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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21. 2021

김소월 시 「길」 「봄비」 「접동새」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이 다 내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도 있지롱~' 하면서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김소월 시집이 그랬다. 꽤 오래되어서 책DB에도 검색이 안 되던데, 이 책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새책들 사이에 있어서 내 눈에 도통 띄지 않았다. 아마 오늘을 기다렸나 보다. 지금은 보기 드문 세로쓰기 버전으로 김소월의 시를 만나는 색다른 시간을 누려본다.



제목은 『증보판 소월시집』이다. 민족시인 소월의 주옥같은 영원한 노래들을 담았다고 한다. 특히 새로 발견된 시편들까지 보완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이 발간된 당시가 1975년이고, 그 당시에 아직 접하지 못한 그의 유작 23편이 새로 발견된 기회에 이렇게 시집으로 엮어낸 것이다. 샘터출판부에서는 소월시집의 결정판이 바로 이 시집이라며 자부하고 있다.



무언가 특이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같은 글이라도 어떤 책에 담겼느냐에 따라 느낌이 상당히 달라지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로 김소월의 시를 다르게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의 시를 세로로 읽어나가며 음미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十里



어디로 갈까.




山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마소 내 집도



定州 郭山



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봄비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으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접동




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津頭江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津頭江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잊어



夜三更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山 저 山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아주 오래전 책이면서 양장본으로 되어 있어서 세월의 흐름을 피해갔나 보다. 특히 여름의 습기로 곰팡이는 기본인 이곳에서 그런 흔적을 느낄 수 없으니, 그것참 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엊그저께 넘겨본 책 같달까. 다른 옛날 책들과는 달리 책에 손상이 거의 없어서 신기하기까지 하다. 과거 그 시간의 누군가가 책장에 이제 막 꽂아주고 간 느낌도 들고, 묘한 기분으로 감상해나간다. 김소월의 시를 감상하고자 한다면 이 책부터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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