한 규정을 벗어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역시 여고였기 때문에 두발 규정은 존재했지만, 길이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뭔가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다. 17살의 나는 기를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길러보고자 다짐했다. 그래서 언젠가 세계에서 머리가 가장 긴 사람으로 기네스 기록에 오르면 재밌겠다고 큭큭 웃어댔다. 등허리까지 길러 공부할 때 불편하지 않도록 일명 똥 머리를 하고 다녔다. 뒤통수에 커다란 도넛을 달았다. 무거운 머리 무게 덕에 매일 목은 뻐근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도넛 머리를 지나 규정 따위 존재하지 않는 대학교에 진학한 순간 자유를 외쳤다. 고등학교는 길이 규정은 없지만, 펌이나 염색이 금지였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라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규정이라는 사회의 틀에서 벗어나 맞이한 넓은 들판은 신세계였다. 나름 입학하기 전 ‘머리 계획’이라는 것을 세웠다. 1학년 1학기는 영화의 첫사랑 여주인공처럼 긴 생머리, 2학기는 갓 새내기 티를 벗은 긴 웨이브 머리. 그런 계획을 가지고 샤로수길의 어느 미용실을 찾아갔다. 당시 실장님은 원대한 꿈을 아름답게 만들어주셨고 그렇게 1학년을 로망에 집착하며 살았다.


1학년 1학기_긴 생머리_서울 명동(좌) / 2학년 1학기_긴 웨이브 머리_전남 보성(우)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를 지나 나름 ‘선배’가 된 2학년에 들어서자마자 다이어리에 빈칸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과제와 팀플이 몰아쳤다. 너무 바쁜 일상에 머리카락의 길이는 내 관리의 영역을 벗어나고 말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걸 잘라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떻게 그 다짐을 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으나 더 이상 로망에만 젖어 살 순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렇게 6개월 만에 찾은 미용실에서 그래도 너무 짧게는 싫으니 쇄골 넘어 긴 단발 정도로 부탁드렸다.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모든 시술이 끝난 후 짧아진 머리를 보니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완전히 머리카락을 잘라내지 못한 채 계속 머리를 길렀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머리카락은 고생과 고민의 길이처럼 계속 자라났고, 꽃 길만 펼쳐질 것 같았던 내 대학생활의 고난도 등장했다. 인간관계도 일도 모든 걸 영화 속 커리어 우먼처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이어리의 빈칸은커녕 이제 일정을 더 쓰지 못할 지경이었고, 9 to 10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힘들게 집을 들어오면 가방을 한 구석에 던져놓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씻지도 않은 채 잠에 들기 일수였고, 다음 날 아침에 부랴부랴 씻는 게 루틴이 되어 있었다.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고 대충 말리고 등교했다. 쌀쌀해진 10월 어느 날, 이렇게 머리카락을 관리하면서 로망이었던 긴 머리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7년 동안 매일 귀찮긴 해도 원망하진 않았는데, 머리카락을 다 뜯고 싶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 순간 깨달았다. 그동안 로망이라며 유지해 온 스타일이 오히려 내게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미용실 예약을 잡았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미용실로 향했다. 담당 점장님(舊 실장님)께 ‘이번엔 단발로 자르려고요!’라며 당돌하게 외쳤다. 점장님은 아마 이번에도 긴 단발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나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했다.


“어깨에 안 닿을 정도로요.”

“그것보다 조금 더 짧게.”


생각보다 더 짧게 잘라달라는 나의 요청에 약간 당황하셨지만, 이내 가위를 들고 슥슥 잘라냈다. 전에는 잘려 나가는 머리카락들이 자르지 말아 달라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었는데, 이 순간에는 아쉬움 없이 시원하게 안녕을 외치며 장렬하게 바닥으로 잘려나갔다. 목덜미를 부담스럽게 하던 것들이 우수수 떨어지며 불만스러운 마음들도 족쇄가 풀리듯 툭 떨어졌다. 안경을 쓰지 않아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짧아진 스타일이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모든 시술이 끝난 후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선 신부처럼 두근거렸다. 제대로 안경을 쓰고 똑 단발을 마주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거울 안에 있어서 어색하고 부끄러웠지만, 이내 만족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2020년 6월_두 번째 단발을 끝내고_서촌


사실 머리카락에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욕망의 잔여물, 젤리 같은 것들이 붙어있었다. 모든 걸 잘 해낼 수 있다는 부담감과 모두와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착각들이 젤리처럼 끈끈하게 붙어 머리가 묵직했다. 젤리는 내 머리를 물어뜯어 ‘통증’을 유발했고 고통스러운 시위를 계속했다. 하지만 젤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내려놓기’를 부정한 채로 그냥 똬리를 틀어 머리에 이고 있었을 뿐이다. 더 이상 젤리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울 때 운명처럼 머리카락에 대한, 아니 욕망에 대한 원망과 푸념이 생겼고, 나는 지체하지 않고 가위를 빼어 들었다.


그렇게 쓰라린 욕망과 집착을 가위로 싹둑.


머리카락에 붙은 욕망이 떨어져 나간 몸은 금방이라도 42.195km를 뛸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에도 기쁨이 느껴졌다. 오히려 내려놓고 잘라내니 더뎠던 일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엉킨 관계의 실타래도 조금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내려놓기'는 어렵다. 쉽지 않다. 난 항상 모든 것을 짊어지는 보부상이었고, 마음의 상처도 곪을 때까지 놔두다가 결국은 터져 더 큰 상처를 내는 사람이었다. 매번 잘한다, 좋다는 말을 듣고 싶어 발버둥 쳤고, 늘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게는 분에 넘치는 욕심임에 틀림없었고, 스스로를 매 순간 원망하고 있었다. 결국 욕심이 계속 불어나 범람하고 말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강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다 ‘집착’을 제대로 마주했을 땐, 욕심의 무게에 눌려 축 처진 어깨와 거북목을 가진 불쌍한 어른이(어른+어린이)가 있었다.


하지만 '내려놓기'는 어렵지 않다. 복잡한 마음은 잊고 매달리지 않으면 된다. 잠깐 주저앉든 무거운 가방을 잠시 내려놓든 어떤 방식으로든 원하는 대로 잠깐 내려놓으면 된다. 다 내려놓지 않아도 괜찮다. 하나의 걱정을 잊고, 시간이 지나 또 하나의 고민을 지우면서 불편한 마음들을 놔주면 되는 것이다. '미용실'에 발을 들이고 집착했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것부터 나의 '내려놓기'는 시작이었다. 앞으로 어떤 것을 더 내려놓으면서 가벼운 마음을 만들어 갈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시작이 계기가 되어 완벽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욕심을 버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게 집착 버리기의 시작이 된 미용실은 도움닫기 같은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욕심의 굴레를 가위로 싹둑 자르며 머리카락에 붙어 있던 족쇄를 풀어준다. 이 순간부터 이곳은 3시간 이상 앉아있어야 하는 지루한 공간의 의미는 퇴색되고, 오랜 시간 '비움'을 실천할 수 있는 사이다 같은 공간의 의미가 되었다. 그래서 미용실은 고마운 후련함이 느껴진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 공간이 고맙다.


미용실.

집착의 족쇄를 싹둑 잘라내고 자유의 몸이 된

대단한 공간은 아니지만 후련한 공간.


(p.s. 항상 아름다운 스타일을 만들어주시는 점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단발이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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