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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27. 2021

함민복 「서울 지하철에서 놀랐다」

함민복 에세이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에 보면 「내가 만난 마을 혹은 도시에 관한 기록들」이라는 글이 있다.


'현재는 과거에 영향을 주고 그렇게 해서 받아들인 과거가 현재에 작용한다. 영향과 작용이 순환하는 역사를 가다머는 영향과 작용의 역사로 불렀다.'


위의 내용을 수용해, 과거에 내가 만나 기록으로 남겼던 마을과 도시에 대한 시를 통해 현재의 마을과 도시를 만나본다. (221쪽)


이렇게 그는 1. 선입견이 된 마을(1960~80년대), 2. 긍정의 마을(1990년대), 3. 부정의 마을(2000년대), 4. 현실의 마을(2010년대) 5. 미래의 마을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마을 혹은 도시에 대해 시와 에세이로 짚어보았다.



오늘은 '현실의 마을' 이야기, 「서울 지하철에서 놀랐다」를 감상해볼 것이다.






서울 지하철에서 놀랐다



-함민복











1



열차가 도착한 것 같아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스크린도어란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민망하여 별로 놀라지 않은 척 주위를 무마했다



스크린도어에, 옛날처럼 시 주련柱聯이 있었다



문 맞았다







2



전철 안에 의사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모두 귀에 청진기를 끼고 있었다



위장을 눌러보고 갈빗대를 두드려보고



눈동자를 들여다보던 옛 의술을 접고



가운을 입지 않은 젊은 의사들은



손가락 두 개로 스마트하게



전파 그물을 기우며



세상을 진찰 진단하고 있었다



수평의 깊이를 넓히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마을은 스마트폰 속에 있다. 이 마을의 길은 전파다. 이 마을에는 집과 방을 만들 수 있는 영토가 무량하다. 이 마을은, 버튼 하나로 전출입이 자유롭다. 이 마을에는 없는 게 없지만 자체 무게가 없어 휴대하고 다닐 수가 있다. 이 마을에는 범죄 신고 센터가 있고 우체국도 있다. 이 마을에는 담장도 있고 우물도 있다. 주문하면 이 마을에서 물이 배달되어 온다. 이 마을을 개인이 소유할 수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소유할 수도 있으나 완벽하게 소유되지 않는다. 이 마을은 전파 공동체다.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244쪽 중에서




생각해 보니 한창 초창기에 사람들이 다들 스마트폰 들여다보며 앉아 있는 모습에 '왜들 저럴까'라는 생각만 했다. 부정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상하지도 않은 익숙한 풍경이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속에 각자 자신만의 마을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나도 블로그 마을에서 꿈꾸고 있다. 지금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꿈을 키워나가야 하는 때이다. 우리는 어쩌면 인간 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공간을 가장 인간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역사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다. 현재의 모습이 미래에는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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