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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나 노 Aug 13. 2024

마음 훈련 3-그건 걱정이 아니라 자랑이잖아요.

신혼집 없는 신혼 시작

“신혼집을 아직도 안 구했다고?”


그래, 결혼식을 두 달 앞뒀는데 아직도 신혼집을 안 구했다니 조금은 이상할 수 있다.


"응. 아직 안 구했어. 우리는 결혼 후에 구할거야. 지금은 계획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하게?"

"우선 내가 살던 집으로 오빠가 들어와서 같이 살 거야."


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요즘, '신혼집'을 묻는 말은 내 마음을 가장 흔들어놓는다.

이 말만 들으면 숙제를 안해서 된통 혼나는 학생마냥 왜 이렇게 주눅이 드는지.

심지어 이 질문을 매 주 교회에서 만날 때마다 똑같이 하는 그는 우리와 결혼날짜가 똑같은 사람이다.


걱정을 가장한 자랑의 시작은, 결혼 날짜가 겹친다고 선언하던 그 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9년의 연애를 마치고 올해 10월의 어느 토요일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작년 12월 초에 식장을 잡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알렸다.


그리고 올해 여름쯤, 같은 교회를 다니는 오빠가 예비신랑에게 우리 결혼 날짜를 물어왔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같은 날에 결혼하게 되었다고 슬쩍 말문을 열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솔로몬의 재판처럼 몸을 반으로 갈라서 결혼식에 참석해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한 쪽은 강원도, 한 쪽은 인천에서 결혼하기 때문에 시간차 참석도 불가능하다.

몸을 반으로 가를 수 없으니 이번 결혼식을 통해 누구와 더 친했는지 친밀도를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겠지.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안다.

양가 부모님이 결혼을 서두르길 원했고, 예비신부가 그 식장이 아니면 안된다고 했고,

마침 딱 취소 자리가 나온 날짜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 거기까진 이해했다.

두 커플이 부부가 되는 날이니 그 날은 축복도 두 배 일거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신혼여행지를 물어보길래 발리로 간다고 했더니

“우리도 발리로 갈 것 같아."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 그럴 수 있지!

발리로 신혼여행 가는 한국인 부부가 얼마나 많은데!


어느 여행사를 통해서 계약했는지, 어느 항공사를 예약했는지,

발리의 어느 지역에서 머무를 건지, 숙소는 어디인지, 여행 계획은 어떤지 물어보았을 때도

친절히 모든 것을 다 알려주었다.


그는 우리보다 비싼 대한항공을 타고 우리보다 하루 먼저 발리에 도착한다.

내가 알려준 정보들에서 가장 좋은 조합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는 도착하면 하루를 날린다며 하루 더 일찍 도착하는 비행기로 발리에 간다고 했다.

부럽다! 부러워! 나도 하루라도 빨리 발리에 도착하고 싶었지만 비행기 값에 하루를 더 미뤘었다.

(물론 일요일에 교회 예배와 사역을 완전히 지키고 다음날 떠나겠다는 마음도 있었다.)


이 역시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농담 삼아 "발리에서 조식 같이 먹는 거 아냐?" 라고 했더니

이 오빠는 발리에서 언제 우리가 커피 한 잔 해보겠냐며 정말로 커피 한 잔을 하자고 했다.


"아니 나는 발리까지 가서 오빠를 만나고 싶지 않아..!" 라고 하고 웃었는데

그는 내 진담을 농담으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악의는 없다.

오히려 억울한 건 오빠 쪽일지도 모른다.

10월의 어느 날에 결혼하고 싶었고, 신혼 여행은 발리로 가고 싶었을 뿐인데

하필 교회의 장기연애 커플이 죄다 먼저 선수를 쳐버렸으니 그 쪽 입장도 썩 유쾌하진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 커플이 웨딩 촬영을 하던 5월의 어느 날.

5월은 날씨가 대체로 좋은데 우리가 촬영을 하던 날만 돌풍에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 덕에 빗 속에서 찍은 멋진 사진을 건졌지만 그래도 맑은 날의 푸릇함이 없는 건 여전히 아쉽다.


그런데 그 쪽 커플의 웨딩 촬영은 장마기간인 7월의 어느 날이었다.

7월의 기나 긴 장마기간 속에서 본인들이 촬영하던 날만 비가 안 오더란다.


이쯤 되니 결혼과 관련해서 내게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악의가 없는 것인지 있는 것인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다.


