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수컷 루비 등장하다!

벌새와 나의 이야기-5

by 최리라
새를 위해 먹이를 준비하고, 새들이 그 먹이를 포식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다가, 85세인 존 선생님이 아직도 그 연세에 주변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해서 대가 없이 먹이는 일을 즐기시는 이유를 문득 이해하게 되었다. 새들은 보답은커녕 나를 기억해주지도 않을 수 있지만, 새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만으로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들이 힘을 얻어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새끼를 기르고, 힘든 철새 이동에서 살아남는다면, 그것만으로 나의 보상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날 아침에도 잠이 덜 깬 상태로 1층으로 내려가 부엌 현관문 유리창의 블라인드 틈으로 피더쪽을 훔쳐보았다. 어떤 벌새 한 마리가 피더 앞에 붙어서 넥타를 마시고 있었다. 레나가 한창 장악하고 있던 때여서 그게 레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레나보다는 몸집이 작고 땅딸막했고 목이 새까만 색이었다. 나는 얼른 거실로 달려가서 DSLR 카메라를 들고 와서 파파라치 구멍(카메라 렌즈를 끼울 수 있는 크기로 블라인드 틈을 살짝 벌려서 집게로 고정시켜두었다)으로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었다. 딱 네 컷 찍고 나자 벌새는 사라져버렸다. 창 안쪽이지만 뭔가가 자기를 겨누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 네 컷은 심하게 흔들렸지만 단 한 컷 속에 루비빛으로 반짝이는 목깃털이 담겨 있었다. 나처럼 동작이 느린 사람이 카메라를 집어와서 초점을 맞출 때까지 기다려준 그 새가 너무나 고마웠다. 마치 모래 사장에서 별 기대없이 진짜 루비를 주운 느낌이랄까.


그 수컷은 사실 최근에 몇 번 잠깐 나타나 기습적으로 넥타를 먹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몸집도 작고 겁도 많아 보였다. 그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레나와 다른 암컷들에게 쫓기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루비뜨로티드 벌새들은 매년 봄 멕시코에서 철새 이동을 시작했고, 조지아에는 4월경부터 도착하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벌새들은 더 좋은 피더를 장악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나중에 도착한 새들은 자리가 없어서 더 북쪽까지 날아가야 했다. 먹이 경쟁 때문인지 아니면 기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멀리 가는 벌새들은 캐나다 북단까지 이동했다.

2F2A9939.JPG 수컷 루비 벌새가 처음 나타났던 날. 피더의 주인인 암컷 레나의 기세에 눌려 넥타는 한 모금도 빨지 못하고 쫓겨났다.


모든 벌새들이 캐나다 북단까지 찍은 다음에 다시 멕시코까지 내려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벌새의 작고 가느다란 발목에 금속 밴드를 채우고 이동 경로를 추적해본 연구자들은, 벌새들이 이전 여름에 자기가 머물던 피더로 다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레나의 피더에 최근 출몰하기 시작한 이 수컷 벌새는 늦게 도착한 철새일 수도 있고, 다른 곳의 피더를 어떤 이유로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고, 자기 피더의 넥타보다 더 달콤한 넥타를 맛보자 이곳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한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수컷 루비가 몰래 넥타를 훔쳐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힘이 세질 것이고, 내 피더에 대한 애착도 커져서 결국 레나의 방어막을 뚫고 더 자주 찾아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아름다운 목깃털을 과시하며 나의 모델이 되어줄 날도 머지않았다고 믿었다.


우리 집에 놀러오던 친구들도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서 나의 벌새 피더를 감상하게 되었고, 일부는 자기 집 창밖에도 벌새 피더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벌새 전도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끝없는 질문에 나는 아는 만큼 설명을 해주었고, 우리의 대화는 온통 벌새에 관한 것으로 채워졌다. 물론 벌새 이야기만 나와도 흥미를 잃어버리고 ‘또 그 지겨운 새 이야기야?’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없진 않았지만 말이다.

2F2A9969-1.jpg 어둠 속에서도 수컷 벌새임을 보여주는 새빨간 목깃털.


