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4
벌새는 침입자 벌새가 넥타를 먹지 못한 채 기운만 빼도록 만들어서 상대를 굶겨죽인다고 들었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관대하여 새로 온 벌새에게 기회를 주었다가는 순식간에 자기 자리를 빼앗길 수 있고, 입장이 뒤바뀌면 똑같은 위험에 처하여 굶어죽게 될 것이다. 잔인해 보여도 생존을 위해 목숨걸고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용맹한 암컷 벌새에게 ‘레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좋아하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악녀 세르세이 레니스터를 연기한 배우의 이름이 레나 헤디였다.(세르세이는 발음하기 어려워서 레나로 정했다) 레나는 훌륭한 벌새 엄마가 될 것이다!
이제 자기 집 부엌이라도 되는 듯이 귀여운 벌새가 하루 종일 창밖에 머물렀다. 심지어 토마토 지지대에 앉아 여유롭게 털을 고르기까지 했다. 토마토 지지대에 앉은 벌새가 수시로 바라보는 건 자신의 밥통인 넥타 피더. 그러다 다른 벌새가 날아들어 피더에 부리를 대려고 하자 총알같은 속도로 달려들어 침입자 벌새를 쫓아버렸다. 다시 자기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으면 아까의 그 벌새인지 새로운 벌새인지 모르나 다른 벌새가 또 등장했다. 토마토 지지대에 앉은 벌새가 원래의 벌새인지 새로운 벌새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론상으로는 피더를 선점하여 더 자주 밀도 높은 넥타를 먹어둔 벌새가 다른 곳에서 고픈 배를 움켜안고 날아온 벌새보다 기운이 좋아서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높았다. 벌새는 침입자 벌새가 넥타를 먹지 못한 채 기운만 빼도록 만들어서 상대를 굶겨죽인다고 들었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관대하여 새로 온 벌새에게 기회를 주었다가는 순식간에 자기 자리를 빼앗길 수 있고, 입장이 뒤바뀌면 똑같은 위험에 처하여 굶어죽게 될 것이다. 잔인해 보여도 생존을 위해 목숨걸고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용맹한 암컷 벌새에게 ‘레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좋아하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악녀 세르세이 레니스터를 연기한 배우의 이름이 레나 헤디였다.(세르세이는 발음하기 어려워서 레나로 정했다) 레나는 훌륭한 벌새 엄마가 될 것이다!
나는 창가 식탁 위에 작은 삼각대를 세우고 캠코더를 설치해두었다가, 벌새가 나타나면 얼른 동영상을 찍었다. 좋은 점은 벌새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서도 줌 상태로 벌새의 행동을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율상 다른 새보다 훨씬 큰 새까만 눈을 가진 덕분에 벌새는 더 귀여워 보였다. 커다란 눈에 반짝이옷을 입었으니 타고난 엔터테이너들이었다. 토마토 지지대에 앉아 입맛을 다실 때 기다랗고 새하얀 혀가 긴 부리 끝으로 들락날락하는 게 신기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럴 때는 긴 혀로 공중의 날파리를 잡아먹거나, 목에 저장해둔 넥타를 다시 꺼내 먹는 중이었다. 더 좋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보니 벌새의 혀끝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기까지 했다!
이제 우리집 넥타가 다른 집 넥타나 어떤 꽃꿀보다 달다는 사실이 소문난 것 같았다. 레나는 하루 종일 침입자들과 싸워야 했다. 이런 외진 곳에 피더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 걸까. 사람들처럼 입소문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체로는 다른 벌새들이 자주 가는 곳을 보고 따라가다가 발견할 것이다. 사람들이 가게 밖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맛집을 짐작하듯이. 비록 존 선생님은 내가 벌새들을 당뇨병 환자로 만든다고 걱정하셨지만, 같은 양의 설탕물이라면 상대적으로 농도가 높은 것을 먹는 편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게다가 밥이 좋고 밥그릇이 더 클수록 밥그릇 경쟁은 치열해지는 법... 밥그릇 제공자인 나는 무슨 대기업 총수라도 된 듯이 마음이 흐뭇했다.
