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로기 치매 엄마와 살아가는 것

행복과 슬픔 사이

by 올랑올랑
초로기 치매
45~60세 사이에 갑자기 강하게 일어나는 질환으로 알츠하이머병이 대표적이다
행복과 슬픔 사이의 시작



엄마가 초로기 치매의 증상을 보인 것은 2017년 여름, 평화롭던 하루로 기억된다. 잘하던 요리도 어느샌가 인터넷에서 조리법을 찾아보면서 조리하던 모습도 나는 '더 맛있는 조리법을 참고하나 보다, 헷갈리나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집안 구석에 쌓여있는 계란을 보고 '왜 이렇게 많이 샀지?'라고 생각만 했다.


엄마가 물어봤다.

"오늘은 누구랑 놀다 왔니?"

나는 엄마가 항상 자주 묻던 말이기에 늘 하던 것처럼 컴퓨터 화면을 보며 대답했다.

"영빈이~ 고등학교 때 나랑 같은 반 애 알지?"

엄마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는

"알지~ 잘 지낸다니?" 엄마와의 대화는 나의

"그럼~"이라는 대답으로 끝이 났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어느덧 해가 지고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방에서 나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는 밥을 먹으며 물어봤다

"오늘은 누구랑 만났니?"

살짝 짜증이 난 나는 엄마에게

"아까 영빈이 봤다고 했잖아, 뭘 또 물어.."

당황한 엄마의 표정으로 식사자리는 끝나고 자리를 일어나다 문득 설거지하는 엄마의 등에 떨림이

보였다. '설마 지금 우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다가간 나는 거기서 눈물을 흘리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요새 자꾸 까먹는 게 이상하다. 이러다 너희 할머니처럼 되는 거 아니니.."

그렇게 여름 그 어느 날이 우리 집의 변화의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엄마의 나이 56세 때의 일이다.


흘러가는 시간

일 년의 시간이 흘렀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쌓여있는 식료품. 같은 질문들. 엄마의 눈물.

우리 가족은 '설마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갱년기 증상(건망증)으로 생각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와 누나는 이 이상함을 회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에겐 엄마는 이전보다

건망증이 심한 엄마였다.

우리가 한번 더 말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며 지내 온 일 년이라는 시간.

이 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깨달았다.

엄마는 건망증이 아니다.

이때였던 것 같다.

나와 누나가 초로기 치매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삶의 변화가 왔음을 느꼈던 건.


멈춰있는 시간


2018년 겨울.

12월 치고 따듯한 겨울날.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서

'초로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

우리의 삶의 모양은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엄마에게 같은 것을 3번 이상 말해주는 것은

일상이 되었고 엄마가 해준 요리를 못 먹은 지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 엄마가 우리의 보호자가

아니라 우리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아직 서른도 안된, 이제 갓 취업하게 된 나에게 치매에 걸린 엄마는

나에게 너무 빨리 찾아온 시련이었다.

엄마의 치매는 현실이었다. 엄마가 일하던 것을 그만두면서 생긴 경제적 공백을 채우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만 했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보단 엄마를 챙겨야 했던 시간들이 늘어갔다. 그렇게 나의 마음엔 불만이 쌓여갔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원래 20대 후반의 삶이 이런 건가?'

'난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지?'

'치매는 나을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라는 말은

나에게 평생 엄마를 모셔야 한다는 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2018년의

겨울이 지났다.


슬픔


2019년은 이전과는 다른 시간이었다.

엄마의 치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말을 더듬는 게 자꾸 생각하려는 시도라고 좋은 신호'라고 말해줬다. 불만이 많았던 내겐 크게 와 닿지 않는 위로였을 뿐이었다.

엄마가 혼자 다니던 길을 잃어버리고, 했던 말을 다시 하며, 혼자 우는 모습이 많아졌다.

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있다. 엄마는 본인이 불쌍하다고 했다.

"내가 이 나이에 왜 이런 병에 걸렸니"

라고 말하며 우는 엄마를 보며 나는 너무

슬펐다.

나를 더욱 슬프게 하는 건

더 이상 엄마의 예전 모습이 떠오르질

않는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치매'라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인지, 정말 본인이 치매인지 모르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냥 엄마가 듣기 싫어하니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내가 아니 우리 가족이 불쌍했다.

아빠의 사업실패, 지방을 떠돌며 빚쟁이들에게 쫓기고 아빠는 술을 매일 마시며 우리를 괴롭혔다. 엄마는 울면서도 아침이면 나가서 일을 해야 했고 그렇게 보내온 시간이 흘러 이젠 치매에 걸린 엄마. 돌아가신 아빠.

'세상이 이래도 되나?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살아야 하는 건가?'

내가 힘든 건 불행한 오늘보다 불행할 내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그러던 가을의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고맙다"


나는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내 삶의 고단함을 인정받아서인지 위로받아서 인지, 단순히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이었는지.

확실한 건 그 말이

내 마음의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았다.

그때였다.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라고

생각했던 때가.


행복


바뀌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그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었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삶의 의미를 만들어준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어떤 시각장애인 어머니를 둔 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시각장애인이라 이렇게 매일 손잡고 걸을 수 있어 행복해요'

예전에 이 말을 들었을 땐 '긍정적이다'라고 생각했던, 그 진정한 긍정적이다에 도달하는데

나는 3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 행복감을 느낀다.

엄마가 치매여서 남들이 늦지 않았을 때 효도하라는 말을 더 빨리 지킬 수 있어졌다.

엄마와 함께 식사하며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내 인생에 없을 귀한 시간이 될 꺼란 생각에

그 시간들이 값지게 다가왔다.

같은 식사고 같은 산책이지만 달라진 내 생각이 만든 변화가 신기할 뿐이었다.


2020년 현재도 엄마의 질병은

현재 진행형

이다.

엄마는 이젠 대소변도 도움이 필요하며 한 문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옷 입는 것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며 그 와중에 땀 흘리며 입는 모습이 귀여울 때도 많다.

더 나아진 상황은 없다. 하지만 나와 누나는

감사함을 말하고 있다.

물론 힘들 때가 있고 슬플 때도 있으며 행복할 때도 있다. 나는 그래서 엄마와의 이 시간이

행복과 슬픔 사이라고 말하고 싶다

행복에 가까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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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목적은 '내가 이만큼 고생한다, 고생했다, 잘났다'를 말하기 위해 작성한 글은 아닙니다.

치매라는 질병은 어찌 보면 가족이 더 힘든 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병원에서도 치매환자에 대한 케어와 동시에 가족에게도 상담, 간호 등을 제공하고 있는 거겠지요. 저는 저의 이런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성하게 됐으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생각의 차이, 바라보는 시야의 차이가 만든

많은 변화들을 경험했기에 함께 공유해서

어려움들을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마치며 다시 한번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


많이 부족한 말솜씨와 글쓰기 능력임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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