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성이 다르면 친하게 지내는 데에 한계가 있다. 공통분모가 없으면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지속적으로 교류하기 버거운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친분이 유지된다는 생각이 든다. 성향이 비슷해서 좋아하는 음식까지 비슷한 건지, 비슷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닮아가는 건지,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여행 중이라면 오죽할까. 처음 며칠은 음식 취향이 어떻든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냥 새로운 여행지에서 마냥 신기하고 즐겁기만 하니까. 하지만 서로의 본성이 드러나는 것은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서부터다. 무언가 이런저런 문제들로 달그닥거리다보면 가장 마지막에는 결국 음식 성향 차이가 서로를 힘들게 한다.
첫 해외여행에서 원하는 친구들이 아닌, 조를 짜주어서 함께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네 명이 함께 여행을 하면 둘둘 갈리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가고 싶은 여행지가 다른 것도, 사진을 찍고 싶은 장소가 다른 것도, 그 어떤 것도 다 꾸역꾸역 감당하고 있었지만, 음식 취향 다른 것은 정말 곤혹이었다. 한쪽에서는 채식 음식을 선호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닭다리를 뜯고 있고, 서로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예전에 만화 『심야식당』을 본 적이 있다. 심야식당이라는 독특한 발상이 오감을 자극하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양념처럼 얹어져 요리의 맛을 더욱 깊게 해 주었다. 사실 일본 음식이니 잘 와 닿지 않는 음식도 있었고, 그냥 '그런가?' 싶은 요리도 있었지만, 가장 와 닿은 글이 있었으니 바로 '고기와 채소' 이야기였다. 극단적인 채식주의자와 고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헤어진 이야기였다. 결국 마지막 문제는 음식이 될 것이다. '이혼하지 않았으면 잡아먹히지 않았을까.'라는 표현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왠지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쿠사노 씨가 헤어진 이유를 알 것 같았어.
어차피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한지붕 밑에서 지내는 것은 무리잖아.
쿠사노 씨, 이혼하지 않았으면 잡아먹히지 않았을까.
『심야식당』 (130p)
여행을 할 때 식성이 완전히 다르면 곤란하다. 짧은 여행 말고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 그렇다. 특히 관심사나 가보고 싶은 곳이 다른데 식성까지 다르면 그야말로 서로 못할 짓이다. 달그락달그락하다가 결국 음식 때문에 빈정 상한다. 서로 이해하기 힘든 라이프 스타일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때 이후인 것 같다. 그냥 일상에서 즐겁게 지내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여행은 다르다. 함께하기 꺼려지는 그 마음은 음식 때문이었다. 음식 때문이다. '음식' 정말 중요하다.
'음식' 하니 떠오르는 책이 하나 더 있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사람의 심리를 엿보는 책 『식탁 위의 심리학』이다.
불판 가득 고기를 늘어놓는 사람 : 매사에 계획적이지 못하다
메뉴를 결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람 : 배려심 없는 이기주의자
음식이 식는데도 계속 이야기하는 사람 :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고 싶다
블로그에 올릴 음식 사진만 열심히 찍는 사람 : 일의 핵심을 놓쳐버린다
지나치게 사양하는 여자 : 두번 다시 식사에 초대받지 못한다
'완전 맛있어'를 연발하는 여자 :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하고 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못먹어?' 강요하는 사람 : 불필요한 과잉친절
『식탁 위의 심리학』 중에서
어쩌면 이 내용을 보며 두 가지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냥 '그렇구나' 생각하는 사람과 '난 그런 의미가 아닌데'라고 변명하고 싶은 사람. 어쨌든 이 책은 그냥 '재미로 보는 심리' 같은 느낌이었다. 재미로 보고 조심하고 경계하는 걸로 충분했던 책이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공감하고, 어떤 면에서는 솔직히 지나치다 싶다. 이런 거 다 신경 쓰다 보면 누구랑 밥 먹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서 함께 식사했던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은 조금 위험하다. 조심스럽고.
역대 최다 코로나 감염자 수로 아슬아슬한 요즘, 예전처럼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는 오는 걸까 의문이 들다가도, 결국에는 그런 때가 오리라 희망을 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때가 오더라도 예전처럼은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놓고 거리낌 없이 함께 먹는 것은 '옛날에는 그랬지' 라면서 떠올릴 과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실제로 한 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소중한 일상이었음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여행할 때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떠오른다. 인도 여행을 길게 하던 그때, 한국음식을 쉽게 구할 수 없었던 그때, 한국 라면은 특별한 날에만 먹는 특식이었던 그 무렵, 별 하나에 음식 하나 떠올리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가장 먹고 싶던 음식이 바로 김치볶음밥이었다. 계란후라이 하나 얹어서, 노른자는 터뜨리지 말고. 오늘 점심은 그걸로 해야겠다. 매일 해 먹을 수 있지만 한동안 입에 대지도 않았던 그 음식은 이미 추억이 되었나 보다. 오랜만에 추억을 맛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