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3
내가 벌새를 유인한 비결을 자랑하며 나의 넥타가 25%가 아니라 33% 설탕용액이라고 말씀드리자 존 선생님은 곧바로 비명을 지르셨다.
“네가 벌새들을 당뇨병 환자들로 만들고 있다! 어서 25%로 만들지 못할까?”
다행히 다음날 저녁에도 또 한 마리 벌새가 찾아왔다. 잠시 머물다 사라지더니 얼마 후 다시 찾아와서 꽤 오랫동안 넥타를 먹기 시작했다. 평소 25% 당도의 넥타만 먹다가 갑자기 33%를 먹으니 ‘이게 웬 꿀이냐!’라며 감탄하는 것만 같았다. 좁고 기다란 부리를 노란색 플라스틱 꽃 중앙의 넥타 구멍에 집어넣고 넥타를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비록 한 마리의 벌새이지만, 나의 특별한 넥타를 알아주는 것 같아서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얼른 캠코더를 가져와서 유리창 안에 숨어 벌새가 넥타를 빨아먹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기 시작했다. 줌으로 가깝게 당겨서 보니 작은 날개가 선풍기 날개처럼 빠른 속도로 파닥이며 공중에 정지한 듯한 자세였는데, 넥타를 먹을 때마다 목울대가 솟았다 꺼졌다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무엇보다 그 동그랗고 순수한 새까만 눈은 내가 이제까지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의 눈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햇빛에 초록색 비늘같이 반짝이는 등 깃털이라니...어릴 때 무용복에 달려 있던 에메랄드빛 스팽글이 생각났다. 엄마가 하나하나 정성껏 바느질로 달아주었던.... 몸통 크기라고 해봤자 내 새끼 손가락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새가 식사하는 모습에 나는 그만 반해버린 것이다.
1분도 안 되는 길이의 영상에 적당한 음악을 삽입하여 유튜브에 올린 후 존 선생님께 이메일로 링크를 보내드리고, 이 벌새의 종류가 무엇인지 여쭤보았다. 존 선생님께 곧바로 답장이 왔다. 우리 집에 온 벌새의 종류는 ‘루비 뜨로티드 허밍버드(Ruby throated hummingbird)’ 암컷이라고 했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붉은목 벌새’였다. 수컷의 목에만 햇볕에 반짝이는 붉은 깃털이 자라고, 암컷은 목이 하얗다고 했다. 이 세상에 8천종이나 되는 벌새가 존재한다는데, 그 중의 한 종인 새를 보고 곧바로 ‘루비뜨로티드 암컷’이라고 알아보시다니! 존 선생님은 역시 벌새 전문가였다! 내가 놀라며 그렇게 답장을 했더니, 곧 선생님이 답장을 보내셨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고...우리 지역에 날아오는 벌새는 딱 한 종류뿐이다! 루비뜨로티드 허밍버드 수컷 아니면 암컷!”
이곳에 날아오는 새가 한 종류뿐이라고 해서 존 선생님이 새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존 선생님은 젊은 시절에 갈라파고스 섬까지 가서 온갖 새들과 벌새들을 관찰하셨고, 플로리다 바다에서 보트를 타다가 매너티를 발견하자 바다에 뛰어들어 매너티를 쓰다듬어준 적이 있는 분이셨다. 위키피디아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며 발로 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자연과학 지식을 익힌 분으로, 집에 가면 두꺼운 스크랩북만 수십권이 넘었다. 내가 벌새를 유인한 비결을 자랑하며 나의 넥타가 25%가 아니라 33% 설탕용액이라고 말씀드리자 존 선생님은 곧바로 비명을 지르셨다.
“네가 벌새들을 당뇨병 환자들로 만들고 있다! 어서 25%로 만들지 못할까?”
존 선생님은 유머러스하신 분이면서도 완고하신 데가 있었다. 사람을 위한 요리든 동물을 위한 요리든 레시피를 있는 대로 따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다. 하지만 뭔가를 잘해보고 싶어하는 학생의 열정을 높이 사는 분이었기에 두 번 다시 넥타의 농도를 언급하진 않으셨다. 다행히 특수교육 교사 출신이었기에, 말을 잘 못하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관대한 편이었고,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인 나를 자신의 5살 난 증손녀 키얼스틴과 비슷하게 취급하셨다.
