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패션 캔버스]
1999년 영국의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의 쇼에 한 여성 모델(사진)이 등장했다. 약간 어색한 걸음걸이 외엔 특별할 것 없는 그가 포즈를 취하자 관중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바로 장애인 육상선수 에이미 멀린스였다. 매퀸은 두 다리가 없는 멀린스를 위해 부츠 형태의 정교한 장식을 새긴 나무 의족을 만들었다. 그는 멀린스를 통해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과연 매퀸처럼 인간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인정하고 있나 돌아보게 된다. 소셜미디어 속 수많은 이들의 외양은 비슷비슷하다. 우리는 여기에 아름다움의 기준을 맞춰 간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특정한 형태로 국한시키면,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포용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은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획일적인 미의 기준에서 가장 소외되는 것이 장애인들이다. 국내 등록장애인 중 지체장애인 수는 2022년 기준 117만여 명이다.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이에게 바지 뒷주머니는 더없이 불편한 장식이고, 누군가는 작은 지퍼 고리 때문에 혼자 힘으로 옷을 입을 수도 없다. 그런데 100만 명이 넘는 이들을 위한 의류 제품을 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울까.
장애인을 위한 의류를 ‘어댑티브 의류’라고 부르는데 해외에는 나이키, 리바이스, 벅앤벅, 언히든, 토미 힐피거 등이 어댑티브 의류를 출시하고 있다. 국내는 현재 삼성물산에서 운영하는 하티스트와 개인 브랜드 베터베이직뿐이다. 어댑티브 패션 브랜드가 흔치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시장성 때문이다.
미국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에리카 콜은 2018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가 절단됐다. 그녀는 브랜드 ‘노 리미츠’를 설립하고, 자신처럼 다리가 불편한 이들을 위해 무릎부터 밑단까지 지퍼로 여닫을 수 있는 청바지를 사업 아이템으로 구상했다. 그 후 대기업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창업 지원과 투자를 받으면서 노 리미츠는 성장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노 리미츠 제품은 기능성만큼이나 디자인을 중요시한다. 일반 의류와 달라 눈에 띄거나 어색한 부분을 오히려 의도된 디자인처럼 보이도록 고려한다. 감각처리장애를 위해 개발한 소재와 봉제 기술에 트렌디한 디자인과 색상을 더해 비장애인들도 공략 중이다.
노 리미츠는 어댑티브 패션이 성장하려면 비장애인도 함께 입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입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매력적인 디자인을 갖춰야 함을 시사한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면서도 나만의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옷을 선택하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행위이다. 또한 내 삶의 주체로 살아가려는 인간의 권리이자 자유 의지이기도 하다. 이런 패션의 속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어댑티브 패션은 앞으로도 계속 의료용 특수복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한 가지 형태가 아님을, 그래서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고 배려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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