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막내로 태어났다. 순하고 친구들과 잘 섞여있지만, 존재가 드러나진 않는 아이였다. 좋은 것, 싫은 것, 표현하지도 않아도 되는 수동적인 삶이라 그런지 기억에 남는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두 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게 끄집어낼 수 있다.
안 좋은 기억을 준 선생님, 좋은 기억을 남겨준 선생님.
초등학교 6학년, 개학식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빠글빠글 볶은 머리에 고집이 있어 보이고 나이 지긋하신 분이셨다. 우리 반에는 이은미가 두 명이었다.
“이름이 똑같으니깐 큰 은미, 작은 은미로 하면 되겠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리셨다.
'아니.... 키가 작다는 이유로 작은 은미라니….'
선생님은 지어주신 나의 이름을 1년 동안 다정히 불러주신 적이 없다.
그게 더 억울했는지도 모르겠다.
존재감이 없는 나에게 작은 꼬리표를 떼고 싶었다. '너는 부족해'라는 말이 나를 늘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그렇게 1년을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냈고,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나와 이름이 똑같은 아이가 있나 살피곤 했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네' '나보다 예쁜 옷 입었네' '큰 은미는 나보다 친구가 더 많네'하며 다른 친구와 비교하는 소심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날, 교실의 문을 열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출석을 부르셨다.
나는 분명 대답을 했는데 메아리 울리듯 “네!”라는 소리가 들렸다. 친구들의 두리번거리는 모습과 함께 선생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둘 다 이은미야?"
나는 앞줄에 있는 그 아이가 5년 전 그 은미인지 눈을 크게 뜨고 확인해 보았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은미는 나보다 한 뼘은 더 작아 보였다. 선생님께서는 크고 작음이 나니라 "은미 A, B로 부르면 어떨까?"라고 물으셨다. 나는 마치 옷 뒤에 간질간질한 작은 라벨을 뗀 것처럼 아주 시원했다. 처음으로 학교생활에 생기가 돌았다. A야!! 은미 A야!!라고 이름도 자주 불러주시고 농담도 자주 걸어주시고 집으로도 초대해 주셨다. 그때 그 카레맛을 잊을 수가 없어 지금도 카레를 먹으면 선생님이 떠오른다.
고3 담임선생님을 만났던 것이 내 학창 시절의 큰 행운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셨던 선생님
"늦었지만 많이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