피더의 설탕물은 매일 아침 새롭게 갈아주었다. 조지아의 여름은 무척이나 더워서 냉장고에서 금방 나온 시원한 설탕물을 걸어주면 벌새들이 기뻐하며 곧장 날아들었다. 이곳에 상주하게 된 암컷 벌새 레나는 피더에서 직선 거리에 있는 윈터베리 나무의 돌출한 가지에 앉아 쉬다가 10여분에 한 번씩 피더를 방문했고, 밤에도 그곳에서 자는지 아침 해 뜨는 시각인 6시 반에 맞춰서 첫출근을 했다. 나는 레나의 첫방문을 목격하기 위해 새벽부터 부엌 유리창 뒤에 서서 블라인드 틈새로 벌새를 훔쳐보았다. 아직은 내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내가 가리지 않은 채로 창가에 서있으면 벌새가 겁을 내며 도망쳤기 때문이다. 벌새의 눈에 나는 아마 거대한 북극곰 정도로 보일 것이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처음으로 날아오는 벌새에게 아침인사를 건네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심심할 때마다 벌새를 관찰하고, 저녁에 해지는 시각에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넥타로 배를 채우고 떠나는 벌새를 보며 마음으로 잘 자라고 인사를 보냈다. 단 한 마리의 벌새가 내게 아침에 일찍 일어날 의욕을 되돌려준 것이다. 그전까지 나는 밤새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아침에는 잘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캠코더로도 모자라서 DSLR 카메라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밥 먹다가도 벌새 사진을 찍었다. 벌새의 혀 끝에 맺힌 넥타가 떠오르는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장면이 우연히 찍혔다. 그 한 장의 사진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환하게 유지되었다. 루비뜨로티드 벌새 암컷의 등은 초록색이었지만 목과 가슴, 배가 모두 하얀색이었고, 날개를 펼칠 때 날개 안쪽도 하얘서, 어떨 땐 정면을 보이며 위쪽으로 날아오를 때 마치 천사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벌새는 자유자재로 몸의 방향을 정반대로 바꿀 수 있어서 위로 아래로 우측으로 좌측으로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자 레나의 흰 목색깔도 지겨워졌다. 이 새들의 이름이 ‘루비뜨로티드(Ruby-throated)’ 즉 ‘루비처럼 반짝이는 빛깔의 목깃털을 가진’ 벌새인 이유는 오로지 수컷 벌새들 때문이다. 그간 다른 지역에 산다는 벌새들의 사진을 좀 찾아보았는데, 루비뜨로티드 벌새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색깔과 모양을 가진 아름다운 벌새들이 존재했다. 그들에 비하면 루비뜨로티드의 아름다움은 꽤 평범한 편이었고, 그 중에서도 암컷들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였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처음 피더를 걸어놓고 일주일간 벌새를 기다리던 시절에는 암컷 벌새가 가끔 찾아주어도 감탄을 하고 넋을 놓고 바라보던 내가 아닌가. 한 마리도 오지 않을 때에는 한 마리라도 오기를, 한 마리가 나타나자 좀더 자주 나타나기를, 자주 나타나자 더 많은 개체가 나타나기를, 많은 개체가 자주 나타나자 다 필요 없고 아름다운 수컷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행복해지기 어려운 이유는 명확했다.
벌새들이 비록 아름답다고 하지만 햇빛이 없으면 그저 작고 빠른 진회색 왕파리 정도로만 보였다. 수컷 벌새의 목깃털은 햇빛을 반사할 때에만 루비처럼 찬란하게 반짝이는데, 다른 침입자 벌새에 대항하여 힘을 과시하거나 짝짓기할 때 매력을 드러내기 위해서 스스로 목깃털을 바짝 곤두세울 때도 가능하다. 그 외의 경우에 목 부분 깃털은 그냥 검은 색으로 보인다. 문제는 확률상 10마리 중에 한두 마리만 수컷이고 나머지는 암컷이나 청소년들이라는 점이었다. 암컷들의 목은 그냥 하얗기만 했고, 청소년 벌새 수컷들의 목에는 이제 겨우 한 두 개씩 반짝이 깃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피더에 아주 잠깐 수컷 루비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수컷이 넥타구멍에 주둥이를 대기 무섭게 암컷이 나타나서 쫓아버리긴 했지만 수컷이 틀림없었다. 수컷은 몸 크기가 암컷보다 살짝 작아보였고, 몹시 불안하고 조심스러웠고 암컷보다 더 빨리 탁구공처럼 튀듯이 움직였다. 척 보기에도 그 수컷은 레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나는 수컷이 사라진 자리를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제발 다시 한번 나타나주기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