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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금붕어 Jul 22. 2024

그리운 다온마트

동네 마트가 사라지고 편의점이 들어서다.

다온마트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  CU가 들어섰다.


다온 마트는 아파트 입주시기 때부터 함께 오픈한 마트인데,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크지는 않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곳이었다. 저녁을 하다가 갑자기 케첩이 부족하다던가, 계란이나 라면, 우유가 똑 떨어졌다던가 할 때 슬리퍼 신고 나가서 바로 사 올 수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집에 오기 전에 들러 포켓몬 빵도 사 먹고 과자,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3만 원 이상이면 배달도 해주었다. 아이스크림이 다른 곳보다 싸서 10개씩 사서 냉동실에 넣어놓으면 일주일은 걱정이 없었다. 그보다 이 작은 마트의 가장 큰 장점은 사장 아주머니의 싹싹함이었다. 젊은 마트 사장 아주머니는 우리 집 아이들 이름까지 다 외우고 있었다. 나랑 아이들이 들어올 때마다 "00야. 어서 와." 이름을 붙여 다정하게 인사를 해주었다.  포인트 적립번호인 내 핸드폰 뒷자리도 다 외우고 있어서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적립까지 해주었다.


그렇게 몇 년간 우리 가족,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참새 방앗간 들리 듯 가던 마트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설 거라고 했다. 한동안 아파트 사람들은 다온마트가 문을 닫은 일로 술렁거렸다. 그동안 마트 운영이 힘들었다는 말이 들렸다. 권리금을 많이 받고 다른 곳에 더 큰 마트를 차린다는 소리가 들렸다. 마트 문을 닫으니 그전에 그동안 적립한 포인트를 쓰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이웃 주민이 이야기해 주었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 카톡 메시지를 뒤져보아도 나는 그런 메시지를 못 받았다. 포인트를 날렸다는 아쉬움 보다도 마트 사장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둘째 아이도 자기가 들어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 주던 마트 아주머니가 없다는 게 아쉬웠는지 종종 다온마트 이야기를 했다. 굳게 닫혀있는 마트 문을 동네 한 아이가 열려고 흔드는 것이 보였다. 저 아이도 마트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못 들었나 보구나. 마트 사장님도 저 아이가 들어올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인사해 주었겠지? 어떻게든 문을 열어보려는 그 아이의 마음을 나도 알 것 같았다.


마트 자리에 편의점을 오픈하기 위해 리모델링하는 기간 동안 그 옆을 지나가면서 나와 우리 가족은 무척 못마땅했다.


CU가 오픈했다. 세련된 인테리어에 온갖 종류의 컵라면과 아이스크림, 음료수, 도시락, 과자, 맥주 등등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다. 실내와 실외에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어서 음식을 먹고 갈 수 있게 해 놓았다. 나는 살 게 없다며 눈도 안 돌리고 지나갔다. 하지만 편의점은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것 같았다. 동네 초중고 학생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다. 학생들은 그곳에서 라면도 먹고 소시지도 먹으며 출출함을 달래고 있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 건강에 이 편의점이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 편의점이 생기지 않았다면 먹지 않았을 음식일 텐데 눈에 보이니 먹고 싶고 그렇게 한 번 두 번 먹게 되다 보면 식습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나는 괜히 편의점 사장님이 미워졌다.


여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편의점을 매일 가게 되었다. 껌 씹기에 재미가 들린 둘째와 하교 후 편의점에 들러 껌을 사가지고 가는데 요즘은 그것보다도 땀을 식히기 위해 들린다. 껌 하나만 사도 편의점에 놓인 테이블 하나에 앉아 쉴 수가 있는 것이다. 껌 하나로는 조금 눈치가 보여 우유도 하나 산다. 빵빵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땀을 식히면 마냥 밉기만 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하지만 여름이 되니, 에어컨 바람보다도 더 아쉬운 것은 바로 복숭아이다. 다온마트 사장님은 새벽에 도매상에 나가서 과일을 떼오는데 가격은 조금 나갔지만 맛이 아주 좋았다. 특히 복숭아를 기가 막힌 것으로 가져오셨는데, 워낙 복숭아 귀신인 우리 가족은 여름이 되면 다온 마트에서 복숭아를 몇 박스를 사다 먹었다. 백도, 황도, 천중도, 물렁이, 딱딱이.. 그때그때 마트 사장님이 들여오는 복숭아를 박스채 사 오면 이삼일만에 다 해치웠다. 마트 사장님도 내가 복숭아를 잘 사가는 걸 아시고는 오늘은 뭐가 더 달고 맛있다며 추천을 해주셨다. 복숭아가 끝물일 때까지 주구장창 사다 먹었다. 명절 때도 큰 마트에 안 가고 여기서 사가는 복숭아를 다들 맛있다며 잘 먹었다. 그런데 다온 마트가 사라지고서는 도대체 어디서 복숭아를 사 먹어야 할지 막막해지는 것이었다. 다른 마트에 가도 이상하게 복숭아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달고 맛있을 거라는 믿음이 가지 않아서였다. 그러다 어제 한 마트에서 복숭아 한 박스를 사 왔다. 다행히 달고 맛있었다. 올여름 우리 가족의 첫 복숭아였다. 다온 마트가 있었다면 벌써 몇 박스째 먹었을 텐데 라면서 투덜거리는 나에게 남편이 돈 아꼈다며 농담 같은 위로를 한다. 복숭아 맛집을 뚫어야 하는데, 도통 자신이 없다.


복숭아도 복숭아지만, 편의점을 지나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한 감정의 가장 큰 이유는 정답던 이웃이 사라졌다는 아쉬움 때문인 것 같다. 다온 마트 사장님과는 비록 인사만 나누던 사이이지만, 그 인사 속에서 매일 조금씩 무언가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마트 사장님은 손님에게 관심이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오던 아이가 하교 후에 엄마랑 오는 모습에 휴직하셨냐며 나의 안부를 물어보기도 했고 초등학교를 입학한 둘째 아이에게 학교 생활이 어떠냐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우리 동네 고마운 이웃들에게 편지를 쓰는 수업이 있었는데 첫째 아이가 다온 마트 사장님에게 편지를 썼다고도 했다. 마트에 오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사장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온 동네 사람들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물건만 판 것이 아니라 마음도 팔았던 다온마트. 마트 사장 아주머니의 그 싹싹함과 다정함에 익숙해진 이 동네 사람들은 갑자기 그 따뜻한 인사와 관심이 사라지자 당황스러워졌다.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우리 동네 아이들은, 우리 가족은, 그리고 나는, 다온마트 사장님이 새롭게 오픈할 마트 주변에 살고 있을 그 어느 동네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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