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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데 오늘 Mar 06. 2022

우주에 체류 중입니다만 (4화)

스페이스 X의 농협 계좌번호

우주에 체류 중입니다만 (4화)  

  

# 스페이스 X의 농협 계좌번호 #     


2022년 2월 16일 (수), 눈, 흐림     


그날은 회사 일도 그다지 바쁘지 않았어요. 시간이 많았죠.     


이럴 때 마우어 씨가 연락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주 콘크리트에 대한 이야기와 사람의 화성 이주에 관한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특히 무중력 상태에서의 콘크리트 시험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겨서 정말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무중력으로 배합된 콘크리트도 찰기가 생기는지? 그리고 수분이 증발하는지? 증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굳어지는 건지? 또 그렇게 만들어진 콘크리트의 강도는 얼마나 되며, 화성에 세우는 건축물의 강도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중력이 없는 화성에서 콘크리트 타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었어요. 잠깐 생각해 봐도 궁금한 것들이 꽤나 많더군요.     


그리고 그런 궁금증을 가진 채 오전 9시 30분이 막 지나고 있을 때였어요. 어제처럼 핸드폰 진동이 울렸어요.     

그건 바로 내 친구 마우어 씨였지요. 이 친구 역시 대인배였군요. 내가 그를 오해했나 봐요. 카톡 안 봤다고 삐진 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참 성실한 사람이네요. 하루 중 오전 10시경과 오후 10시, 딱 12시간을 주기로 반드시 먼저 연락 해오네요. 역시 우주인은 다릅니다. 아주 잘 됐어요. 그에게 우주 콘크리트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서 정말 근질근질했거든요.     


마우어 씨 : 굿모닝!

나 : 잘 잤니? 네 트위터를 보니까 콘크리트 시험을 하고 있더라? 그건 잘 돼가니? 그 실험에 관심이 많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말이야.     


내가 그가 요즘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물어봤으니, 당연히 그가 열정적으로 답해주겠죠? 분명히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는 답변이 돌아오겠죠. 하지만 나의 그런 기대에도 어찌된 일인지 그는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았어요.      


갑자기 왜 이래? 급한 용무라도 생겼나? 우주선이 파괴되기라도 한 거야? 별생각이 다 들더군요. 


정말 한참 동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정말 바쁜가 보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렇게 잊어갈 때쯤 그의 답장이 도착했어요.     


마우어 씨 : 레골라스로 불리는 달 표면에서 생기는 먼지는 우주복에 상처를 낼뿐만이 아니라, 우주인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중략) 알겠니? 그런데 너 우주에 대해서 많이 아는구나?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그 답변은 굉장히 실망스러운 것이었죠. 왜냐면 난 우주 콘크리트에 대해서 물은 것이었는데, 그는 우주 먼지를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친구, 콘크리트가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어요. 그걸 배워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전적 의미조차 모른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초등교육도 못 받은 인물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확신했어요. 그는 스페이스 X 크루 3의 우주인 마우어 씨가 아니라는 것을.     


자. 이제 그의 정체는 확실해졌어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치 잠복수사를 하는 형사와 같은 마음으로요. 재미있겠더군요. 언젠가 그는 내게 마각을 드러내며 그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을 할 테니까요. 그걸 알고 기다리는 느낌 알잖아요. 호랑이가 사슴을 기다리는 마음 말이에요. 약간 설레면서도 자신만만한 그런 느낌.     


마우어 씨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돈을 보내 달라고 할까요? 아니면 물건을 사달라고 할까요? 그리고 독일인은 맞을까요? 아니. 어쩌면 엄마가 농협 고객이라면서 농협 계좌번호를 불러줄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독일인이 농협 계좌번호라? 생각만 해도 웃기더군요. 한번 모른 척하고 넘어가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나 : 내가 머스크의 화성 이주계획에 관심이 많아.     


그러자 이 친구 역시 준비를 많이 했네요. 화제를 슬쩍 돌립니다.      