걱정(이라고 쓰고 자랑이라고 읽는)의 정점은 '신혼집' 이었다.

그 오빠는 이미 인천에 아파트를 매매해두었다고 한다.

부럽다! 정말 부럽다! 너무너무 부럽다!


장모님이 부동산 관련해서 잘 아셔서 아파트에 대한 정보를 잘 얻었고,

'우린 둘 다 직장을 잘 다니니까 대출이 잘 나와서' 집을 얻었다고 했다.


그 말인 즉슨,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시생활을 하느라 이제 막 일한지 1년이 되어 모은 돈이 없는 나의 예비신랑과

프리랜서라 대출이 잘 나오지 않는 나의 상황을 알고 한 말이었을까.

나는 또 다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아, 이것은 나의 자격지심일 뿐이다.

그는 악의가 없다. 이건 옹졸한 내 마음의 필터가 그의 말을 온통 비꼬아 생각할 뿐인 것일거다.


그런데 매주 "신혼집은 어떻게 하기로 했다고 했지?"

"신혼집을 아직도 안 구했다고?" 라고 묻는 건 무슨 뜻이냔 말이다.


우린 3-4월에 신혼집을 10개도 넘게 알아보다가 결국 그 귀찮은 일을 결혼 이후로 미뤄버렸다.

서울에서 신혼부부 대출 한도에 맞는 빌라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집이 많았고

우선 그 당시에는 아픈 강아지를 데리고 이사하는 게 큰 무리라고 판단이 되어

4월 말 예정이던 이사를 결혼 이후로 미룬 것이다.

(컨디션이 좋은 빌라는 강아지 키우는 게 어렵다는,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한 친한 친구들이 신혼집 걱정이 크게 없었고

나는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집값은 나날이 치솟고 우린 돈이 없다.

양가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83년도에 지어진 빨간 벽돌 빌라집에서 신혼을 시작한다.

12평 남짓한 이 곳에서 우리는 신혼을 시작할 거다.

부동산 사장님도 '이런 곳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하기 싫다'고 했던 집이지만

살다보니 완전한 내 집도 아닌 전셋집이 내 집처럼 편해져버렸다.


다행히 늘 꽁해있는 건 내 쪽이다.

내 예비신랑은 자격지심을 느끼는 밴댕이 소갈딱지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쪽은 나다.


부러운 내 마음이 순수한 그의 걱정을 자랑처럼 느끼고 있다.

나도 안다, 삐딱선을 탄 내 마음의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부러움을 느끼면 그것에서 끝나면 되는데 늘 나는 땅굴을 파고 들어간다.

나는 신혼집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대출도 잘 안나와.

신혼집을 구하지 못한게 잘못도 아니고 죄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주눅이 들어서 발끈할까.


건강한 마음을 가진 예비신랑은 똑같은 질문을 들어도 이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나 우선 ㅇㅇ이네 집으로 들어가. 겨울~봄쯤 매물이 많이 나오면 그때부터 신혼집을 찾기 시작할거야."

그리고 끝.

'남자가 집을 해와야지.' 라는 결혼 풍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예비신랑은 더 자존심이 상할 수 있을텐데도 이 사람은 그저 괜찮다고 한다.


나도 내 마음을 훈련 해야겠다.

부러우면 부러운 것을 인정하고 거기서 생각을 끝내자.

무언가에 부러움을 느낀다는 것이 곧 내 삶이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을 인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부러움을 느낀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 또한 언젠가 그것을 가지게 될테니 그 날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그만이다.

설령 가지지 못하더라도 어떠한가,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사는 삶이면 충분하다.


나에 대한 애정으로 걱정을 하는 것을 동정하는 것이나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착각해선 안된다.  

혹시나 그것이 걱정으로 포장된 자랑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유쾌하게 받아넘기는 마음의 여유를 기르자.


그가 다음주에 또 다시 "신혼집 정말 결혼 후에 찾을거야?"라고 물어온다면

"아유 하나님이 딱 예비해 놓으셨댔어. 현실적인 문제 다 해결해줄테니 걱정하지 말랬어.

그래서 나 엄청나게 기대 중이니깐 내가 먼저 자랑하기 전까진 고만 물어봐 이제!" 라고 답할테다.


마침 오늘 배송이 완료 된 스마트 TV 소식에 나는 이렇게나 기쁘다.

무려 우리가 함께 마련한 첫 가전이야!

소소한 행복. 신혼집이 없어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행복에 집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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