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자기소개②] 평범을 원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20대 이야기
스무 살이 되는 첫날의 첫 장면은 자취방에서 쌓여 있는 수능 기본서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다. 지방 토박이가 일언반구도 없이 서울로 끌려와 재수학원으로 향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대학이 뭐고 성적이 뭐길래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분노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분노가 매우 모범적으로 작용했다. 그 분노로 재수학원을 뛰쳐나가거나 술을 마시거나 한 게 아니었고, 이번엔 부모님에게 손 안 벌리고 장학금 받고 대학에 합격하는 것으로 부모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거라고 다짐했으니.
재수학원에서 발견한 내 근자감
분노를 안고 가장 처음 한 것은 그나마 내가 자신 있는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수학의 정석"은 대략 3개월간 내 전부였다. 문과라 쉬웠던 것인지, 한 우물만 파니 수학은 언제 어떻게 봐도 만점이 나오더라. "이러다 서울대 가는 거 아니야? 수학이 3개월 걸렸으니 언어, 외국어, 사회탐구 각각 3개월씩 9개월만 더 하면 수능까지 수능 만점자 되겠다!" 물론 그 당시 내 근자감이었고, 단순히 근자감으로 끝이 났다. 소위 스카이를 제외한 그 당시 10대 대학 중 한 곳에 합격했으나 이것도 애매하다. 어딘지 부족한 합격이었다.
학교는 역시 간판이고, 전공은 역시 취업 수단 아닌가
대학 전공을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은 내 시험 성적과 취업의 수월함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전공 선택은 경영학으로. 경영학을 전공하신 모든 학생과 교수님들 연구자 분들께는 송구스러운 말이지만 그 당시 난 경영학은 "여기저기 다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취업문"이라고 생각했다.(개인적으로 경제는 싫고, 법은 어딘지 모르게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난 꾸역꾸역 "남들처럼" 되기 위해 노력해온 노력파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대학 간판을 먼저 선택하고, 혹시나 경영학도가 될 수 없다면 어느 이름 모를 학과에 입학 후 전과나 편입을 고려한 차선책도 마련해두었다.
다행히 여차저차 경영학도가 되었지만 본래의 목적인 취업은 또 다른 난관이었다.
"최고는 아니어도 뛰어나고는 싶다"
대학생활 역시 내 최대 목표는 평범해지는 것이었다. "남들처럼" 취업하기 위해 자소서에 한 줄 넣을 만한 알바와 인턴을 닥치는 대로 했다. 심지어 군대 말년휴가 때 인턴 지원서를 작성하고 전역 후 바로 인턴을 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입사는 다른 문제였다. 내 목표가 높았던 것일까. 그 많은 대학생들은 도대체 어디로 다 취업하는 걸까. 소위 스카이 친구들은 도대체 어디로 입사하는 걸까. 수없이 겪게 되는 광탈 속에서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채용공고를 검색하는 검색 키워드는 "대기업"이었다. 평범해지고 싶다고 생각해왔으나 실상은 "나 대기업 입사했어"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거였나 보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광탈을 겪으며, 분명 학점/영어/대외활동 같은 취업 조건이 나보다 안 좋은 사람들도 많을 거라며 자기 위로를 했다. 난 "남들처럼" 살고자 하는 부류는 아니었나 보다. 난 최고는 아니어도 되지만 주위보단 뛰어나고 싶었다.
그토록 원했던 어느 한 대기업에서의 사회생활
대학을 졸업하기 전 나름 대기업에 입사했다. 이직을 염두에 둔 재무팀 재무쟁이로서의 첫걸음마였다. 난 힘들다고 말하는 법이 거의 없지만.. 힘들었다. 지금까지 통틀어 되는 것 하나 없던 내 인생 최악의 시기. 아침 6시 반이면 사무실에 출근했고 자정이 넘어가고 나서야 사무실 불을 끄고 퇴근했다. 왜냐고? 그렇지 않으면 눈치가 보였다. 부장이란 사람은 본인이 차 밀린다고 밤 9~10시에 퇴근하면서 아침에 책상에 올려놓으라며 숙제를 던지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하셨다. 신입이라 군기 잡는 건가 싶었으나, 같은 팀 대리/과장/차장 할 것 없이 다 그랬다. (사기업 생활은 할 말이 많아 다시 다룰 예정이니 자세한 건 일단 생략한다.) 연봉은? 근무시간에 비하면 박봉이었다. 대기업, 누가 돈 많이 준다고 했던가. 정말 메이저급 대기업이 아닌 이상 초임 연봉은 겸손 없이 정말 평범하다. "3년만 채우고 대학 교직원이나 재무 경력직으로 이직해야지" 한두 번 한 생각이 아니다. 선배들은 같이 밤 12시에 퇴근하면서 힘들다고 맥주 한잔하자고 하고, 재무팀 특성상 잦은 접대 자리에, 주말출근 등등 이대로면 난 결혼도 못하지 싶었다. 그래도 버텼다. "주위보다" 어린 나이에 취직했고 정장을 빼입으며 멋들어진 명함케이스에서 쓱 하고 명함을 건넬 수 있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우수직원상도 받았고, 나름 팀에서 메인업무를 맡으며 인정도 받았고, 뉴스에서만 보던 IPO를 실제로 추진해보기도 했기 때문에.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 때문에 퇴사를 결심했다. 내 실적을 앗아가는, 드라마에서만 봐왔던 사기업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정치행각에 놀아나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 29살이었다.
평범을 외쳐왔지만 잘나고 싶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역경을 맞이했다. 역시나 사기업에서의 생활은 힘들었고(업무보단 역시 사람 스트레스다.), 무작정 퇴사한 그 나이 29살은 오히려 나 잘났다는 합리화에 이르렀다. "아직 취업도 못한 내 또래가 많으니.. 평범하고 싶었지만 역시 난 잘났던 것인가." 대단한 착각을 하며 20대의 끝에 백수의 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