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자의 커피 취향
지극히 개인적인 드립백 예찬
띠링
집 앞 커피집에서 스탬프가 적립됐다는 문자가 날아온다. 남편이 커피를 사면 늘 내 핸드폰으로 문자가 전송된다. 커피집 적립 쿠폰이 내 핸드폰으로 등록이 되어서 남편이 커피를 사 마실 때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된다.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10억이 필요하다는 재테크 유튜버 영상에 심취하고 있었던 나에게 이런 문자는 스트레스다. 커피값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1일 1 아메리카노가 필수인 우리 남편은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열심히 일하고 퇴근한 남편인데 잔소리는 하지 말기로 한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커피로 달래는 거려니 하며 욱하는 마음을 꾹 누른다. 나는 오늘 집에서 평안했으니.
매일 커피를 마시는 남편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커피를 좋아한다. 추운 겨울에도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추워도 얼음에 담긴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였던 나는 40대에 접어들자마자 그 타이틀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제는 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선택한다. 휴직 중이라 카페는 자주 가지 않고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얼죽아를 포기하니 얼음을 얼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 남편은 아직 얼죽아인데, 종종 기침을 하는 남편에게 당신도 이쪽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로 넘어오라고 해도 여전히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한다.
휴직 중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홈카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요즘은 홈카페라도 훌륭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드립커피, 캡슐커피, 그리고 드립백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더치커피 혹은 콜드브루 원액을 사서 냉장고에 보관해 마시기도 한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에 나는 드립백을 선호한다.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최근에 구입한 드립백은 20개입에 만원이다. 커피 한 잔에 500원이면 휴직자라도 충분히 누려 볼 만하지 않을까.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과 향은 충분히 훌륭하다. 드립백의 또 다른 장점은 간편하다는 것. 드립은 원두를 그라인더에 갈고 드리퍼도 필요한데, 찻잔만 있으면 바로 커피를 내릴 수 있으니 게으르면서 까다롭지 않은 입맛의 나에게는 드립백이 딱이다. 남편이 사자고 노래를 부르는 커피 머신. 커피 머신을 장만하는데 일단 비용이 들기도 하고, 부피가 커서 집에 두고 쓰기 부담스럽다. 캡슐 커피 머신은 캡슐이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맛의 캡슐을 골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이다.
드립이든, 드립백이든, 캡슐 커피든, 더치커피, 콜드브루, 혹은 카페에서 사 먹는 커피든 간에, 한적한 오전 시간 혼자 마시는 커피는 휴직 기간 포기할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남편도 하루 한 잔의 커피로 그 날의 스트레스를 푸는 거겠지. 하지만 먹고 나서 쌓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치우면서, 그래도 드립백만한게 없다 싶다. 주말에는 드립백 커피를 두 잔 내려야 겠다. 남편과 지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