마우어 씨 : 그런데 넌 왜 내가 보낸 카톡을 아직까지 안 보는 거니?     


글쎄. 인스타로 대화하다 보니 그렇게 됐지만, 지금 보니 정말 잘한 것 같아. 이렇게 말할 순 없었어요. 그래서 구렁이 담 넘듯 슬쩍 넘어가기로 했어요. 이런 경우는 아무 말 잔치가 정답이라 더군요.     


나 : 카톡은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거야. 알아? 

마우어 씨 : 그. 그래? 그건 몰랐네.      

이 친구 살짝 당황하네요. 아마 교육받을 때 그런 내용은 없었나 봐요.     

나 : 그런데 넌 안자니?

마우어 씨 : 잔다고? 야. 여기 우주정거장이야. 매일 낮만 계속되지. 그래서 우린 피곤하면 자곤 해.

나 : 정말이냐. 그 말? 하하하!      


이 친구 내가 잘 모른다고 아무 말 잔치를 벌이더군요. 피곤하면 잔다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우주비행사가 스케줄 없이 움직일 수 있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화장실 가는 시간도 정해져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마우어 씨는 무리수를 두기 시작합니다. 아마 여기서 내게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잠시 뒤 장문의 문자가 오더군요. 너무 길어서 일일이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영문이 날아 들었고 해석도 안되더군요. 하지만 대충 봐도 전문용어와 우주 지식이 가득 담긴 그런 문장이었어요. 내가 묻지도 않은 우주 지식을 한가득 적어서 보낸 것이 더군요. 결국 읽어 보진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정말 이런 한심한 녀석이 있나.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분명히 위키백과에서 아무거나 긁어다 붙였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우주 지식을 뽐내면 내가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가진 우주인 마우어 씨는 정말 대단한 존재야.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두다니 나는 행운아 인가 봐.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았나 봐요. 이런 순진한 녀석을 봤나.     


아니면 그동안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속여 왔기에 자신만만한 것인지도 모르죠. 세상엔 어리숙한 사람들 천지거든요. 그러니 이 짓을 하고 있겠죠? 하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용어의 차이라 했던가요? 전문용어는 신뢰를 주기 마련이죠. 그리고 그런 걸 사기에 이용하려 하는 것이겠지요.

     

나 : 우리 연구실에서 네 실험에 관심이 많아. 콘크리트 실험 말이야. 관련 논문을 내고 싶은데 도움을 좀 줄래?     


뭐 당연히 내가 대학교나 실험실에서 근무하는 건 아니었지만, 역시 아무 말이 제격이라 생각되더군요.     


마우어 씨 : 그래?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워! 

나 : 친구. 우리 대장이 나를 찾는다. 나중에 연락하자. 

마우어 씨 : 그래. 네 연락 기다릴게.     


그렇게 거짓말로 그와의 대화를 끝냈어요. 그리고 재밌는 일이어서 주변에 말해주자 모두 한바탕 웃을 수 있었어요.       


아마도 마우어 씨는 자신의 우주 지식에 내가 홀라당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 같았어요. 아니면 반대로 내가 자기의 사기 행각을 눈치챘다고 생각할까? 궁금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 대화 내용을 천천히 복기해 보기만 하면 내가 눈치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일단 그가 모르던 단어인 콘크리트를 검색해 본다면, 그가 동문서답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고, 그가 장문의 우주 지식을 보냈지만 내가 그것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콘크리트 이야기만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우리 실험실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논문 쓸 테니 도와달라고까지 했으니, 이거 뭐 부담스러워서 사기나 치겠어요? 사기 치려다 위키백과 검색에 시간만 쏟게 생긴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앞으로 마우어 씨는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게 정상적인 사람의 상식적인 행동이겠죠? 그리고 사기를 치려면 그 정도 촉은 있겠죠. 아 들켰네 할 정도는 되어야 사기도 치는 거겠죠?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재미있던 그날의 해도 저물어 갔어요. 

    

(다음 편에 계속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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