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봐주세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최대 목적지는 어디일까? 나는 이것을 정신적인 독립으로 본다. 성장 과정은 곧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성인은 이 여정을 순조롭게 거치며 독립된 개체로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이 과정에 지나친 개입과 간섭은 자연스러운 성장을 가로막고 아이들의 정서를 해치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반항하고 고집을 부리는 일은 어찌 보면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어요’라고 알리는 신호와도 같다. 반항과 고집이 없는 아이들을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어른들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고 있는 아이의 내면에 어떤 마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인지 살펴야 한다.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소리 높여 요구하는 아이들보다 어쩌면 소리 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 집단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선생님께 반항심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아이들의 이면에는 그 아이의 외로움과 고독도 보아야 한다. 제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주변의 강압에 억눌린 정서, 자신도 제어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에 눌려 아이 자신도 고달프고 힘들 것이다. 이때 불쑥 솟아오르는 존재감 과시가 왜곡되고 만다. 나를 좀 봐 달라는 외침, 이렇게라도 드러내야 하는 자신의 존재감. 아이는 많이 고독하고 외로움을 그렇게 삐딱한 행동으로, 말로 표현한다. 교사는 신경이 쓰이고, 교사 또한 사람이라 개인적으로 아이가 미울 수 있고, 힘도 들 것이다. 하지만 한 호흡 천천히 내쉬며 생각해 보자. 나와 인연을 맺고 1년 동안 학급살이에 들어온 내 자식이 아닌가. 내가 보듬고 달래주지 않으면 어디서 위로받을 수 있겠는가.....
6학년 담임 때 기억이 난다. 학습력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아이인데 유독 전체 앞에서 선생님 하는 이야기에 딴죽을 걸고 반항심을 풀풀 뿜어대던 아이였다. 참다못해 하교 후 그 아이와 마주하니 녀석은 머리를 긁적이며 죄송하다고 이야기한다. 또래 사이에서 드러내고 싶은 우월감이 꽉 차 있는 아이였다. '난 선생님한테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대드는 사람이야. 난 이런 사람이야.'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다. 친구들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선 우월감이 필요 없으니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겠다. 유치하지만 그 또래 아이들의 심리다.
한편은 이해해 주고 보듬어주면서 인간적인 호소로 아이와 대화해 보면 아이도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 주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솔직한 말로 서로의 마음을 읽어야 하고, 교사와 학생이기 이전 동동한 인격체로서의 만남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힘의 논리로, 권위로 해결하려는 것은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수 십 년 선생 노릇을 하며 터득하게 된 지혜였다.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여유인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한 아이라도 더 눈 맞추고 영혼을 돌볼 수 있는 것 같다. 나랏일을 하시는 분들은 실적 위주, 과업 위주의 불필요한 공문들 과감히 줄여 교실에 있는 선생님들에게 더 많은 자율권과 여유를 허용하길 바란다. 우리 교사들은 누군가의 지시와 제도권 안의 타율을 벗어나 스스로 전문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보다 내가 만들어내고 생각한 일들을 해 보는 즐거움이 교실에서 누리는 교사들의 특권이 아닐까......
아이들의 반항과 고집으로 오늘도 골치를 앓는 선생님들에게 긴 호흡과 여유가 허락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