내 설탕물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여러 마리가 번갈아 찾아오는 건지, 한 마리가 혼자서 자주 찾아오는 건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일주일 쯤 지나자 아침에도 서너 번, 저녁에도 꽤 자주 벌새가 나타났다. 언제나 한 번에 한 마리였지만, 피더에 벌새가 붙어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머리에서 엔돌핀이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넥타는 즐겨 먹지만, 아래쪽에 있는 페튜니아 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알려진 것과 달리 페튜니아 꽃은 벌새에게 인기가 없거나, 33% 용액이 상대적으로 너무 달고 효율적이어서인지 알 수 없었다. 나의 착각인지는 몰라도 벌새의 행동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 사이 며칠 새벽마다 비가 내려서인지, 이미 내가 심은 나팔꽃과 완두콩의 싹이 머리를 내밀었다. 언제 다 키워서 꽃을 피워 벌새에게 자연식을 먹일 수 있을까. 그 생각만 하며 텅 빈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토마토 지지대를 내다보곤 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아침마다 그 지지대 위에 브라운 뜨래셔와 모킹버드가 날아와 앉기 시작한 것이다. 눈이 노란색이고 부리가 매부리코처럼 휘어져서 사나운 인상을 한 브라운뜨래셔는 심지어 머리 위쪽 피더에 날아오는 벌새를 위협해서 쫓아버리기까지 했다. 내가 힘들게 모셔온 벌새를 말이다! 토마토 지지대를 발로 밀어내며 점프한 힘으로 벌새 피더 스탠드에 옆차기 하듯이 뛰어오르자 그 충격으로 피더가 일순 흔들렸다. 그러나 벌새는 워낙 빨라서인지 겁도 안 먹고 여유있게 물러났다가 다시 날아들어 자기 먹을 분량을 재빨리 먹고 튀었다.
그동안 브라운뜨래셔와 다른 몸집 큰 새들을 위해 테라스에 마실 물을 제공해준 게 문제였다. 그 중에서도 누가 서열 1위인지 알지 못했는데, 벌새에 대응하는 양상을 보니 브라운뜨래셔가 대장인 모양이었다. 나의 뒤뜰과 윈터베리나무들, 나의 깻잎밭을 모두 자기 소유로 여기는 만큼, 이 공간의 상층에 설치된 피더도 자신의 재산목록에 끼워넣는 게 당연했다. 심지어 가끔씩 스탠드 꼭대기, 그러니까 전등과 전등케이스가 있었을 위치에도 자주 앉아있곤 했다.
브라운뜨래셔는 생긴 것과 달리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였고, 암컷은 눈물 겨울 정도로 모성애가 강했다. 새끼를 낳아서 훈련시키는 걸 보면, 이미 자기 몸집보다 더 커버릴 때까지 과잉보호를 했다. 비행연습을 할 때가 아니면 새끼를 반드시 안전한 철조망 울타리 속에 숨겨두고 교육을 시켰다. 새끼는 눈이 새까매서 아직 순진하고 귀여워 보이는데, 가끔은 철조망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반항을 하는 것도 같았다. 나의 오래된 뒤뜰 이웃인 만큼 브라운뜨래셔의 사정이야 알지만, 지금 나는 오로지 벌새에게 콩깍지가 씌어서 브라운뜨래셔가 밉수그레하게만 보였다.
다행히 며칠 지나자 브라운뜨래셔도 더 이상 심술을 부리진 않았다. 벌새가 넥타와 극히 작은 날벌레만 먹을 뿐, 자기가 먹는 큰 벌레나 열매에는 부리를 대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한 모양이다.
전날밤 홍수가 날 정도로 거센 비가 내렸다. 빗소리에 자다깨다 하면서 새벽을 보내다가, 아침이 되자 벌새와 다른 새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1층으로 내려가 부엌창의 블라인드를 걷어올렸다. 벌새 피더가 달린 스탠드는 예상대로 거센 비바람에 쓰러져 있었고, 주변의 잔디밭에는 여기 저기 물이 고여 얕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배고픈 벌새들은 쓰러진 피더 스탠드 옆에 널부러진 넥타통을 안타까이 바라보다가 근처의 꽃을 찾아 날아갔다. 평소같으면 당장 뒷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스탠드를 일으켜 세우고 피더를 가져와서 설탕물을 채울 텐데, 나를 멈춰세우는 어떤 강렬한 시각 정보가 있었다. 그것의 정체가 뭔지 확인하기 위해 찬찬히 피더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피더 스탠드가 누워있는 우거진 잔디와 클로버 더미 사이에 꽤 굵다란 진회색 밧줄 같은 게 놓여 있었다. 비바람과 홍수에 휩쓸려온 밧줄이나 천 조각이려니 생각하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등줄기를 지나갔다.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망원경을 들고 관찰해보니, 머리 부분은 클로버 꽃 더미 속에 숨겨졌지만 몸의 가운데 부분이 8자의 절반처럼 드러나 있는 건 밧줄이 아니라 뱀인 게 확실했다. 박물관에서 본 적이 있는 뱀의 피부조직과 비교하면서, 뱀이 탈피하고 간 흔적이겠거니 추측했다. 그러나 남은 뱀가죽이라고 보기엔 뭔가 무게감이 느껴졌다. 역시 성급하게 바깥으로 나가지 않은 건 잘 한 일이었다.
