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결정하고 동료 직원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회식자리였다. 휴직을 앞둔 나에게 동료들이 한 마디씩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카페에 가서 시간 보내면 너무 좋겠다."
"스벅 가서 책도 읽고 브런치도 먹고 힐링하세요."
이런 말들은 대부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후배 동료들의 조언이었다. 그들의 말에 정말 그래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그때 선배 동료의한마디
"그렇게 카페 가서 커피 마시면 빨리 복직해야 할 수도 있어. 1년 쭈욱 푹 쉬려면 커피값도 아껴야 해."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평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선배였다. 그는 정말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아. 맞다. 그렇네요 진짜. 선배 동료의 돌직구 같은 조언은 휴직에 대한 나의 핑크빛 마음을 현실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나는 휴직한 지 3개월에 접어든 지금까지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신 것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그리고 당분간 그 근처에도 가지 않을 계획이다.
하지만 커피는 포기 못하지. 커피를 매일 마시지는 않지만 가끔씩 생각날 때가 있다. 선물로 받은 드립 백을 한 개 한 개 아껴가며 마셨다. 몇 개 들어있지 않아 금방 동이 났다. 맛이 좋았어서 더 사볼까 하고같은 것을 찾아보니 금액이 만만치 않다. 그러다 특가로 나온 드립백을 발견. 20개입에 1만 원대인 가성비 좋은 드립백이었다. 거의 한 달치 커피를 만 원에 해결할 수 있다니. 이 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싶어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대만족 중이다. 가성비 드립백 치고 맛과 향이 괜찮다.
내가 산 가성비 드립백 커피. 많이 마셨는데 아직도 넉넉하게 남아있다.
커피뿐만 아니라 점심식사에서도 나는 꽤 훌륭하게 지내고 있다. 나가서 먹거나 사 먹거나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어제 했던 카레가 남았을 때는 카레가 오늘 점심이 된다. 집에 있는 식빵과 계란 상추 토마토로 샌드위치도 해 먹는다. 샌드위치가 제일 쉽고 간단하고 만만하고 맛있다. 하지만 가끔 직장에서 먹던 점심식사가 그립기도 하다. 최근에는 직장에서 점심을 먹는 꿈을 꾸기도 했다. 다른 건 다 몰라도 점심식사 그것 하나만으로 다시 복직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둘째 하교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면 집 앞 카페에 내 또래 여자들이 옹기종기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저 안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며 여유를 누리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는 휴직자이고 통장은 마이너스이고 나는 더 오래 쉬고 싶다. 그러려면 선배 동료의 조언처럼 커피값이라도 아껴야 한다. 남편이 월급날 입금해 주는 돈에 동그라미 하나만 더 붙어있으면 좋겠다며 투덜거려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쩌랴. 일단은 아끼는 수밖에. 이렇게 고물가 시대에 휴직이라니. 나도 참.
이렇게 절약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을 남편에게 어필한다. 작년 힘들어하던 모습을 지켜보고 휴직을 응원해 준 남편. 퇴근한 남편이 가끔 본인도 쉬고 싶다며 하소연하면 나는 호기롭게 당신도 휴직해라고 말한다. 남편이 휴직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할 수 있는 말이겠지. 하지만 남편이 진심으로 휴직을 희망하면 나는 흔쾌히 응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남편도 이런 휴식을 취할 필요가 생길 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때는 남편 대신 내가 일터로 나가 생활비를 벌어 올 의향이 충분히 있다. 대신 남편에게 당부하겠지. 커피는 가성비 드립백을 마시고 점심은 건강한 식단으로 직접 만들어 해결하도록.
오늘도 가장 행복한 시간인 커피 타임을 준비한다.좋아하는 찻잔을 꺼낸다. 봉투에서 커피 향을 들이키며 드립백을 꺼내어 윗부분을 뜯고 찻잔에 걸쳐놓는다. 뜨거운 물을 붓는다. 투명한 갈색 액체가 한 두 방울 떨어져 잔에 가득 담긴다. 한 모금 입에 대어 본다. 가성비 드립백이지만 그 어떤 커피보다 향기롭고 고소 쌉싸름하다.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불안함과 여유로움이 뒤섞여 있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