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빈배

by 호접몽

여행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빈 배를 찍은 사진이 눈에 띈다. 내가 찍어놓고 좋아라 하는 사진이다. 사실 아무거나 찍은 건데, 이 안에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철학적 요소가 있다. 바로 '장자의 빈 배' 고사 말이다.



장자는 강에서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자는 여느 때처럼 눈을 감고 배 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배가 장자의 배에 부딪쳐 왔다. 화가 치민 장자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무례한 인간이군, 내가 눈을 감고 명상 중인데 어찌하여 내 배에 일부러 부딪친단 말인가?” 장자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며 부딪쳐 온 배를 향해 소리를 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배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였다. 그저 강물을 따라 떠내려 온 빈 배였던 것이다. 순간 장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후에 장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그 배가 비어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나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상처 입히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화를 낸다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화내는 것을 즐길 수 있다. 텅 빈 공간이 되어라.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게 하라.”

<장자> 외편 20 산목편(山木編)에 ‘빈 배’(虛舟)



오늘은 인도에서 찍어온 풍경사진에 취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희미한 듯하면서도 그 시간이 떠오른다. 어떠한 소리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그저 물길 가르는 소리 하나만 들리던 고요함. 세상에는 너무 많은 소리가 있고, 듣지 않아도 되는 소리도 많다. 오늘은 되도록 말은 줄이고, 빈 배가 되어볼까나. (과연 나의 묵언수행은 몇 분이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빈 배

송현숙



없다

아무것도 없다

비어 있다는 것

그걸 의식할 수도 없는

그런



텅텅 비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처절한 사랑이든

아름다움이든

지루한 아픔이든



그저 출렁이는



(출처: 송현숙 시집 『그 섬에 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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