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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지 Apr 09. 2024

호스텔 스탭에게 먹은 욕,  
어떻게 되돌려주지?

불편함과 불쾌함을 대처하는 방법

 숙소를 미리 연장하지 못해서 호스텔 내에서 방을 또 옮기게 되었다. 내가 예약한 도미토리 방은 이층침대가 두 대 놓여있는 4인실 여성전용 방이었다. 기왕이면 아래층 매트리스에 자리가 남아있길 바랐건만, 아래층 모두 이미 전부터 묵었던 투숙객들이 차지한 상태였다. 평소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인 데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밤늦게까지 들락거리게 될 텐데 이를 어쩐담….

 불편한 것이 있으면 참기보다는 어떻게든 고쳐버리고 마는 나. 주위를 둘러보니 제법 빈 공간이 남는다. 그래, 바닥에 간이침실을 설계하는 것이 좋겠다. 먼저 아래층 침대를 쓰는 투숙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비어 있는 위층 침대의 매트리스를 끌어내려 방구석에 깔았다. 그러고 보니 아래층 침대보다도 이동성이 더 좋은 것 같다. 피곤하면 방바닥에 눕듯이 몸을 착 널어주면 된다. 대신 카펫 냄새가 더 가깝다는 단점은 있지만.   

   

 내가 뉴질랜드에 온 이유, 나의 치유를 위해서라도 얼른 독방을 구해서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물론 이곳에서 만난 각국의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것도 사회성을 기르는데 좋은 치료가 되고 있긴 하다. 그렇게 약간의 불편함도 나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고 있었건만 그날 문제가 터졌다. 평화로웠던 호스텔 생활에 나의 발작버튼이 켜진 것이다.

 그날 내가 묵은 여성 도미토리 방에는 체크아웃할 사람도 없어서 청소할 필요도 없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그 불청객은 다름 아닌 남자 스탭 둘. 다행히 옷을 갈아입거나 속옷이 널려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엄연히 여성 투숙객이 묵고 있는 방에 굳이 남자 스탭이 노크도 없이 들어올 이유가 뭐가 있지? 우리 모두 놀란 상황이었다. 그 둘을 제외하고. 당황하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실수겠거니 넘어갔겠지만 전구인지 뭔지를 점검하러 왔다며 당당하게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일부러 더 당황하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또 아무런 말도 없이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문제는 그다음 대처다. 그날은 그 남자 스탭이 리셉션 당번까지 했다. 아무리 한국의 서비스 마인드를 이곳에 대입시킬 수 없다지만, 그의 무례한 태도는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리셉션 주변은 체크인과 체크아웃 투숙객이 뒤섞인 상태였다. 일단 얌전히 줄을 섰다. 내 차례가 왔을 때, 점잖은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까 말이야, 내 생각에는 너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할 거 같은데."

 "(옛다) 미안."

 누가 봐도 형식적인 그의 말투. 뭐지? 이 싸가지는? 그보다 더 화가 난 건 그다음부터다.

 "아이 씨발."

 옆에 다른 스탭도 있고, 다른 손님도 많은데 내 뒤통수에 대고 혼잣말로 욕을 한 것이다. 이런 미친 자식을 봤나! 손님도 많은데 싸울 수도 없고 대신 그 녀석을 힘껏 째려본 뒤 방으로 돌아왔다.

 불쾌함을 사과받으러 갔다가 더 불쾌한 일을 겪다니.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여온 듯 꺼림칙한 기분이다. 내가 예민했던 걸까?

 그래, 냉정하게 생각해서 그 남자 스탭이 노크 없이 여자 방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거나 벗고 있는 투숙객을 마주한 건 아니니 잘못했다고까지는 생각을 못 할 수도 있지. 서양 호스텔에서는 혼숙 도미토리도 흔해서 노크도 없이 여성 손님방에 들어가는 그 남자 직원의 행동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근데 우리 방은 여성전용이고, 기본적으로 남자가 여자방에 들어올 때 노크는 기본 아니야? 그리고 손님 뒤통수에 씨발?

 방에 돌아온 나는 그 스탭의 언행을 곱씹을수록 화가 나고 어떻게 그 욕을 되돌려줘야 하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시 그에게 가서 가운데 손가락을 보여주며 똑같은 행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욕을 되돌려주려고 복수를 생각하는 순간부터 나는 잠재적 가해자가 되는 꼴이다. ‘너는 그 정도의 그릇으로 살아라’ 하고 생각을 멈출 뿐, 더 이상 내 기분과 신분을 망쳐서는 안 된다.

 다만, 혹시라도 방에 사람이 없으면 또 들어와서 해코지를 할까 싶어 문 앞에 의자를 세워두고 경고문을 써 붙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영작이지만, 있는 그대로 써보면 이랬다.

‘당신이 직원이더라도 이 방은 오로지 여성들을 위한 곳이다. 당신이 우리의 동의 없이 이 방에 들어온다면(누구 말하는지 알지?) 나는 본사에 불만을 제기할 것이다.’   

  

  저녁에는 연차가 좀 있어 보이는 정직원과 가벼운 얘기를 나누다 오전에 나에게 욕을 했던 스탭의 얘기를 흘리게 됐다. 중간관리자급으로 보이는 그녀는 그 무례한 스탭을 대신해서 정중하게 사과를 해주셨다. 그 위로와 사과로 인해 호스텔에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감정은 금세 사라졌다. 세계적으로 체인을 갖춘 호스텔임에도 불구하고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자원봉사 격으로 스탭을 구하다 보니 일은 할 줄 알지만 서비스까지는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은 듯하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그 싸가지 없는 스탭의 욕설 한마디로 전 세계에 체인을 가진 이 호스텔의 이미지를 달나라로 보내버릴 뻔했고, 또 다른 직원의 사과 한마디로 다시 이미지를 쇄신하기도 했다.


 아무리 언어가 다르다 해도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두 가지 말의 힘은 정말 세다. 물론 진심과 겸손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나 역시도 가끔은 화가 나면 누가 듣든 말든 성질대로 욕을 뿌리기도 했다. 어릴 때는 마치 더 크고 거친 말을 써야 싸움에서 이기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그 사람의 인격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인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 이제는 성질도 좀 죽여야 할 나이, 불쾌함을 참을 수 없다면 현명하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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