뱀은 미동도 없이 클로버 꽃더미에 머리를 박은 채 그대로 누워 있었다. 뱀이 어느 쪽으로 기어가는지 봐두려고 한참 창가에 붙어 기다렸지만, 뱀은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가끔씩 부엌 창유리 바깥 방충망에 작은 크기의 뱀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뱀을 가까운 곳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딱따구리나 부엉이, 벌처같은 새들도 지방이나 고기를 먹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근에 먹다 남은 스테이크 조각이 있으면 뒤뜰에 던지기도 했는데, 다음날이 되면 희한하게 그것들이 사라져서 새들이 먹은 줄 알았다. 물론 들고양이나 너구리가 먹을 수도 있지만, 내가 자주 고기를 던지는 바람에 뱀들까지 불러낸 게 분명했다. 창틀로 기어올라 유리창 안쪽을 유심히 살피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어린 뱀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는데, 동그란 검은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해서 너무나 귀여웠다. 그 얼굴은 새끼 두꺼비나 개구리의 얼굴과 다를 게 없었다.
좀 지나면 뱀이 움직이겠지 생각하고 다른 일들을 처리하다가 다시 창밖을 내다봤는데 뱀은 똑 같은 자리에 있었다. 구름이 흩어지면서 아침의 찬란한 햇살이 내려쬐기 시작했고, 잔디에 고인 흙탕물도 많이 사라졌다. 망원경으로 관찰해보니 어디선가 나타난 파리들이 뱀 주위로 붕붕거렸다. 죽은 뱀이 확실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뱀으로부터 1미터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갔다. 엄청나게 굵은 뱀이라고 생각했는데 공포가 일으킨 인식 장애였는지, 엄지손가락 네 배 정도 되는 굵기의 그리 크지 않은 뱀이었다. 뱀의 종류를 분간하려면 머리를 봐야 했지만, 겁쟁이인 나는 거기서 멈추고 돌아왔다. 대신, 커피를 끓이려고 막 부엌에 나타난 남편에게 뱀을 치우라고 부탁했다.
산 뱀은 무서워도 죽은 뱀은 안 무서운 남편은 묵묵히 야외용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뱀에게 다가갔다. 자루가 긴 쓰레받기를 뱀의 몸 아래쪽에 밀어넣고 플라스틱 빗자루로 뱀의 나머지 몸을 쓸어담아 보려고 애쓰더니, 그러기엔 뱀이 너무 무겁다고 했다. 대신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집게처럼 활용하여 뱀의 몸을 일부 집어올리더니 건너편 홀리나무 숲 아래쪽으로 끌고 가서 내려놓았다. 뱀의 몸이 뒤집히면서 연한 노랑색의 배가 드러났다. 이전만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마른풀 더미 너머로 뱀의 옆구리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죽은 동물을 먹고 사는 벌처나 까마귀가 와서 물고 가거나, 다음 주 잔디 깎는 사람들이 오면 뱀의 사체도 치워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벌새 피더를 갈아주다가 문득 뱀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부엌 유리창에서는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살금살금 뱀의 사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뱀을 찾아 보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뱀의 진회색 몸이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과연 벌처가 물고 갔을까? 그 순간 어시장에서 나는 것 같은 생선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뱀이 있던 자리에 허연 색깔의 뭔가가 펼쳐져 있고, 그 자리에 벌레들이 들끓고 있었다.
사실 전날 밤에도 많은 비가 내렸었기에 부패가 진행되던 뱀의 몸은 더 빨리 형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게다가 어떤 짐승인가가 와서 일단 뱀의 피부를 가르고 속을 파먹은 것 같았다. 그 후 작은 곤충들이 달려들어 남은 살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는 파리유충인 구더기들도 득실거렸다. 단단해보이던 뱀의 피부는 완전히 흐물흐물해졌고, 몸속에 있던 가느다란 가시 같은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 있어서 처음엔 그게 뭔지 파악이 안 되었던 것이다. 수많은 가시처럼 보였던 것은 뱀의 둥근몸을 유지하던 갈비뼈들이었고, 그 갈비뼈들은 두개골에서 꼬리까지 기다랗게 이어진 척추뼈에 붙어 있었다. 사람 몸의 갈비뼈는 24개지만, 뱀은 종류에 따라 200개에서 400개 가량의 갈비뼈가 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냄새는 많이 사라졌다. 부패한 살점도 얼마 남지 않았고 하얀 척추뼈와 갈비뼈, 회색빛 피부만 일부 남아 있었다. 풍장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좀 큰 동물이 와서 살점을 파먹은 듯하고, 그 다음에 남은 살점은 풍뎅와 파리가 와서 깨끗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전날 보였던 파리 유충(구더기)들이 사라진 이유는 풍뎅이들이 파리 유충을 모두 먹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야만 풍뎅이들이 알을 낳았을 때 그 유충들을 위한 먹이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앞에 남은 뱀의 몸은 결국 먹이를 두고 파리와 풍뎅이가 생존대결을 벌이는 전장인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생겨나는 작은 종류의 애벌레나 초파리들은 또한 벌새의 먹이가 된다. 남은 뼈는 흙의 일부가 되어 식물들의 거름이 될 것이다. 뱀은 죽은 후 불과 이틀 사이에 다른 수많은 생명체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징그럽지만 자세히 보니 풍뎅이 종류들이 뼈와 뼈 사이의 연골마저 깨끗이 먹어치우는 게 보였다. 끓는 물에 몇시간 끓였다 뺀 것처럼 새하얗고 깨끗한 척추뼈와 갈비뼈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척추뼈들도 사이를 이어주는 연골이 사라지자 작은 덩어리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젓갈 냄새 같던 악취도 훨씬 사라졌다. 사진에 보이는 풍뎅이는 한국에서 '송장벌레'라고 부르는 '네크로필라 아메리카나(Necrophila americana)'라는 이름의 풍뎅이라고 했다.
