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교통법과 감사함
작년 약 5개월 동안 실직 상태에 있었다.
언제 또 이렇게 쉬어보겠냐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망연하고 자실한 마음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가득 쌓인 불안이 묵직한 답답함이 되어 맘의 방뚝에 균열을 내던 때였다.
그러던 와중 어렵사리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빌리티 산업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팔자에도 없던 '도로교통법'을 다루게 되었다.
도로교통법(도교법)이란,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해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하는 것이 목적인 법이다. 도교법은 도시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질서 체계이며, 불법 주정차, 어린이 보호구역, 보행자의 통행 방식까지 우리가 걷고, 타는 모든 행위를 법으로 뒷받침해 주는 기반인 셈이다.
도교법에 대해 다루면서 내 마음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도교법은 단순히 도시 내 교통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을 넘어 매우 큰 중요함을 가진다. 자연스러운 흐름은 사람이 제정신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흐름이 끊기면 매우 큰 불안을 겪는다. 하물며 어느 예민한 날이면 당장 길거리에 내팽개쳐진 공유 킥보드나 자전거를 피해 가야 할 때 부아가 치미는 게 인간이며, 맨 우측 차로에서 앞 공간을 내주지 않는 직진 차량에게 클락션을 연신 누르는 게 인간이다. 당장 보도나 차도 위에서 이러는데, 더욱 중요한 커리어나 관계,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오죽하겠는가.
기술은 언제나 기존의 질서를 뒤흔든다. 공유 전동킥보드나, 자율주행 자동차, 보도 주행 로봇과 같은 기술이 튀어나와 기존의 도교법을 건드리면, 나라 녹을 받아먹고사는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은 새로운 교통수단을 수용할 수 있게끔 기존의 도교법을 개정하거나, '자전거법'과 같은 특별법을 제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교통상의 모든 위험과 장해를 방지하고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소 비약이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들도 저마다의 '도교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직업병일까? 아무쪼록 예측이 가능했든, 할 수 없었든 사람들은 새로운 변수로 인해 그의 흐름이 부자연스러워질 때마다 자신만의 도교법을 끊임없이 개정해 가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흐름이 망가질 때마다 내 나름의 도교법을 수차례 개정해 왔다. 특히나 나의 도교법은 새로운 변수를 수용하기에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자주 흐름이 끊기곤 했다. 입시, 취업, 결혼과 같은 굵직한 단계마다 속 시원하게 진행된 적이 없다. (감사하게도) 경쟁이 없다시피 했던 미국 깡촌에서 유학생활을 해 너무 안일한 자세로 입시를 했다가 삼수를 해서 대학에 겨우 들어갔다. 이를 교훈 삼아 대학에서 그간 하지 않았던 노력으로 연신 장학금을 받으며 차석으로 졸업했건만, 취업의 문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번번이 막히는 흐름에 결혼은 언제 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간다. 무엇을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결국 “준비를 최대한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막연한 결론만 남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마주했던 삶의 여러 단계마다 흐름이 막히며 마음고생을 하고 나니, 흐름만큼 막힘 또한 자연스러운 것이며 동시에 '흐름'이 결단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무탈한 일상에 감사함을 가지는 법을 배웠달까. 그 덕에 10대 내내 공부와 담을 쌓았던 인간이 감사함을 원동력으로 과탑을 수차례 해본 것일 것이다. 그것은 어렵사리 첫 취업을 했을 때,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이 없고, 그렇기에 나에게 주어진 환경,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 나를 이따금씩 찾아오는 기회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흐름이 막히고, 감사함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가 왕왕 찾아온다. 그럴땐 나의 도교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하나. 이 새로운 변수를 못 본 체해야 하나, 부정하고 규제로 일관해야 하나, 인정하고 수용해야 하나, 수많은 고민과 잡생각에 휩싸인다. 무시하면 막힘은 길어질 테고, 부정하면 그 변수의 효용과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결국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내 흐름을 다시 살리는 길이다. 그 과정이 다소 고통스럽고, 단기적으로 나 자신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원망을 들을지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도 막혀버린 내 '교통'에 대해 어떤 방책을 세울지 고민하고 있다. 자주 무기력해지지만, 매일 출퇴근길, 내 특유의 걸음걸이와 보폭이 만드는 속도를 보장해 주는 보도 위에서, 동호대교 위를 지나는 서울의 어마어마한 교통을 바라보며, 그 아래를 조용히 흐르는 한강을 보며 감사함을 느끼면서.
제 각기 다른 도교법과 이야기가 넘치는 세상이다. 그 어떤 법도, 이야기도 평가절하 될 수 없고 귀한 셈이다. 악의를 가지고 타인의 흐름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그렇다.
흐른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막힘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도로 위에서든 삶에서든, 흐름을 막는 변수는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건, 그럴 때마다 멈춰 선 자리에서 다시 흘러가기 위한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되도록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이 시점에서 내가 새롭게 개정할 도교법은 어떤 모습일까.
그게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나의 흐름을 어디로 이끌게 될까.
요즘,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