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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와 생각 Nov 23. 2021

직관으로 글쓰기

조금은 까다로운 글쓰기; 1인 철학 출판사의 방법들 (2화)

영감은 불현듯 온다. 길을 걷다가, 음악을 듣다가, 대화를 나누다가. 뜬금없이 머리를 스치고 간다. 그러면 '아 지금 적어둬야지'라며 메모장을 주섬주섬 꺼낸다. 글에 관심이 많고, 글을 써 본 사람이면 가던 길을 멈추고 메모지를 열어본 적 있을 것이다. 영감은 글 쓰는 이에게 글쓰기를 시작할 힘을 준다. 마땅히 쓸 내용이 없어 축 늘어져 있다가 영감 때문에 힘이 나기도 한다. 단순히 미적미적 시작이 아닌 몰입을 하게 된다.


작가와 인터뷰를 해보면, 메모지를 꼭 들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한다. 글쓰기 교본도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메모지를 꼭 들고 다니라고 충고한다. 작가에게 찾아온 마법 같은 순간을 잡아두기 위함이다. 갑자기 찾아와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감에 사로잡힌 퀸도 'Under Pressure'를 5분 만에 작곡했다. 영감은 갑자기 떠오른 창의적인 생각이다.


갑자기 떠오른 영감은 직관에 기인할 확률이 높다. 논리에 의존한 글쓰기와 다르다. 논리적인 글쓰기는 이치를 따져 묻고, 문제를 찾으며 해결한다. 사물 혹은 사건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영감은 외적인 인과관계와 별개로 의식에 직접 주어진다. 직관적인 글쓰기다. 직관이라는 말은 ‘매개하지 않고 직접 주어진 것’을 말한다. 직관의 유무에 대한 철학적 합의가 아직 없지만, 영감이 있다면 직관의 범주로 부를 수 있다. 갑자기 뿅 하고 떠오른 기막힌 생각이 무엇을 매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직관적 글쓰기는 창의적이다. 직관적인 시작은 전통적인 방식과 결을 달리한다. 직관은 논리로 사물을 파악하지 않는다.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통찰을 논리로 따지는 경우는 영감이 온 이후의 일이다. 논리를 따지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돌아보는 사회 관습이나 상식에 부합하지 않기도 하다. 오히려 관습과 상식에 반대되는 생각이 떠올라 스스로 검열하기도 한다. 직관을 이용한 가까운 예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이다. 인과의 지속 같지만, 창의적인 내용의 나열이다. 원숭이 엉덩이가 빨개서 사과가 떠오르고, 하늘에는 태극기가 떠오른다. 전 국민이 아는 노래가 되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인과를 따져보면 느슨한 노래다. 누군가 처음 이 가사를 들었다고 생각하면 두 반응이 예상된다. 쓸데없다고 하든가, 놀라울 만큼 창의적이라고 하든가.


직관에 따른 글쓰기가 창의적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단점도 있다. 첫째는 휘발성이다. 직관적 영감은 주변과 관계없이 의식에 직접 주어진다. 그만큼 통찰의 순간이 지나면 기억해 내기 어렵다. 조금만 게을러도 오전에 떠오른 창의적인 생각이 오후에 떠오르지 않는다. 인과관계를 따지는 방식은 지성과 이성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식으로 저장에 용이하다. 다시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직관은 논리에 선행한다.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논리를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개념화해 기억하기도 어렵다. 결국 휘발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직관에 따른 글쓰기의 두 번째 단점은 논리가 떨어진다. 영감에 도취되면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게 된다. 자동 기술이 아닐까 할 정도로 빠르게 써진다. 하지만 쓰고 난 뒤에 무슨 글을 썼는지 본인도 맥락 파악이 안 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날카로운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쩌다 보면 감정이 격양된 글, 혹은 당시에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글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스스로에게 도취돼 이런 글을 바로 출간하는 악몽은 없어야 한다. 논리를 따져가며 글을 여러 번 손 봐야 한다. 결국 직관에 의존한 글쓰기는 뒷심이 필요한 글쓰기다.


요약해보자면 직관에 따라 글을 쓰면 그만큼 글을 시작하기 쉽다. 창의적인 영감에 사로잡혀 글을 쉽게 쓰게 된다. 하지만 금방 잊기 쉽고, 논리가 떨어진다. 퇴고의 과정은 필수다. 직관에 따라 쓰면 글쓰기 시작은 쉽지만 후반 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글쓰기다. 퇴고보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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