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감상을 그렇게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유독 마음이 가는 작품이 있다. 두 작품인데 하나는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고', 다른 하나는 '별이 빛나는 밤'이다.
지난 파리 여행에서 오르세 미술관을 찾아갔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했던 이유가 바로 고흐의 아래 두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오르세에 입장하자마자 5층으로 직진하여 고흐관을 찾았고, 이 두 작품이 어디있는지를 두리번 거렸으나 찾을 수 없었다.
오르세 미술관은 전 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많이 열고, 작품 대여도 많이 하기에 내가 기대한 작품이 없어도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갔는데, 내가 원했던 작품이 정말 없으니 허탈하고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다른 작품도 그냥 보는둥 마는둥 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제 내가 근무하는 곳에 이 두 작품이 걸렸다. 물론 진품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퇴근할 시간 이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나혼자 마주한 고흐의 작품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의자가 있었다면 작품 앞에 앉아 차도 한잔 마시고, 감상을 글로 남기고 싶을 정도로.
내가 참 좋아하는 첫 작품,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배경인 론 강은 스위스와 프랑스를 거쳐 흐르는 강이다. 알프스에서 시작하여 제네바 호수로 흘러간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장하는 주요 색깔인 짙은 파랑과 노랑은 마음의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게 해준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함께 걸어간다.
어두운 밤, 짙은 강물 위로 어른거리며 비추는 마을의 빛,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따뜻하게 비춰주는 달빛까지..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한다면 최소 30년 이상가는 소중한 감정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이 그림을 찬찬히 보다보니 오른쪽 아래에 이 론강의 달빛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발견했다. 강 위에만 집중해서 보다보니 행복하게 산책하고 있는 이 두 명의 존재를 몰랐다니.... 그림에서는 이 둘의 표정이 분간되지 않지만 왠지 표정이 보이는 기분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정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 론강을 산책하는 이 둘에게도 서울과 부산까지의 거리는 사당역에서 교대역가는 지하철 시간보다 더 짧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고흐는 프랑스 아를에 머물면서 여러 화가들과 함께 나름의 커뮤니티를 구축하고자 큰 노력을 했다고 한다. 수많은 작가들에게 함께하자며 편지를 써 보냈고, 그들과 함께할 순간과 행복을 떠올렸다. 하지만 오직 고갱만이 파리에서 아를로 고흐를 찾아왔고, 막상 둘이 붙어있다보니 서로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고갱은 고흐를 떠났다고 한다.
이후 고흐는 극도로 불안한 심리상태에 빠지게 되어 결국 요양원에 입원하여 정신치료를 받게 되었다. 아래 그림은 요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예전 자신이 봤었던, 혹은 꿈꿨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리며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느낌이 좀 다르다. 별이 있고 달이 있는 밤이지만 위에 있는 그림에 비해 훨씬 더 불안정하다. 무의식이 꿈틀대는 느낌이랄까.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것처럼, 손톱을 물어뜯는 장면이 떠오른다.
요양원에 갇혀 예전 론강을 산책하며 보았던 그 장면을 상상할때 얼마나 아련하고 애틋했을까...
이 두 그림에 투영된 고흐의 심리가 나에게도 큰 울림과 공감으로 다가왔다.
현 직장에서 근무한지 4년째. 처음 이 곳으로 왔을때 가졌던 포부와 희망, 기대와 설렘이 지금의 나에게 몇 %나 남아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나의 마음이 이런저런한 일들로 인해 쪼그라든건 아닌건지... 해결하려는 마음에서 도망가는 마음으로 변한건 아닌건지.
'별이 빛나는 밤에'가 내 휴대폰 케이스인 이유가 있나보다.