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접몽 Apr 23. 2021

이방원 하여가 정몽주 단심가

봄바람 불고 꽃도 피고 지고, 날이 참 좋다. 문득 무슨 뜻인지 모르고 외웠던 <상춘곡>이 생각난다. '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생에 어떠한고'로 시작하는데, 사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여기다.


괴여 닉은 술을 갈건(葛巾)으로 밧타 노코, 곳나모 가지 것거, 수노코 먹으리라.


학생이던 나에게 나중에 꽃나무 가지 꺾어 숫자 세어가며 술을 마시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품게 만들어준 글이지만, 사실 커서 술 마셔보니 몇 잔 마셨는지 세면서 먹게 되지는 않더라. (지금은 술 끊음)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시인들도 보면 한 시대를 풍미하던 사람들이 서로 의기투합을 하기도 하고 술 한잔 걸치고 풍류를 즐기기도 하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들이 솔솔 들려온다. 그 시절 함께 술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벗들은 다들 무얼하고 지내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오늘은 고려 말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감상해보아야겠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인연은 아니었지만, 결국 누군가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다다르고 마니, 이 둘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여가>를 읊은 이방원과 이에 화답한 정몽주의 마음을 생각하며 시를 떠올려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 츩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百年)까지 누리리라. -이방원-



<청구·해동·가곡>





이러하면 어떠하고 저러하면 어떠한가?



저 만수산 위의 얽혀 있는 칡덩굴처럼 얽어졌던들 그 무슨 상관이 있으랴.



우리들도 되는대로 드렁 칡이 얽혀지듯 서로 얽혀져 백년 만년까지 행복을 누리며 살아보자.


감상
해동악부(海東樂府)와 포은집(圃隱集)에서 「此亦何如 彼亦何如 城隍堂後垣 頹落亦何如 我輩若此爲 不死亦何如」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태종-즉위 전-이 포은(圃隱) 정몽주를 초청하여 그의 뜻을 떠볼 겸, 정몽주에게 절개를 굽혀 시비를 막론하고 시세(時勢)에 따라 고려 사직을 전복하고 새 국가를 세우는 데 참여할 뜻이 있는가 하고 넌지시 일러 본 시조이다. 이 시조는 <하여가(何如歌)>라고 부르며 이에 맞서 화답한 정몽주의 시조로 <단심가(丹心歌)>가 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一百番)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잇고 없고



님 향(向)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정몽주-



<청구·해동·가곡>




이 몸이 죽고 또 죽어서 일백번 아니 천백번이나 거듭 죽는 일이 있어



흰 뼈가 다 부서지고 또 다시 부서져 티끌과 흙덩이가 먼지처럼 되어져 넋이라도 있게 되든지 없게 되든지



임을 향한 한 조각의 충성된 마음이야 변할 까닭이 있을 것인가.



감상

이 시조는 고려 말기의 무장인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후에 즉위하여 태종이 됨-이가 포은 정몽주의 마음을 떠 보는 동시에 회유하여 보려고 그를 청하여 잔치를 베풀고, 하여가-<이런들 어떠하리>-를 부르자 포은 정몽주는 이 단심가로서 화답하여, 고려사직을 향한 충성심을 굽히지 않을 뜻을 읊은 것이다. 이리하여 정몽주는 조영규를 하수인으로 한 이방원에 의해 선죽교에서 피살되고 말았으며 충신의 피가 흘린 돌다리 위엔 대나무가 돋았다는 애절한 전설이 전해온다.




지금은 <하여가>하니, 서태지의 노래가 생각났다. 노래가 아닌 가사만 보니 '엥, 이게 이런 내용이었어?' 한다. 경쾌한 리듬의 곡이어서 지금껏 가사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 나름 가사도 외우고 있었는데, 이게 이런 의미라는 것이 훅 치고 들어온다. 문득 何如라는 것이 서글퍼져서 생각에 잠긴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소월 시 「길」 「봄비」 「접동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