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증후군일까.
10년을 키우던 강아지가 떠난 지 두 달 즈음이 되었다.
그러니깐 나는 벌써 두 달 동안이나 혼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엄마와 예비신랑이 번갈아가며 밤의 짐을 함께 덜어주고 있다.
나는 분명 혼자서도 잘 자던 사람이었는데 혼자 자는 법을 잊어버리고야 말았다.
20살 대학시절 혼자 서울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22살 무렵부터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5평쯤 되는 원룸에서 씩씩하게 잘 살았다.
친한 친구들이 놀러 와서 며칠씩 자고 가기도 했던 것을 빼면 혼자가 익숙한 나였다.
그러다 이사를 갔던 신길동 어느 오피스텔에서 내 강아지 메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넓은 분당 자이 아파트에서 살던 부잣집 개는 두 살 무렵 파양을 당해 나에게 왔다.
이전에 살던 집의 8분의 1쯤 되는 작은 4평짜리 원룸에서 우리는 꼭 붙어살았다.
발자국 소리에 예민한 강아지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에 자주 짖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건물 전체적으로 허용되는 곳이라 많은 가구가 강아지를 키우고 있었고,
발자국 소리에 몇 번 짖다 이내 짖음을 멈췄기 때문에 컴플레인이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워낙 민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나라서 이사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좁디좁은 원룸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낡았더라도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곳은 80년대에 지어진 빨간 벽돌 빌라가 가득한 곳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사는 조용하고 푸근한 동네.
내가 이 동네가 마음에 든 것만큼 내 강아지도 이곳이 꼭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우리는 3배가 넓어진 이 집에서 재미나게 살았다.
신길동 원룸에서 살 땐 한 개만 필요했던 강아지 방석이 방의 개수만큼 두 개로 늘었다.
그러니깐 이 집은 강아지랑 나랑 8년 정도를 함께 산 집인 셈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집 안 곳곳이 모두 다 강아지의 흔적인 곳에서 나는 정말로 혼자 자는 법을 잊어버렸다.
4kg의 작은 강아지는 신기하리만큼 존재감이 컸다.
나는 외로움도 많이 타고 겁도 많은 성격인데 강아지 덕분에 외로움을 모르고 지냈다.
밤에 혹시라도 낯선 사람이 오더라도 걱정이 없었다.
성질이 다소 더러운 내 강아지가 멍멍 짖어서 나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에.
(나를 지켜줄 수는 없었겠지만, 아무튼 이 강아지는 늘 낯선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려 애썼다.)
내 강아지의 흔적으로 가득 찬 방에서, 여전히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폭신한 침대에서
나는 혼자 잔다는 것의 무서움과 강아지에 대한 그리움 중 어느 것이 더 큰 지 헤아릴 수 없었다.
물론 강아지에 대한 그리움이 훨씬 컸을 테지만.
엄마가 제주도로 돌아가는 날에는 세 살짜리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서른다섯 먹은 딸의 철없는 눈물에 엄마는 속상함을 잔소리로 풀어냈다.
엄마를 공항에 바래다주면서 그래도 오늘은 꼭 혼자 자봐야지, 그렇게 결심을 했는데
혼자 잔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쿵 뛰고 겁이 났다.
예비신랑은 내 집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살고 있는데 마치 비상대기조처럼 내 전화를 기다렸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여러 번을 되뇌었는데 결국 퇴근길 지하철에서 예비신랑에게 S.O.S를 보냈다.
‘도저히 안 되겠어. 정말 미안해.. 혹시 집으로 와줄 수 있을까?‘
예비신랑은 더위를 아주 많이 타는 사람이라 에어컨을 틀어놓고 자야 하고
나는 추위를 아주 많이 타는 데다 비염이 있어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자면 다음날 코가 막혀 고생을 한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자더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못 자겠다 싶었다.
가을에나 꺼내 입을 긴팔 긴바지 잠옷을 꺼내 입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잤다.
강아지는 내 고약한 잠버릇 때문에 몇 번 발에 차인 후로 절대 침대에서 같이 자주지 않았는데
그 덕분에 늘 퀸 사이즈 침대는 내 차지였다.
아무리 굴러도 떨어지지 않는 퀸 사이즈 침대에 풍채가 좋은 예비신랑이 함께 눕자
침대는 순식간에 싱글 사이즈가 되어버렸지만 아무렴 어때,
혼자 자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그날의 나를 수면의 세계로 초대했다.
그렇게 며칠 에어컨을 계속 틀고 자니 아니나 다를까 코가 막히기 시작했다.
나는 코가 막히면 꼭 중이염이 찾아오는데 오늘은 귀의 먹먹함이 예사롭지 않았다.
‘드디어 왔구나..! 중이염..!’
사실은 에어컨을 틀고 자서라기보다 엉엉 우는 바람에 눈물 콧물이 중이염을 만들었지만.
게다가 예비신랑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찍 출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내게 선택지를 주었다.
1번, 새벽 5시에 깨더라도 같이 잔다.
2번, 용기 내서 혼자 자 본다.
2번!
혼자 자는 법을 잊어버린 만큼 무식해졌으니 또 그만큼 용감해진 거다.
예비신랑의 코골이와 기침소리 없이 고요한 밤을 보내는 게 어색할 테지만
그래도 오늘은 처음으로 다시 혼자 자는 날이다.
예비신랑은 핸드폰 진동을 벨소리로 바꿔둘 테니 도저히 못 자겠을 땐 새벽에라도 전화를 하라고 했다.
고마운 사람.
하지만 오늘은 꼭 성공해 보겠어!
천국에서 내 강아지가 언니 걱정 없이 잘 뛰어놀 수 있게 오늘 밤은 꼭 혼자 잘 자 보겠어!
잠 자기 전, 침대 옆 방석에서 먼저 누워 자고 있는 강아지를 한 번 쓰다듬고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져 쓸데없이 인스타를 보며 낄낄 거리다가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으면서
다시 한번 강아지를 쓰다듬었던 내 밤의 루틴.
어떤 날은 잠결에 배를 발라당 보여주며 더 만져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왜 잠을 깨우냐고 으르렁 거리며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내던 내 소중한 강아지.
메리야, 언니 오늘은 드디어 혼자 자보려고 해.
네가 떠난 지 두 달이 조금 안된 시간만에 드디어 혼자 자는 법을 다시 찾아보려고 해.
오늘 밤 언니 꿈에 나와주라.
그러면 언니는 또다시 혼자가 아니라 너와 함께 자는 밤을 보내는 게 되겠지만
그렇게 차츰차츰 혼자서도 잘 자볼게.
10월의 결혼 전까지는 씩씩하게 혼자서 잘 자볼게.
그동안 나의 밤 친구가 되어줘서 정말 고마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