일단 그 뱀이 왜 죽었을까 궁금했는데, 여러 가지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며칠 전 해충 방지약을 뿌리러 왔는데 그 약을 잘못 먹었거나, 전염병에 걸렸거나, 그냥 늙어서이거나,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았거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날 저녁 몸이 꽤 커서 유독 새끼 호랑이처럼 보이는 고양이가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는 걸 봤는데, 옆집 이웃이 보고 그게 고양이가 아니라 '삵(살쾡이)-leopard cat'이라고 했다. 나는 사실 그 고양이가 뱀의 시체를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서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는데, 근처까지 왔다가 다가가지는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렇다면 그 살쾡이가 뱀을 죽인 건 아닐 것이다. 살쾡이 말고도 매나 독수리, 올빼미 등이 죽여놓고, 생각보다 무거워서 못 들고 간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매가 사냥해서 물고 가다가, 비가 너무 거세게 내리는 바람에 떨어뜨린 것일 수도 있다.
나중에 뱀의 색채와 모양을 떠올리며 검색해보니, 죽은 뱀은 '돼지코 뱀(Eastern hognose snake)'이었던 게 확실하다. 코끝이 살짝 위로 들려 있어서 돼지코(hognose)라는 이름을 얻은 뱀이다. 내가 발견한 종류는 이 중에서 North Carolina specimen 종류인 것 같았다. 위험에 처하면 목 부위를 납작하게 만들어 코브라 흉내를 내며 엄청 무서운 척하지만, 적이 꼼짝 안 하면 몸을 뒤집고 죽은 척을 하고, 사실상 사람을 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사람에게는 전혀 해롭지 않은 뱀이다. 주로 두꺼비와 작은 포유류 같은 걸 먹는다고 하고, 조지아에서는 보호 받는 뱀 종류라고 했다.
돼지코뱀이 왜 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뱀도 생태계의 일부이고 우리 집 근처의 독충들이나 쥐 같은 걸 잡아먹어주며, 나를 공격하지는 않으므로 고마운 존재가 분명하다. 죽어봐야 생선 냄새 같은 걸 풍긴다는 점에서 내가 잘 먹는 뱀장어랑 크게 다르지도 않은데, 그 동안 너무 이웃 취급을 안 해주고 혐오스러워하기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네 발 달린 짐승, 두 발 달린 새는 인정하면서, 손발이 없어 기어다니는 독없는 뱀을 학대했던 나는 얼마나 무식한 포유류란 말인가....
처음 발견했을 때 클로버꽃 속에 잠겨 있던 뱀의 모습이 기억났다. 향기로운 클로버꽃에 머리를 묻고 잠들듯이 죽는 죽음이라니... 자연 속에서 죽음이란 태어남 만큼이나 자연스럽고 흔한 현상이며, 사실 우리는 매일밤 잠들 때마다 그런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모두 내어주며 수많은 생물을 먹이는 뱀의 최후는 숭고하기까지 했다. 잠시 부패하는 냄새를 풍겼으나, 그 냄새마저도 말끔하게 사라지고 깨끗하고 새하얀 척추조각과 수많은 가시 모양의 갈비뼈로 남은 돼지코뱀. 뱀의 가시같은 갈비뼈를 보니 하얗게 가시 모양으로 피어난 '고양이수염꽃(Cat's Whiskers Plant)'이 생각났다. 고양이의 수염, 노인의 흰 눈썹, 뱀의 갈비뼈, 물고기의 가시, 길게 뻗친 꽃의 수술...모두 닮음꼴인 것을... 이것 역시 벌새가 물어다준 진귀한 경험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