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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Mar 01. 2024

엄마의 립스틱

열정

오늘도 신여사는 파운데이션을 얼굴 구석구석 곱게 바른다. 붉은 립스틱도 정성스럽게. 신여사, 나의 엄마는 농부다. 밭에 가기 전에 진지하게 화장을 한다. 13세에 도시 유학을 가서 25세에 고향으로 돌아온 딸은 그런 엄마가 퍽 낯설다.   

  

“엄마, 밭에 가는데 왜 화장을 해?”

“왜?”


‘그래서 어쩌라는 거냐? 내가 화장을 하는 데 네가 뭔 상관이냐?’ 하는 눈빛으로 거울을 째려보며 립스틱을 바르는 엄마, 꼭 나를 째려보는 것 같다. 그렇게 어이없어하셨다.

    

“난 직장에 가는 거야. 내 직장은 밭이지. 그 밭이 내 직장이기 때문에 화장을 하는 거야. 직장엘 가는데 화장을 해야지. 안 그래? 그게 예의야.”

“큰 챙의 모자를 쓰면 얼굴을 거의 다 가리는데. 화장을 할 필요가...”

“내 맘이야. 마음가짐부터 달라.”     


그러고 보니 엄마는 내가 화장을 안 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못 마땅해하셨다.

“화장 좀 하고 다녀라. 동네 부끄럽다.”

난 아빠를 닮은 게 분명하다. 아빠는 구멍 난 양말도 찢어진 옷도 잘 입고 다니신다. 장화를 신고 백화점에 가서 밥을 드신 적도 있다. 아빠는 농부다. 논밭에서 일하는데 양복을 입으랴. 아이러니하게 아빠가 새 옷을 입고 일하러 가시면 엄마는 타박을 하곤 하신다. 하하하.   

  

밭이 직장이라 화장을 하고 가신다는 엄마의 말씀에 입이 딱 벌어졌다. 엄마의 철저한 직업의식. 프로페셔널한 엄마께 존경심이 뿜뿜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 보면 엄마는 늘 대단했다. 우리 삼 남매는 그런 엄마를 장군감이라고, 농담을 섞어 말하곤 했다. 슈퍼우먼에 딱 가까운 나의 엄마. 가끔 너무 열심히, 독하게 일하는 나를 보면 그런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엄마의 손가락은 울퉁불퉁하다. 그 손으로 흙을 파고 씨를 심고 곡식을 자르고 깐다. 평생 그렇게 쉬지 못한 엄마의 열 손가락은 아프다. 그럼에도 곧 70을 바라보는 엄마는 여전히 전투적으로 일하신다.


“그만 은퇴하시면 어때요? 이제 일 안 할 때도 됐잖아요.”  

“난 내 일이 좋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지.”     


농사일은 시작도 끝도 없다고 느껴진다. 보통 해 뜨는 시각부터 일은 시작되고 바쁠 때는 캄캄한 한 밤 중에도 일은 계속된다. 이 부분이 내가 농사를 싫어하는 이유다. 하여 비 오는 날이 좋았다. ‘오늘은 부모님이 쉬시겠구나.’ 하고 말이다. 오산이었다. 비 따위가 일을 막으랴. 때로는 비를 맞으며 일을 하신다고 했다. 농한기라는 겨울도 좋았다. 그런데 어느덧 감나무를 심고 곶감을 만드시는 부모님은 겨울도 바쁘다.      


쉬면서 여행도 하고, 여유롭고 우아하게 사시면 얼마나 좋을까. 전 인생을 자식을 위해 오로지 일만 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얼마나 속이 쓰린지. 그런데, 이런 내 마음과는 전혀 달리. 일이 좋다는 부모님.


어떻게 일이 좋을 수 있지?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은...

자식은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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