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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Apr 25. 2022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

고독에 물들지 않으려면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은 3월, 나 역시 고독했다. 타자에 의해 심하게 감정이 기우뚱하거나, 다른 사람의 색에  쉽사리 물들거나 하는 섬세한 정서가 아님에도 마음이 힘들었다. 내가 느낀 고독은  G. 카르케스가 이 책을 쓰며 전심으로 뿜어대고 있는 고독과는 사뭇 다르지만 다각형 모양을 한 고독의 어떤 한 지점에는 닿아있을 듯도 싶었다.



"우리는 왜 고독한가?"


소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에는 주고받는 대사가 별로 없다. 우르슬라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고 권유를 하고 답을 얻는다. 카드 점으로 미래를 보는 필라르는 찾아오는 사람과 필요한 몇 마디 말을 주고받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기 전에 몇 마디를 한다. 마콘도에 진입한 군대가 일방적으로 호령을 하지만 그 또한 대화는 아니다.


마콘도에 사는 한 가문의 이야기, 가족 서사임에도 그들 사이의 대화는 생략되어 있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을 다루는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임에도 현대사회의 단절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21세기 오늘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방에 갇혀 고독했고 누구의 문도 두드리지 않았다.


"열다섯 개의 빈 의자를 마주하고 혼자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우렐리아노와 페르난다는 그들의 외로움을 나눌 줄 모르는 채 각기 따로 살면서 거미줄이 장미덩굴 위에 눈처럼 떨어지고 대들보를 홀랑 싸고 담벼락을 두껍게 덮어도 저마다 자기 방만 청소했다." p398



사랑의 부재

100년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은 자손을 번성시켰고 부와 명성, 몰락을 겪었다. 그들에게 사랑은 존재했던가.


그의 아내였던 레메디오스를 포함해 전쟁 통에 하룻밤을 지낸 여자들, 그의 아들들 까지 그 어느 누구도 결코 사랑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싸움에서 이기거나 진 모든 이유는 단 하나, 순수하면서도 죄악이나 마찬가지인 자존심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p278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온 그는 방 안에 처박혀 있다. 그는 전쟁 중 공포를 보았고 두려워했다. 정치적 신념은 허무한 것이었고 그에게 가장 편한 곳이자 안전한 곳에 몸을 숨겼다.  행동하게 만든 자존심은 무너졌고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이유는 없었다.


아마란타 역시 사랑을 두려워했다. 깊은 사랑과 두려움이 투쟁을 했고 늘 두려움이 이겼다. 레베가에 대한 분노의 마음이 달라졌음을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미 늦었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홀로 미워했고 홀로 불쌍히 여겼다. 이들 사이에 소통은 부재했다.


"그토록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 여자와 하룻밤을 같이 잔다면 그까짓 목숨쯤이야 못 버릴 일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정말로 그 말을 실천에 옮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미녀 레메디오스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닌 위험까지도 쫓아낼 수 있는 길이 단순하고 원시적이 사랑의 감정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p 263


미녀 레메디오스를 탐하는 남자는 많았지만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한 사람, 단순하고 원시적인 사랑을 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고독의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 오랜 세월을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왔고, 거짓된 자선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나이를 먹은 레베카의 굽힐 줄 모르는 비타협적인 자세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다. p246


부모의 뼈를 들고 마콘도에 온 그 순간, 아마도 그전부터 레베카는 고독했을 것이고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독이 꼬리처럼 그녀를 따라다녔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알았다. 허무했고 사람들 속에서 갈증만을 느꼈다. 


인간의 교만

* 영혼에 대한 문제라면 하느님과 직접 타협해서 해결하고, 원죄 따위는 벌써 깨끗이 벗어났다고 말했다.
* 나는 회개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블랙커피를 한잔 마신 다음에 총살 집행 명령에 따랐다. 
*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자라도 금속은 두려워할지어다.


마콘도를 세운 1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예언자의 비밀을 터득했다고 알려진 천재적인 사나이였다. 모든 사물에 숨어 있는 비밀을 꿰뚫어 보는 자였고 사람들로부터 무한 신뢰를 받는 자였다. 그의 아들은 학교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관심과 인정, 제복을 입고 누린 높은 신분에 정신적 해방을 맛봤다. 자식들을 챙기느라 희생한 어머니 우르슬라도 자신의 피나는 성실로 가정을 온전히 세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인간은 위대하면서 나약하고 높고자 하나 낮을 수밖에 없고 무언가를 알수록 더 큰 무지에 빠진다. 한 가문의 몰락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에게 기도할 대상이 있었다면, 그것이 어떤 신이든, 이보다는 더 낫지 않았을까. 우르슬라는 죽기 직전 "인간이 쇳덩이로 만들어진 줄 아느냐"라며 하느님을 원망했다. 그녀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느껴졌다. 감당할 수 없는 허무 속에 소통도 사랑도 믿음도 없이 슬어져 간 그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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