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 보는 다이어터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던 하이에나가 주방에 출몰했다. 적색 광선을 쏘며 냉장실과 냉동실, 라면, 과자, 초콜릿이 들어있는 수납장을 뒤졌다. 확보한 포획물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의식의 문이 스르르 닫히며 주변 사물들이 멀어졌다. 무언가를 생각할 수도, 포만을 감각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대낮의 환영처럼 시간의 마디가 아득하게 흩어졌다. 허공을 맴돌다 땅 위에 툭 떨어졌다. 현실이다. 재빨리 범죄의 흔적을 감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설정한 빵가게 재습격 사건 속 부부는 적극적이다. 재습격이니 재범이고, 부부가 벌인 일로 공동 범행이다.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저녁을 먹고 잠들어 있던 부부가 회오리바람처럼 밀려드는 허기에 눈을 떴다. 냉장고를 뒤져 보지만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 늦은 밤 그들은 햄버거 가게에 쳐들어가 직원들에게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 빅맥을 주문했다.
철판 위에서 고기가 갈색 물방울무늬처럼 나란히 누워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고기가 구워지는 맛있는 냄새가 마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벌레 무리처럼 내 몸 이곳저곳의 모공으로 파고들어와 혈액에 섞여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 몸 한가운데 발생한 허기의 동굴에 집결해 그 핑크색 벽면에 착 달라붙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빵가게 재습격」, 문학동네, 2010, p.29
햄버거가 그들의 허기를 채웠을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결핍과 욕망 따위를.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 초승달이 보이면, 다음 초승달이 뜰 때까지 해 아래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 금식 기간인 것이다. 그들은 몸의 찌꺼기를 태우며 불쌍한 이웃을 생각한다. 내가 먹는 쌀 한 톨에 감사하고, 기도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필요이상 먹지 않겠다고.
단테는 신곡에서 ‘식탐’을 정욕보다 나쁜 죄라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즐겨야 할 자연의 선물을 혼자 차지하기 때문이다. 욕망에서 비롯된 식탐은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켜 배가 부름에도 더 많은 음식을 달라고 아우성치게 한다. 그는 식탐에 휩싸인 죄인을 더럽고 악취가 진동하는 진창에서 뒹구는 자로 묘사한다.
두려운가. 오, 신이여, 감사합니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 있다.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고 지옥에 갈 만큼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닌, 말하자면 애매한 영혼들이 그곳에 모인다. 지은 죄를 사하면 천국 문이 다시 열린다.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전이다. 생전에 탐식의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대가를 치르기 위해 배고픔과 목마름을 견딘다.
찰나적 감각에 취약하며 욕망 덩어리인 나는 식탐을 이겨낼 수 있을까. 단테의 해결책은 다분히 교과서적이다. 절제하라. 자아 성찰을 하라. 육체적 욕구에 휘둘리지 마라. 그리고 육체적 욕망으로서의 식탐을 넘어 영적 문제를 해결하라. 그는 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결핍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절제와 금욕을 통해 영적 성장과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인간만이 식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자고 나는 넘치게 먹을까. 몸에 찌꺼기를 가득 채우고, 굶주린 이웃을 잊고, 밥 한 그릇에 만족하지 않으며 필요이상 먹지 않겠다는 누군가의 다짐을 못 들은 채 할까. 최대치로 버텨낼 절제와 금욕, 요동하지 않을 영적 상태를 살핀다. 취약하다.
찰랑대는 내면으로 넘치는 글을 욕망하고 갈급한 영혼을 돌보지 않는다. 불필요하게 먹는다. 먹방 유튜브를 보며 대리 만족을 하고 배달 플랫폼을 뒤적인다. 숨기고 싶은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다.
다짐한다. 내일은 필요한 만큼 먹고 구멍 뚫린 문풍지 같은 내 글을 연민하며 허허로운 영혼을 뜨겁게 안아주리라. 내일이 왔다. 오늘이다. 물밀 듯 허기가 밀려온다. 대왕 돈가스 4kg 10분 도전 먹방을 보며 촉촉한 초코칩 쿠키를 박살 낸다.
불안한 욕망과 견고한 이성이 대치중이다. 내 안의 소심한 평화주의자가 중재에 나선다. 싸우지 마세요. 이게 최선은 아니잖아요. 우리 잘 지내요. 그럴 수 있잖아요. 밤에 물든 욕망과 건조한 이성이 등을 보이며 멀어진다. 아파트 상가 원조치킨 간판이 불을 밝히며 놀이터 위에 얼룩진 그림자를 드리운다. 시소가 끼익 소리를 내며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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