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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Mar 14. 2024

아빠의 과수원

“아빠의 꿈은 사과나무를 심는 거다.”     

20대에 농부가 되었던 나의 아빠는 어느 날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아빠의 꿈에 대해 난 참 쉽게 말하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사과나무를 심어요. 밭 있겠다. 뭐가 어려워요.”

“어린 사과나무를 심으면 5년은 기다려야 제대로 수확할 수 있거든”     


아빠는 큰 논 둘, 큰 밭 둘에 이모작을 하며 알차게 소득을 얻고 있었다. 이웃의 논과 밭 보다 늘 수확량이 높았다. 아빠의 부지런함과 열정에 늘 논과 밭은 보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5년을 기다릴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쉬이 사과나무를 심지 못하고 숨 가쁘게 세월을 보내셨던 것이다. 옆 동네에서 사과밭을 내놓았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도... 내심 그 밭을 사서 꿈을 이루기 바랐는데. 뭔가 탐탁지 않으셨던 것 같다.      


나의 아빠는 끝내 사과나무를 심지 못하셨다. 대신 감나무를 심으셨다. 곶감 농사를 시작하셨던 아빠는 감을 사러 경북 청도까지 가시곤 했다. 온 가족이 1박 2일 청도에 머물며 감을 따곤 했었다. 어느 정도 곶감 농사가 정착이 되어 갈 때, 드디어 밭에 감나무를 심으셨던 것이다.

   

비록 사과가 감이 되었지만 아빠의 꿈은 이뤄졌다. 두 밭에서 나오는 감으로 곶감을 만드셔서 감값을 줄일 수 있었다. 문제는 곶감 유통이었다. 평생 농사만 지으시던 아빠가 곶감을 팔아야 한다니. 곶감은 꼭 보험 같았다. 지인에게 홍보를 하고 때로는 설득까지 해서 팔아야 하는. 우리 삼 남매는 물론 배우자들까지 노력했다. 친구는 물론 친구의 친구들까지 곶감 전도에 나섰다. 아빠는 이런 상황을 매우 어려워하셨다. 매년 설연휴 전까지 완판이 되고 말지만 그동안 마음 졸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누군가 뾰족한 온라인마켓 하나 만들어내지 못했다. 다행히도 요즘에는 농산물 경매장으로 가신다. 비록 낮은 금액을 받더라도 마음 편함을 선택하신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 그동안 만들어진 단골들이 꾸준히 구매 중이고 그 외에는 되도록 경매장에 내놓으신다.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경매장을 방문했었다. 온 마을에서 가져온 곶감들. 각 집마다  곶감을 손질하고 상품화하는 방법은 달랐다. 물론 감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긴 하다.      

“어르신의 곶감은 어떻게 이렇게 좋아 보입니까? 매번 금액도 높게 받으시던데.”     


경매장에서 만난 어떤 분은 아빠의 곶감을 부러워하셨다. 늘 어떤 일이든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시는 아빠가 참 높아 보였다. 물론 높은 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고, 숙성 후에 깎고, 걸어서 말리고, 담고. 그 또한 보통 일이 아닌 걸 안다. 손발이 꽁꽁 어는 겨울, 옥상에 올라가 깎은 감을 걸다가 나도 눈물 좀 쏟을 뻔했다. 한여름의 양파는 그래도 2~3일이면 캐서 담아 끝나는데. 곶감은... 10월에 감을 따고 11월에 깎아서 말려, 12월 말부터 담기 시작을 해서 2월 초 판매까지. 그렇게 곶감 농사를 지은 지도 15년이 더 넘어가는 것 같다.      

농작물,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후.


온몸으로 힘겨우셨을 텐데 성실함으로 꿈을 이뤄가신 우리 아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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