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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진 Dec 11. 2022

둘째를 가지면 안 되는 이유

아직은 나를 추스르고 싶다.


"이제 둘째 가져야지?"

"둘째는 생각 없어?"

"둘은 있어야지, 하나는 외롭다?"




30대 후반에 들어서고 나니 주위에서 이제 빈번하게 물어온다. 둘째는 계획이 없는지, 왜 안 갖는지.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직 고민 중이다. 내 어린 시절, 난 가족이라 함은 아빠, 엄마, 남매로 이루어진 4~5명의 단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남들처럼은 되고 싶었던 성격 탓에 나도 애는 둘은 낳아야 한다고 무의식 중에 정해두었던 듯하다. 다만 막상 애 하나를 키우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난 아이를 싫어하지만 내 아이는 나를 온전히 버릴 수 있을 만큼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래서 또 다른 내 아이를 생각해보자니 설레기도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다.



둘째를 가져야 하는 이유

이유를 생각해보자니 제일 먼저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노년의 외로움. 나의 부모님과 내 남매들의 경우를 생각해봤을 때 아버지는 항상 외로우셨다. 딸, 아들 할 것 없이 주로 어머니 편이다. 요즘과 다르게 가장으로서 평생을 직장에서 돈만 벌다 평소 육아에는 참여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어머니보다는 애착관계가 약했던 탓이리라. 아빠는 '돈 벌어오는 사람인데 그래도 그럭저럭 잘 놀아주는 사람', 엄마는 '매일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직업 상 그 시절 다른 회사원들보다 훨씬 가정에 집중하셨고, 우리 남매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어머니도 평생을 주부로 육아만 하시며 본인을 아예 잃으셨다. 그런 모습을 더 자주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 남매가 이제라도 어머니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싶다.) 이런 이유로 나 역시 노년에 외로워질까 두렵다. 예전 나의 부모님 시절과 다르게 부부 남녀가 동등하고, 맞벌이 이기 때문에 경제권도 비슷하다.(실제는 아니지만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집안의 내 포지션을 생각했을 때 왠지 모르게 내 딸은 엄마 편만 들 것 같다. "아빠가 딸한테 잘하면 달라"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어봤지만, 그래도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면, 내 편이 생길 확률이 올라가지 않을까. 편 가르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둘 중 한 명은 그래도 가끔 한 번씩 아빠인 나를 생각해주지 않을까.


둘째를 가지면 안 되는 이유

둘째가 생겼다고 상상해보았다. 아내는 임신기간 중 겪을 신체적 힘듦과 정신적 스트레스, 그리고 난 그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려 노력하고 참아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또다시 버텨야 한다.(어느 누가 더 힘들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부가 서로 힘들다.) 10개월 간의 인고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너무나 소중한 쪼그만 아기가 내 눈앞에 나타난다. 감격스러운 한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내의 머릿속에서 남편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아기가 사랑스러운만큼 사라질 예정이다. (지금도 아내에게 갖는 가장 큰 서운함이 이 이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수순이라고 그냥 나 혼자 정해버렸다.) 게다가 10개월간 태아가 첫째 아이처럼 심장소리는 우렁찬지, 성장은 각 주차에 맞게 잘하고 있는지 등등 매 순간 떠오르는 걱정거리는 별도다. 당연해야겠지만 우리 둘째 아기가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첫째 아이처럼 월령에 맞게 발달이 잘 되는지, 인지는 어떤지, 지능은 어떨지, 첫째 때는 안 그랬는데 왜 그렇지 등등 또 걱정이 태산이 된다. "우리 아이들은 착하고 똑 부러지고 공부도 잘하면서 친구관계는 좋아하며...." 수많은 기대치를 현실에 심어놓은 채 걱정이 많아질수록 우리 부부 사이는 더 멀어지게 되지 않을까. 상대의 감정보다는 나의 답답함,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아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우선될 테니. 거기에 추가로 두 아이를 케어하다 보면 집안일은 더 뒤로 밀릴 예정이며, 밀린 일은 결국 나의 몫이 될 확률이 높다.(사실상 거의 확실하다.)



나를 위해 둘째를 가져야 하지만 또 나를 위해 가지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첫째 아이가 생기면서 따라온 많은 부부갈등과 내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첫째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렇지만 둘째 아이에게도 똑같이 희생할 수 있을지, 모든 상황에 대해 내 아버지처럼 너그러워질 수 있을지, 아직 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듯하다. 지금도 나를 잃어간다고 고민하는 와중에 둘째가 생긴다면? 왠지 모르게 난 그냥 그마저 조금 남은 내 모든 걸 놓아버리고 두 아이만 바라보고 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러다 두 아이조차 성인이 되어 내게서 벗어나는 그 순간이 오면. 난 그때 맞이할 허전함을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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