새를 위해 먹이를 준비하고, 새들이 그 먹이를 포식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다가, 85세인 존 선생님이 아직도 그 연세에 주변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해서 대가 없이 먹이는 일을 즐기시는 이유를 문득 이해하게 되었다. 새들은 보답은커녕 나를 기억해주지도 않을 수 있지만, 새들이 즐겁게 먹는 모습만으로 순수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들이 힘을 얻어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새끼를 기르고, 힘든 철새 이동에서 살아남는다면, 그것만으로 나의 보상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2F2A1507-g.JPG 존 선생님의 뒤뜰 피더에 날아오던 수컷 벌새 중 하나.

존 선생님이 어렸을 때 존 선생님의 어머니는 전시에 배급을 받아 살 때조차 벌새를 위한 설탕은 따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그걸 보고 자란 존 선생님 형제 자매들은 독립한 후 각자의 가정에서 벌새에게 설탕물을 제공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에도 그들은 벌새로 연결되어 있었다. 물론 요리를 잘 했던 존 선생님의 어머니는 새뿐만 아니라 이웃들을 먹이는 일에도 열심이었고, 손글씨로 쓴 요리 노트를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 나는 그 노트 중에서 존 선생님이 나에게 만들어주신 요리 중심으로 요리책을 만들었고,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그 집을 드나들면서 벌새를 먹이는 즐거움과, 손수 요리하여 이웃을 먹이는 즐거움까지 전수받았다. 먹이기(feeding)라는 행위가 그 자체로 즐거운 행위가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전파력이 클 수 없다. 나는 존 선생님처럼 ‘먹이는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2F2A1446.JPG 귀국하기 전 마지막 방문했던 날의 존 선생님과 노먼 할아버지 부부.


벌새의 날개를 타고


어디 빠질 게 없어서 벌새에게 빠지냐고 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뭔가에 잘 빠진다'는 건 '어른이'라고도 불리는 나의 주요한 속성 중 하나이다. 나를 매혹하게 하는 대상이 없으면 삶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아서인지, 나는 항상 뭔가에는 빠져 있었다.


낯선 미국에 와서 적응하던 초기, 아침마다 남편이 학교에 가고 나면 나는 혼자 멍하니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전화 오는 곳도 없고,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었지만 누가 지켜보거나 혼내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습관대로 모든 행위에 나름의 명분을 부여해야 해서 텔레비전 보기를 '현지적응을 위한 영어공부 시간'으로 규정했다. 그래봤자 영어를 또렷하게 인식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인 '세서미 스트릿(Sesame Street)'이나 '바니와 친구들(Barney and Friends)', '카이유(Caillou)' 같은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들이었다. 내용이 심각하지 않고, 쉬운 단어들로 말하고, 말보다 행동이 많아서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영어공부라기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바니-리프2.JPG 바니와 친구들(가장 키 큰 공룡이 바니, 왼쪽의 주황색 공룡이 바니의 사촌 리프)


그 중에서도 특히 우스꽝스럽게 생긴 보라색 공룡 탈을 쓴 바니와 공룡친구들이 등장하는 '바니와 친구들'이 좋았다. 생김새도 행동도 큼직큼직하고 말도 느리면서 코믹한 공룡친구들에게 점점 감정이입을 하고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날인가부터 바니의 사촌으로 가끔씩 등장하는 '리프'라는 공룡에게 빠져버리고 말았다. 리프라는 이름은 '멋지다'라는 뜻의 '테리픽(terriffic)'의 중간 글자를 딴 것이라고 했는데, 그 멋진 리프만 나오면 기분이 좋고 흥분이 되었다. 리프는 다른 공룡과 달리 기분이 좋으면 머리 위 얼룩 무늬에 초록 불이 켜졌고, 내가 좋아하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나는 모든 곳에서 노래소리가 들려(I hear music everywhere)"라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바니-리프.JPG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면 머리에 초록불이 켜지는 리프


리프의 머리에 불이 켜질 때마다 나까지 신이 났고, 몇 주 후에는 어린이 장난감 전문 쇼핑몰에 가서 리프 인형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 리프는 상시적으로 나오는 주인공들이 아니라 가끔씩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여서 인형이 없었고(리프는 20년 가까이 제작된 바니 시리즈 중 마지막 몇년 동안만 등장),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리프랑 전혀 안 닮은 조악하게 만든 인형만 가끔 보였다. 귀여운 리프 인형을 구할 수가 없다고 남편에게 투덜대던 중, 조금 볼륨을 높인 내면의 목소리가 비아냥거렸다.


