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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훈 Nov 21. 2020

유행 vs 합리적 소비

안성기 님이 본부 본부, 김혜수 님이 우리 집을 외치던 시절

텔레비전에서 HOT가 캔디라는 노래를 부르는 시절,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캔디 장갑을 착용하고 등교를 하고 모자를 쓰고 심지어는 가방까지 매고 다니는 진풍경을 그때는 쉽게 볼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집에도 흰색 장갑이 있었던 것 같다. 내 동생도 HOT를 좋아하고 GOD를 좋아하고 그 당시 우상들을 마음속 한편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당시에도 스타들을 따라다닌 이들이 많이 있었다. 내 친한 친구 중 한 명도 ‘영턱스 클럽’ 팬 클럽에 가입해서 서울 공연을 오가고, 어떤 친구는 ‘SES’ 팬 클럽에 가입한 이도 있었다. 광 팬까지는 아니었지만 당시 나도 그들의 노래를 듣고 텔레비전의 속의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그때가 있었다. 친구 덕분에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 방송에서 팬클럽 자리 맨 앞줄에서 공연도 관람한 기억도 있다. 


무엇을 좋아하고 유행에 따른다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광적으로 무언가를 좋아해서 내 본연의 생활에 지장을 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내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고 내 생활이 행복하면 그걸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은 절반 이상의 본연의 임무를 다 한 것이라 생각한다. 


스타들을 좋아하던 시절, 스타들이 입고 다니던 옷이나 액세서리 그리고 각종 제품들도 유행을 타고 고교 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요소였다. 스타가 입은 청바지, 캐릭터 티셔츠 등 용돈이 부족한 그 시절에도 천 원, 이 천 원을 모아서 사서는 뿌듯하게 입고 다녔던 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편하게 구매를 하지만 시절 그것들을 구매하면서 받은 감정을 지금은 느낄 수는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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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정보통신의 발전과 함께 고교 생활 변화 그리고 유행을 가져온 요소는 바로 이동 통신 수단이다. 지금은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겠지만 통신 장비 변화의 폭풍 속에서 나의 학창 시절은 함께 해 왔다. 중학교 시절 삐삐 그리고 시티폰, PCS 등은 지금 20대들은 들어보지 못한 기기일 수 있지만은 그 당시 그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고등학교 입학 때만 하더라도 우리 반 대부분의 친구들이 삐삐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당시 통신수단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었다.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자기 필수품인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알린 PCS가 등장했다. 그 당시는 스마트폰이 아닌 버튼 형식의 액정형 일반 핸드폰이었지만 그것이 바로 스마트폰으로 발전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지금도 당시 나의 첫 번째 PCS 핸드폰이 생각난다. 텔레비전을 틀면 안성기가 나와서 ‘본부 본부’를 외치고, 김혜수가 나와서 ‘우리 집’을 외치면 음성인식으로 전화가 발신되는 새로움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당시 대구 동성로에는 통신 골목이 생겨 나기 시작하였고, 호객행위를 하면서 고객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고등학생이지만 나 또한 그들에게는 한 명의 고객이었다. 미성년자였지만 부모님 신분증과 통장 사본만 있다면 쉽게 핸드폰 개통이 가능하였다. 이후 부모님 통화로 인증을 받는 절차도 진행되었지만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당시 어떻게 마련했는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016 번호의 핸드폰을 12만 원에 손쉽게 구매를 하였다. 당시 먼가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 지금도 선명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후 전화 발신을 하면 통화료가 부과됨에 받는 용도로만 핸드폰을 사용하고 직접 요금을 대리점에 가서 납부하면서 나는 나의 첫 번째 핸드폰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 즐거움과 새로움의 교차 이후 나의 첫 번째 핸드폰 사용기는 빨리 막을 내려야만 했다. 바로 학교 수업 시간 갑자기 벨 소리가 우리 반 전체에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가장 학교에서 무섭기로 유명한 국사 선생님의 수업 시간이었다. 나는 긴급히 친구의 삐삐를 빌리려 했지만 친구는 나에게 삐삐를 건네지 않았다. 이후 나는 핸드폰은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전달되었고, 다음 날 어머니께서 해당 일을 계기로 학교에 오시는 상황까지 발생하였다. 지금은 흔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때는 특별했다. 아울러 2주간의 짧은 순간이지만 나의 핸드폰은 나의 생활에 활력소가 된 존재였다. 이후 그 핸드폰은 반품이 되었지만 그 후로도 3~4번의 핸드폰 구매가 이어지며 나의 학창 시절은 신형 핸드폰과 붙어 시간을 지내왔다.


지금 스마트폰에 비해 그 PCS 핸드폰은 성능도 떨어지고 신호음도 잘 수신되지 않는 기기였다. 하지만 그 당시 그 핸드폰은 나에게는 최고였으며, 지금도 그때 나의 어깨에 힘을 실어준 그 PCS 핸드폰과 함께한 그 시절이 그립다. 


과거를 심취한다는 것은 현실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만,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오히려 현재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를 생각하면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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