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신여사는 파운데이션을 얼굴 구석구석 곱게 바른다. 붉은 립스틱도 정성스럽게. 신여사, 나의 엄마는 농부다. 밭에 가기 전에 진지하게 화장을 한다. 13세에 도시 유학을 가서 25세에 고향으로 돌아온 딸은 그런 엄마가 퍽 낯설다.
“엄마, 밭에 가는데 왜 화장을 해?”
“왜?”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내가 화장을 하는 데 네가 뭔 상관이냐?’ 하는 눈빛으로 거울을 째려보며 립스틱을 바르는 엄마, 꼭 나를 째려보는 것 같다. 그렇게 어이없어하셨다.
“난 직장에 가는 거야. 내 직장은 밭이지. 그 밭이 내 직장이기 때문에 화장을 하는 거야. 직장엘 가는데 화장을 해야지. 안 그래? 그게 예의야.”
“큰 챙의 모자를 쓰면 얼굴을 거의 다 가리는데. 화장을 할 필요가...”
“내 맘이야. 마음가짐부터 달라.”
그러고 보니 엄마는 내가 화장을 안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못 마땅해하셨다.
“화장 좀 하고 다녀라. 동네 부끄럽다.”
난 아빠를 닮은 게 분명하다. 아빠는 구멍 난 양말도 찢어진 옷도 잘 입고 다니신다. 장화를 신고 백화점에 가서 밥을 드신 적도 있다. 아빠는 농부다. 논밭에서 일하는데 양복을 입으랴. 아이러니하게 아빠가 새 옷을 입고 일하러 가시면 엄마는 타박을 하곤 하신다. 하하하.
밭이 직장이라 화장을 하고 가신다는 엄마의 말씀에 입이 딱 벌어졌다. 엄마의 철저한 직업의식. 프로페셔널한 엄마께 존경심이 뿜뿜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늘 대단했다. 우리 삼 남매는 그런 엄마를 장군감이라고, 농담을 섞어 말하곤 했다. 슈퍼우먼에 딱 가까운 나의 엄마. 가끔 너무 열심히, 독하게 일하는 나를 보면 그런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엄마의 손가락은 울퉁불퉁하다. 그 손으로 흙을 파고 씨를 심고 곡식을 자르고 깐다. 평생 그렇게 쉬지 못한 엄마의 열 손가락은 아프다. 그럼에도 곧 70을 바라보는 엄마는 여전히 전투적으로 일하신다.
“그만 은퇴하시면 어때요? 이제 일 안 할 때도 됐잖아요.”
“난 내 일이 좋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지.”
농사일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느껴진다. 보통 해 뜨는 시각부터 일은 시작되고 바쁠 때는 캄캄한 한 밤 중에도 일은 계속된다. 이 부분이 내가 농사를 싫어하는 이유다. 하여 비 오는 날이 좋았다. ‘오늘은 부모님이 쉬시겠구나.’ 하고 말이다. 오산이었다. 비 따위가 일을 막으랴. 때로는 비를 맞으며 일을 하신다고 했다. 농한기라는 겨울도 좋았다. 그런데 어느덧 감나무를 심고 곶감을 만드시는 부모님은 겨울도 바쁘다.
쉬면서 여행도 하고, 여유롭고 우아하게 사시면 얼마나 좋을까. 전 인생을 자식을 위해 오로지 일만 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얼마나 속이 쓰린지. 그런데, 이런 내 마음과는 전혀 달리. 일이 좋다는 부모님.
어떻게 일이 좋을 수 있지?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은...
자식은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