하다하다 이젠 빠질 게 없어서 탈 쓰고 나오는 공룡인형에게 빠졌구나!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정말 이젠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것에 빠져버렸구나! 하지만 잊지 않기로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탈 쓴 공룡 바니와 리프에게 빠짐으로써 외롭고 힘든 시절을 견딜 수 있었구나. 그렇게 보면 '빠진다'는 행위는 나만의 마약이자 구원 의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막에 홀로 남아도 낮에는 굴러다니는 풀더미(tumbleweed)에 빠지고 밤에는 유독 빛나는 별 하나에 빠져버릴 사람이었다. 20대에는 남자배우들에게 빠졌고, 결혼 후에는 다행히 남자가 아닌 식물에 빠졌고, 미국에 가서는 영어를 요구하지 않는 자연과 새들에게 빠졌고, 유학 말기에는 새끼 손가락 만한 벌새에게 빠진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한때는 우연히 우리집 화장실에 살게 된 귀뚜라미에게 빠졌던 적도 있다. 어느날 화장실 슬리퍼 속에 들어가 있다가 내 발에 밟혀 생을 마감하는 바람에 나를 죄책감에 빠뜨리긴 했지만.


크기가 작아졌다뿐이지 붕붕거리는 날개소리와 반짝이는 깃털을 지닌 벌새 존스노우는 멋쟁이 공룡친구 리프와 다를 게 없었다. (사실 새의 선조는 공룡이긴 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지개나 불꽃놀이, 오로라를 보는 듯한 쾌감을 주며, 솜털처럼 귀여우면서도 전투기처럼 강인하여 더욱 빠져들게 한다. 적고 보니 이 모든 표현은 그냥 '내가 빠져 있다'라는 말의 동어반복인 듯 하다.


존 스노우는 나의 '팬심'을 이해하는지, 부엌창 안에 숨어 자신을 훔쳐보는 시선을 꽤나 즐기는 눈치다. 양날개를 하늘로 쳐들고 기지개를 펴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다시 날개를 내려 접고 나와 잠시 눈을 맞춰준다. 보통 기지개를 편 후에는 하늘을 향해 로켓처럼 휭하고 솟아오를텐데 말이다.


벌새-하늘로날기직전.JPG 하늘로 솟아오르기 직전 포즈


'흠...조금 더 포즈를 취해줄까나...'라고 생각하는 듯 두 날개를 접고 고개를 까딱거린다. 그리고 작은 발을 들어 강아지처럼 자기 목을 긁는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다시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낸다.


내 마음은 좁고 갑갑한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3그램밖에 안 되는 작은 새의 날개에 올라탄다. 새의 날개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내 마음도 0.1그램으로 가벼워진다. 새의 모든 행동을 집중하여 바라보고, 매순간 다른 각도로 반짝이는 등깃털과 목깃털을 관찰하고, 오리 모양에서 러시아 인형 모양으로 다시 백조가 되었다가 펭귄 모양으로 바뀌었다가 자기자신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다보면 작은 새는 내 시야의 전체를 차지하고서도 더욱 확대되어 나의 집이 되고 세계가 되고 우주가 된다. 내 어깨를 짓누르던 불안과 두려움은 어느새 새의 눈동자 속 한 점 먼지처럼 사라지고 마음은 순수한 희열로 가득찬다.


존스노우는 바람이 내는 어떤 음악소리를 듣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까딱까딱거린다. 목운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른쪽 날개를 들어올려 겨드랑이털을 부리로 정리한 후 날개 뿌리쪽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한다. 반대편 날개로도 같은 동작을 반복하더니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두둥실 솟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온다. 사방 어느 곳에서도 경쟁자의 날개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의 평화를 즐기며 휴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산들바람을 타고 솟아오르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방문해야 할 꽃이 생각났는지 날개에 시동을 걸고 수직으로 솟아오른다. 우리집 지붕보다 더 높이 솟아올라 아래쪽을 살펴보더니 곧 지붕너머로 사라져버린다. 이 모든 해석이 나의 거대한 착각일 뿐임을 알면서도 나는 토요일 오후 같은 존스노우의 평화에 동승한다. 이제 눈을 감으면 하늘 높이 날아오른 존스노우의 시선으로 지상의 꽃밭을 내려다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keyword
이전 05화후발주자가 벌새를 유인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